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94) 鬲 (솥 격)

나무^^ 2010. 3. 19. 13:46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94)                                                     

                                                                                            2009. 8. 10 (월) 영남일보 

 

            鬲 (솥 격 : 세 발 달린 솥의 모양)

 

   

                 맨 위에는 뚜껑, 가운데는 무늬가 있는 솥의 몸, 그리고 아래는 세 개의 발을 그대로 본뜬 모양을 '솥'이라 한다.
                 이는 본디 흙으로 빚은 질그릇으로, '주례'에 따르면 '대략 여섯 말 들이 이상으로 큰 솥'(實五)이었다.
                 그런데 쇠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오늘날의 '가마솥'(釜)이 되었다.
                '진류풍속전'에 따르면 "순임금은 하빈에서 질그릇을 만들었는데, 은상시대에 이르러서는 질그릇에 채색을 가한 채도(彩陶)가
                 유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가마솥'이 일용으로 성행하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한편 솥과 제사는 서로 공통성이 있다. 즉 내 집과 남의 집과는 일단 솥이 다르고, 또한 조상도 다르게 마련이기 때문에
                 제사도 다르다. 그래서 '너와 나 사이'라는 뜻에서 경계를 나타내는 (언덕 부)에 '祭'(제사 제)를 붙이면 '際'(사이 제)가 되고,
                '鬲'을 붙이면 '隔'(떨어질 격)이 된다. 

                 솥은 음식을 익히는 도구다. 그런데 음식이 익는 원리는 솥 아래의 불이 바람을 받아 계속 타야 되기 때문에
                 바람(風)과 위의 불(火)을 상하로 짝지어 '鼎'(솥 정)이라 하며 '주역'의 64괘 중의 하나로 썼다.
                 이때에 '鼎'이라는 글자는 쪼개진 나무위에 받들어져 있는 솥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또 솥은 솥 안에서 김이 위 아래로 돌고 돌아 음식이 익혀지기 때문에 '鬲'에 김이 도는 모양을 본뜬
                 ''(구불구불 움직이는 모양)을 붙여 '融'(돌 융)이라 하였다.

                 그리고 가장 간단한 솥은 몸통에 다리를 붙인 모양을 본 뜬 '貝'에 두껑의 모양을 본뜬 '口'를 위
아래로 합성시켜
                '員'을 본디 '솥'이라는 뜻으로 썼다. 그러다가 ' '자가 널리 쓰이게 되자, 사람의 숫자를 나타내는 '員'(인원 원)이라는
                 뜻으로만 쓰게 되었다. 이밖에 솥의 둘레가 둥글다는 뜻에서 '圓'(둥글 원)이 있고,
                 소리는 별다른 막힘이 없는 한 둥글게 퍼진다는 뜻에서 '韻'(메아리 운)자가 있으며,
                 아무리 단단한 무쇠 솥일지라도 만지작거리면 닳아진다는 뜻에서 '損'(덜어질 손)자가 있다.

                 아무튼 솥은 인간이 불을 발견하여 화식을 시작한 이래 음식을 익혀 먹는 중요한 도구의 하나로,
                 솥이 흔들리지 않고 솥 속의 음식과 솥 밑의 불이 서로 통하여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온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이런 뜻에서 솥을 받치고 있는 세 다리가 흔들리지 않고 제 기능을 다할 때를 일러 '鼎立'이라 한다.
                 즉 예를 들면 삼국이 각기 패권을 다투며 싸우는 것을 '爭奪'이라 말함과는 전혀 달리, 이웃 나라 사이에 잘 지내는 때를
                '三國鼎立의 때'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에 있어서 중국의 천자는 온 나라 온 국토를 골고루 사랑한다는 뜻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아홉 주를 상징하는 각각 주마다의 흙을 담은 '아홉 솥'을 골고루 어루만지는 일을 하루 일상의 첫 업무로
                 삼기도 하였던 것이다.

                 천자의 시대가 훨씬 지난 오늘날 민주 시대에 있어서도 바람직한 민주 통일의 길은 곧 각자의 마음 솥 속에
                 백두산 천지의 물과 한라산 백록담의 흙을 한데 담아 섞어 우리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온통 새 단장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것에서부터 싹 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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