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92)
2009. 7. 27 (월) 영남일보
동이 트는 새벽이라는 말은 곧 온통 어둠에 덮인 밤(夜)의 기운이 점차 저녁(夕)의 기운으로 바뀌고,
그 저녁과 같은 어둑한 기운이 다시 밝은 아침으로 돌아 올 때 동녘에서 밝은 해가 떠오르며 밝아오는 모양을
형용하여 이른 것이다.
그래서 온통 칠흑과도 같은 어둠의 세계를 청산하고 밝음으로 바꾸는 음양의 변화는 반드시 동방에서부터 일어나며
이때 구름이 해를 감싸고 올라오기 때문에 '두 손의 해를 움켜 쥔 모양'을 본디 '晨'(새벽 신)의 윗 획으로 썼다.
또 동이 튼다는 말을 다른 표현으로 쓰면 사방의 벽이 다 막힌 듯 컴컴했는데 유독 동쪽의 벽에 틈새가 벌어져
그 틈새에서 밝아오는 해가 쑥 올라오기 때문에 새벽이라 하였으니 이때의 벽은 곧 '동쪽의 벽'을 이른 것이요
'새'라는 말은 곧 '사이'의 준말이다.
따라서 저녁과 밤이 컴컴한 어둠의 세계라면 아침과 낮은 훤히 밝은 밝음의 세계이니 이처럼 끊임없는 음양의 변화가
반복되는 동안 모든 생물들은 활동과 휴식을 거듭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도리이다.
그러므로 동이 트는 새벽이 되면 한편 지상의 모든 생물들은 제각기 부여받은 천성대로 꿈틀거리기 시작할 수밖에
없고, 다시 어둠이 깃들게 되면 제 각기 자신들이 정해 놓은 처소로 돌아가 쉴 수밖에 없다.
이런 뜻에서 '晨'의 아래 획은 '꿈틀거림'(辰)을 붙였다.
또 해가 밝아오기 직전에는 잠 속에 묻혀 꿈을 꾸는 시간이기 때문에 취침의 상태지만
날이 밝아오면 그 잠에서 깨어난 바로 취침 직후의 상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침'이라는 말 역시
취침의 '침'(寢)과 그 다음이라는 '버금'(亞)의 뜻을 합성시켜 만든 말이다.
어떤 일을 나름대로 다 끝냈다는 말을 '마침'이라 하고, 해가 밝아오자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 꿈틀대기 시작하는 때가
곧 '잠의 마침'인 아침이라, 아침은 곧 '亞寢'이며 아침이 찾아오는 쪽 또한 '震'(꿈틀거릴 진)방위인 것이다.
'밝다'는 표현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창문에 달빛이 비치니 밝다는 뜻으로 '明'(밝을 명)을 쓰기도 하고,
둘째 하늘과 땅 사이에 해가 떠올라 밝다는 뜻에서 '暄'(밝을 훤)을 쓰기도 한다.
해가 떠오르는 아침을 봄(春)이라 하고, 중천에 올라 가장 훤한 낮을 여름(夏)이라 하고,
해가 기울어 어둠이 든 때를 가을(秋)이라 하고, 컴컴한 밤중을 겨울(冬)이라 한다.
그래서 한 해의 사계절(節)과 하루의 네 진(辰)은 서로 상통한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이를 미래의 설계에 적용하여 보다 밝은 미래를 향해 나가려는 예측학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진단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져 가고 있는가?
하루를 지낼지라도 '일진'이 좋아야 별 탈이 없다. 아무래도 어둠보다는 밝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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