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09. 10.. 19 (월) 영남일보
川 (내 천 : 두 제방 사이로 물이 흐르는 모양)
물은 낮은 곳을 찾아 끊임없이 흐른다. 자연적으로 지형을 따라 흐르는 모양은 샘(川)에서 바다(海)까지 밤낮없이 흐른다.
가파른 곳을 만나면 '퀄퀄퀄' 흐르고, 평지를 만나면 말없이 흐르고, 높은 곳에서 갑자기 낮은 곳을 만나면 성낸 듯
큰 소리로 떨어져 흐른다.
물을 끌어다가 농사를 짓으면서 물줄기를 만든 인간의 노력은 절박했다.
크고 작은 물줄기에서 물을 끌어들인 가장 작은 물줄기를 '도랑'이라 하였는데, 이는 넓이와 깊이가 다같이
한 자 남짓 밖에 안 되는 밭두렁 옆의 작은 물줄기를 뜻한다. 그래서 이같이 작은 도랑은 밭 옆에서 흐르며,
개도 훌쩍 넘을 수 있다는 뜻에서 ''(도랑 견)이라 쓰기도 한다. 그리고 이 작은 도량의 두 배가 되는 도랑을
'遂'(도랑 수)라 하고 다시 더 큰 도랑을 '溝'(도랑 구)라 하니 오늘날 물을 빼는 '下水溝'쯤에 해당되는 글자다.
다시 '溝'보다 더 큰 도랑으로 두 배 되는 도랑을 일러 '洫'(봇도랑 혁)이라 하였고, 이 봇도랑보다 더 큰 도랑을 일러
'巜'(큰 도랑 괴)라 하였다. '巜'를 풀어 말하기를 "물의 흐름이 모여 크게 흐름을 말한다. 백리 쯤 두고 흐르는 물''이라 하니
넓이는 두 발이요 깊이도 두 길이다"(水流澮澮也. 方百里爲, 廣二尋, 深二·설문해자)라 하였다.
물의 흐름은 그치지 아니한다. 그리고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이같은 의미에서 작은 물줄기를 바탕삼아 살아가는
인간의 모듬을 '里'라 치면, 실개천을 넘어 봇도랑에 의지해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듬을 '鄕'(시골 향),
또는 '郡'(고을 군)이라 한다.
|
나아가 '川'을 중심삼아 크게 모여 사는 모듬 사회를 일러 '州'(큰 고을 주)라 하니
이 '州'는 물의 흐름으로 보면 중류쯤에 해당되는 곳이라 자연히 지방의 중심지가
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그런데 제일 큰 곳은 역시 서울이며, 모든 큰일들은 서울에서 행해지게 마련이기
때문에 사람이 통행하는 길은 마치 모든 핏줄이 심장과 연결되듯이 서울로 통하게
되어 있다. 이런 까닭에 서울을 중심으로 지방으로 가는 길을 나누어 지방행정의
큰 단위를 '道'(길 도)라 하였고, 여덟로 나눈 팔도 이름 역시 지방의 중심 도시를
따다 붙인 것이다.
충주와 청주 가는 길목에 붙은 고을을 '충청도'(忠淸道)라 하고,
전주와 나주 가는 길목에 붙은 고을을 '전라도'(全羅道),
경주와 상주 가는 길목에 붙은 고을을 '경상도'(慶尙道)라 하여 아랫 삼도라 불렀다.
'평안도'(平安道)는 평양과 안주, '황해도'(黃海道)는 황주와 해주,
강릉과 원주를 합쳐 '강원도'(江原道), 함흥과 경성을 합쳐 '함경도'(咸鏡道)라
부르고, 서울을 에우고 있는 곳을 '경기도'(京畿道), 옛 백제 땅의 하나였으므로
'제주도'(濟州道)라 하였다.
이처럼 지방행정의 단위도 물의 흐름과 무관할 수가 없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까닭은 물은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흐를수록 넓어지는 것이 물이요, 넓어질수록 많은 이들이 모여 살기에 적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