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79)
2009. 4. 27 (월) 영남일보
입을 나타내는 글자로 '口'(입 구)가 한편으로는 물건을 나타내는 글자로도 쓰인다.
왜냐하면 어떤 물건이건 간에 눈으로 보이는 물건은 일단 그 모양이 있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 뜬 기본 꼴을
네모로 그렸기 때문이요, 또한 쓰임새 있는 물건은 눈이나 귀나 코는 생략한 채 만들 수는 있어도
입은 생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도구 중에 가장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릇을 예로 들어 보자.
물을 담아 끓이는 주전자는 입과 코와 귀가 다 있다. 그런데 물을 주전자에서 물을 받아먹는 컵은 귀 달린 컵도
있고, 귀 없는 컵도 있다. 물을 끓여 마시려면 물을 담는 입이 있어야 하고, 뜨거운 물을 다른 그릇에 옮겨 부어야
할 때에 잡는 귀가 있어야 하고, 물이 한창 끓을 때 수증기를 날려 보내는 코가 있어야 한다.
반면 물을 담아 마시는 그릇으로서의 컵은 귀(손잡이)가 없는 컵도 있고, 반드시 귀가 없어서는 사용하기 어려워
귀를 달지 않으면 안 되는 컵도 있다. 왜냐하면 그릇은 물을 담는데 사용하는 것으로는 '陰'(그늘 음)이지만
뜨거운 물은 곧 그릇 안에 담겨지는 내용으로서의 '陽'(볕 양)이기 때문에 뜨거운 물을 담아 마시는 컵은 반드시
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건을 담는 그릇을 '음'이라 치면 담겨지는 것들은 '양'이다.
물건을 담는 그릇을 '음'이라 치면 담겨지는 것들은 '양'이다.
그러므로 그릇에 어떤 물을 담는다 할지라도 그릇의 물은 '양'이다.
그러나 같은 물일지라도 뜨거운 물을 '양'이라 치면, 차가운 물은 '음'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음'(그릇)에 '음'(차가운 물)을 담아 쓸 때에는 귀 없는 컵도 무방하지만,
'음'(그릇)에 '양'(뜨거운 물)을 담아쓸 때에는 반드시 귀 달린 컵을 써야 한다.
음에 음이 담겨질 때에는 아무런 일이 없다. 그러나 음에 양이 담겨질 때에는 특별히 귀 달린 그릇이 아니면
쓸 수가 없다. 그렇기는 하나 어떤 물건을 담는 그 어떤 그릇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일단 입이 있고 담을 수 있는
용량이 있어야 그 용량만큼 담겨지는 법이다.
귀 달린 컵과 귀 없는 컵 중 어느 것이 더욱 쓸모 있는 그릇인가?
귀 달린 컵과 귀 없는 컵 중 어느 것이 더욱 쓸모 있는 그릇인가?
자신에게 걸맞은 이들만 담아 가는 그릇의 입장에서 보면 귀 달린 그릇은 그 귀 자체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음이 음만을 담으려 들거나 양이 양만을 담으려 든 나머지 자신의 비위에 맞는 이들만
모여 쑥덕쑥덕거리기로만 들면 어찌 되겠는가? 그 때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비웃음을 면할 길이 없다.
일단 길을 잃었다 싶으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그 새로운 길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길을 잃었다 싶으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그 새로운 길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나 혼자 애써 쌓으려 들면 얼마 쌓을 수도 없거니와 설사 약간 쌓았다 할지라도 금방 무너지게 마련이다.
너와 내가 합쳐야 일단 새로운 것이 나오고, 그 합쳐진 힘으로 차곡차곡 이치에 맞게 잘 쌓아야 새로운 것이
더욱 새롭고, 나날이 새로워지고도 오랫동안 굳게 남는 법이다.
왼쪽의 '口'와 오른 쪽의 '口'가 너와 나라면 그 위에 올려진 '口'는 새롭게 쌓여져 가는 너와 나를 아우르는
왼쪽의 '口'와 오른 쪽의 '口'가 너와 나라면 그 위에 올려진 '口'는 새롭게 쌓여져 가는 너와 나를 아우르는
새로운 '큰 나'(大我)이다. 그래서 높이 쌓으려면 좀 더 많은 이들이 힘을 모아 쌓아야 하고,
항상 새로운 것은 동질의 단순화합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이질의 조화에서 얻어진다는 진리를 단적으로
나타낸 글이 곧 '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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