말과 글

(78) 此 (부화할 차)

나무^^ 2009. 7. 14. 16:29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78)                                                     

                                                                                            2009. 4. 20 (월) 영남일보

            此 (부화할 차 : 한자리에 머물러 부화하는 모양)

 

 

 

               머물러 있다는 뜻을 지닌 '止'(머물 지)에 변화시킨다는 뜻을 지닌 '匕'(化의 본디 글자)를 붙이면

                     '어미 새가 알을 품고 한 자리에 머물러 새끼를 치다'는 뜻을 나타낸다.

                      이때에 정성껏 알을 품어 새끼를 쳐내는 새는 암컷이기 때문에 '雌'를 '암컷 자'라 한다.

                      속담 '꿩 먹고 알 먹는 자리'는 이 어미 새가 알을 품고 있는 장소를 나타내는 말로 '바로 이 자리'라 하여

                      꿩도 얻고 알도 얻는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춘 자리이기에 '此'(이 차)라 하였다.

                      옛 말씀에 "재앙은 홑으로 다니지 않고, 복은 쌍으로 이르지 않는다(禍不單行 福不雙至)"라 하여

                     '눈 위에 서리까지 쌓이는 일'이나 '엎치자 덮쳐지는 일'은 흔히 있어도

                     '호박이 넝쿨째 들어오는 일'이나 '잃었던 암탉이 병아리 몰고 들어오는 일'은 여간해서 드문 일이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나없이 대부분 사람들은 '꿩 먹고 알 먹는 일'만을 찾아 '바로 이 자리'를 찾아 헤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자리만 끊임없이 찾는다고 해서 과연 그 정성대로 찾아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이것'과 '저것' 속에 섞여져 있게 마련이므로 이것과 저것을 딱히 분별하지 말고

                      멍청한 듯 끊임없이 찾아 헤매다 보면 이것과 저것이 확연히 다르다는 깨침이 틀림없는 신념으로

                      마음속에 튼튼히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이것'이 드러나고 '이것'이 드러난 뒤에는 힘써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과는 다른
'저것'은 무엇인가.

                     '저것'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는 '彼'(저 피)는 곧 저쪽으로 일단 던져진 가죽을 말한다.

                      그러니 이때의 '이것'은 맛좋은 고기 살이요, '저것'은 저쪽으로 던져진 먹을 수 없는 질긴 가죽일 뿐이다.

                      따라서 '이것'은 반드시 '저것'과 섞여 있기 때문에 '이것'과 '저것' 가운데에서 '이것'을 취하고 '저것'을 버릴 줄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과 '저것'만 섞여져 있는 것인가? 아니다.

                     '이것'과 '저것' 외에 '그것'이 뒤섞여져 있으니 사실 '저것'을 던지고 '이것'을 취하기 전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것'을 가려 버릴 줄 아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이것'과 '저것'을 취하고 이도 저도 아닌 '그것'을 버리는 일상도구는 바로 알차게 여문 곡식과 반 쭉정이와

                      전혀 몹쓸 검불을 가려내는 '키'다. 그래서 '키'의 모양을 그대로 본뜬 글자를 일러 '其'(그 기)라 한 것이다.

                      알찬 곡식은 무거우니 종자라는 말도 '무거운 곡식'을 뜻하여 '種'(종자 종)이라 하였다.

                      그리고 어차피(於此彼) 살코기는 아니지만 저쪽으로 던져진 가죽도 쓸모 있기 때문에 그런대로 어울려 갈 것이다. 


                      그러나 소속된 자신의 말이나 글도 도외시하고, 자신이 살아온 내력까지도 등한시하는 나머지

                      어느덧 알속 없는 가벼운 빈 껍데기로 변해가는 듯 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것들'은 과연 무엇인가?

                      오직 이것 저것이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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