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88) 攀 (더위 잡을 반)

나무^^ 2009. 12. 28. 09:33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88)                                                     

                                                                                            2009. 6. 29 (월) 영남일보

  

          (더위 잡을 반 : 두 손을 벌려 아래에서 위를 잡아당김)

 

              

두 손을 안으로 모은 모양을 두고 상대를 '공경하다'는 뜻으로 쓴 반면, 아래에서 위를 향해 오르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손을 벌려 어떤 것을 잡고 힘을 써서 올라야 한다는 뜻에서 두 손을 바깥으로 향해 내민 모양을 '끌어당기다'는 뜻으로 썼다.

가령 모처럼 휴일에 건강을 되찾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비탈진 산길을 오른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자면 우거진 숲을 헤치며 튼튼한 나무를 끌어 잡아당기며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때에는 반드시 두 손을 벌려 잡아야 오르기에 마땅하다.
이런 점에서 많은 나무(林) 중에서 끌어당길만한 나무(爻; 본받을 효)를 골라서 잡아 손쓰다(手)는 뜻에서 산에 오르다는 뜻의 '登攀'(등반)이라 할 때의 '攀'(더위잡을 반)이라 하였다.

'登'(오를 등)은 제사상을 차린 제단 위에 올라 그 상차림이 잘 되었는지를 눈여겨 살피기 위해 '오르다'는 뜻을 지닌 글자이다. 그러나 '攀'(더위잡을 반)이란 가파른 산길을 가까스로 힘들여 '나무를 더위잡고 오르다'는 뜻이다.

따라서 건강을 찾아 산을 오르려는 자는 반드시 이 두 가지 방법을 써야 옳다. 첫째는 정상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는 기쁨은 그 기쁨만큼이나 오르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올라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가파른 위를 오를 때에는 한 손으로만 나무를 붙잡아 당기지 말고, 싫건 좋건 간에 두 손을 잘 벌려 좌우를 가리지 말고 굳게 붙잡고 힘껏 정성껏 당기며 제 몸을 제 스스로 부추겨 올라가야 한다.
붙잡고 오를 나무를 골라 잡으면서 끊임없이 오르되, 오르며 쉴 때마다 두 손을 모으고 가파른 숨을 고르지 않으면 안된다.

흔히 이루기 어려운 고달픈 과정을 산에 오르는 등반에 비유하여 말하지만 이것은 나무가 하나도 없는 민둥산을 맨발로 기어오르는 일이 아니라 숲을 헤치고 가파른 산을 넘는 어려운 등반을 두고 말한 것이다. 좌우를 아우르는 통섭의 과정없이는 아예 가파름을 견딜 수도 없을 것이고, 또한 좌우와 내가 삼각대를 이뤄 내 몸을 끌어 올린 뒤 두 손을 모으고 가쁜 숨을 쉬는 경건함이 전혀 없다면 어찌 이루기 어려운 민주주의 등반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이상을 만끽할 수 있겠는가?

본디 민주주의는 중세의 봉건사회를 뒤엎고 이룬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에 개인의 절대 자유가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봉건주의가 말끔히 청산된 이 마당에 이르러서는 자유만이 귀중한 가치일 수는 없다.

오히려 보다 높은 차원으로 민주사회를 이끌어 가려면 자유에 못지않은 평등도 귀중한 가치의 하나라는 점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신자유를 향한 태도는 평등을 바탕으로 한 자유가 되어야 하고, 또한 자유는 평등의 분위기를 저버리는 자유가 되어도 안되는 것이다. 참다운 '리버럴리즘'을 실현코자 함에 있어서는 '소시얼리즘'적 방법도 결코 백안시 되거나 도외시 할 수는 없다. 산에 오르자면 좌우를 더위잡기도 하고 두 손 모아 숨을 고르기도 해야 함과 같으며, 나아가 정상을 향한 자신의 고독도 진실을 위해서는 참아야 하리라.
 

'말과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90) 與 (더불어 여)  (0) 2010.02.02
(89) 匊 (쥘 국)  (0) 2009.12.28
(87) 廾 (손 모을 공)  (0) 2009.12.23
(86) 世 (대 세)  (0) 2009.12.23
(85) 句 (굽을 구 )  (0) 2009.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