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87)
2009. 6. 22 (월) 영남일보
두 손을 공손히 안으로 모으는 모양을 '廾(손모을 공)'이라 하고,
나아가 여럿을 뜻하는 '卄'(스물 입)을 위 아래로 붙여 '共'(한 가지 공)이라 하고,
여기에 손을 붙여 '拱'(두 손 모을 공)이라 하는데 특히 상대를 향해 극진한 예의를 표하는 것을 '拱手'라 한다.
상대를 두 손 모아 받들 듯 공손히 받드는 일을 '供'(받들 공)이라 하고,
사람뿐만 아니라 사사물물을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는 마음을 일컬어 '恭'(공손할 공)이라 하였다.
그래서 사물을 대할 때마다 그 사물 속에 담겨진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면 반드시 가르침을 얻기 위해
자신을 겸허하게 구부려야 한다. 이런 뜻에서 '苟'(구부릴 구)에 '攵'(칠 복)을 붙여 '敬'(공경할 경)이라 하였다.
따라서 '恭敬'이라는 말은 우선 사물을 건성으로 대하지 않고 그 속에 담겨진 하나의 참다움을 찾아 받드는 마음을
지녀야 하고, 또 나아가 가르침을 얻기 위해 몸을 나직이 굽혀야 한다는 말이다.
사사물물에는 반드시 그 것이 있어야 할 만한 이치가 갊아 있다는 말은 참으로 소중한 말이다.
그래서 옛말에 "아무리 지혜 있는 사람이 천 번 생각을 하였을지라도 한 번 잃음이 있을 수 있고,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천 번 생각하다 보면 한 번은 얻을 수 있다(智者 千慮一失, 愚者 千慮一得)"고 하였다.
사실 자신의 알음알이가 그 누구의 의견보다도 우수하다고 자신이 자신을 허용하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언제나 두 손을 모아 사물을 받들 줄 아는 마음을 지니고, 가르침을 얻기 위해 자신을 나직이 굽히는 공경스러운
태도야말로 실수(失手)를 막는 큰 비결일 것이다.
설사 내 생각이 천만번 옳다 여겨질지라도 더불어 살아 가야 하는 사회에서의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이 생각이 내 입장에만 치우친 생각이 아닌가 하는 객관적 성찰이다.
나는 나 나름대로 길들여져 온 내 개인의 습성에 젖어 언제나 내 판단을 가장 옳다고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을 깊이 살피지 않으면, 자칫 자신에게는 너무나 옳지만 내 스스로가 옳다는 이 판단이 남에게는 전혀
옳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공자의 "네 가지가 없었으니 내 뜻이 없고, 반드시가 없고, 고집이 없고, 내가 없다
(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라는 말을 깊이 되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도리에 비춰 뜻을 세우기 때문에 도를 떠나 내 뜻이 별다르게 있을 수 없고,
둘째 쓸 만하면 행하고 쓰지 못할 것이면 갈아 버리기 때문에 반드시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셋째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별다르게 없기 때문에 굳이 집착하는 고집이 있을 수 없다.
넷째 예부터 내려온 진리를 밝힐지언정 자신의 저작이 없고, 여러 사람 속에 처해 있으되 별다름이 없고,
오직 도를 따를지언정 자신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나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태도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곧 나 자신에만 얽매이지 않고
상대까지도 염려해 줄 수 있는 마음이니 이런 마음을 곧 배려(配慮)라 한다.
위가 아래를 배려하면 아래도 위를 배려할 수밖에 없고, 손에 쥔 자가 쥐지 못한 자를 배려하면
쥐지 못한 자도 쥔 자를 부러워하며 자신도 남과 같이 뭔가를 쥐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분위기는 서로 받드는 길로 나가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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