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89)
2009. 7. 6 (월) 영남일보
손 안에 어떤 물건을 넣어 쥐는 모양을 나타낸 글자에 다시 받들다는 뜻을 나타낸 글자(●)를 위 아래로 합쳐
붙이면 '與'가 된다. '너와 내가 손을 모아 함께 더불어'라는 뜻이므로 너와 내가 같이 손을 모으면 곧 두 사람이
되기 때문에 '與'의 속에 든 글자는 '두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與'에 '手'를 붙이면 '擧'(드러낼 거)라 하여 백성의 뜻이 모아져 드러내어졌음을 나타낸 말이다.
게다가 여럿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뽑혀 드러내어졌으니 '選'(가릴 선)을 붙여 백성의 바람이 모아져
드러내진 상태를 두고 '選擧'에 따라 뽑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넓은 지지를 얻어 뽑혔다 할지라도 여럿의 바람이 실망으로 변해진다면 바람이 큰 만큼
그에 따르는 실망 또한 크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통해 어김없는 역사적 진리인 것이다.
따라서 뽑힌 자는 그에 걸맞은 바람직한 '바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끝내 그 바람을 저버리고 만다면
뽑아준 이들은 보람도 없을 뿐 아니라, 뽑힌 자는 그 영광이 고스란히 지속될 수 없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왕 더불어 뽑아 올렸으니 뽑힌 이는 뽑아준 이들의 바람이 과연 무엇이었던가를 항상 살펴서
뽑아준 이들과 내가 일심동체가 되어 더불어 나아갈 때에 바로 보람찬 나머지 '흥'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興'(일어날 흥)이라는 글자는 일심동체의 '同'에 '與'를 붙이되 어느덧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흥할 수 있음을 나타낸 글자다.
예로부터 백성들과 제왕과의 관계를 밝게 설명한 이는공자보다는 맹자를 꼽고 맹자보다는 순자를 더욱 꼽았는데,
순자는 말하기를 "물은 배를 띄운다. 그러나 물은 한편 배를 엎어 버릴 수도 있다."(水能載舟, 水能覆舟)고 하였다.
작은 사람이 큰 소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앞에서 이끌어가는 법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소를 앞세우고 잘 달래며 슬슬 뒤에서 몰아가는 법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앞에서 이끌어만 가려면 주인에게는 힘들고 소도 크게 원치 않는 방법이다.
오히려 이끌어 가다가도 형편에 따라서는 뒤에서 살살 달래며 몰아가는 방법도 반드시 필요하다.
앞에서만 이끌려고만 하면 자칫 교만하다거나 고집 세다는 평가가 뒤따르게 마련이니 그럴 때에는
뒤로 물러나 소를 앞세우는 것이 좋다.
배를 띄우는 물에는 언제나 물결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물결은 물 자체가 출렁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일면 출렁대고 바람이 잔잔하면 물결도 잔잔할 따름이다. 그렇기로 바람은 무서운 것이다.
한 해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끊임없이 변하는 까닭도 바람이 언제나 바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
바람결 따라 물결이 일어나게 마련이요, 물결 따라 굳은 땅에도 결이 생기고, 그 땅에 뿌리를 두고 자라는
나무에도 '결'(나이테)이 뚜렷하게 박히게 된다. 그러므로 결을 찾아 결에 맞게 이끌든 따르든간에 한 방법만을
고집할 일은 아니다. 바람결(시대적 바람)을 탓하거나 물결만을 탓할 게 아니라 결 따라 일심동체로 무리 없이
흐르는 흥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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