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谷 (골짜기 곡)

나무^^ 2010. 6. 21. 18:03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09. 11.. 2 (월) 영남일보

                   谷 (골짜기 곡 : 떨어진 바위에 물이 흐르는 모양)

 

           

               산이 그토록 높이 서 있는 까닭은 큰 바위가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산을 밑받침 해주고 있는 큰 바위를 일러 '巖'(큰 바위 암)이라 하고, 그 큰 바위의 일부로 돌출되어 있는

               바위를 '岩'(바위 암)이라 한다. 그런데 어찌 산에 박혀 있는 바위가 마냥 박혀 있을 수만 있겠는가?

               바람이 갈고 비가 씻어 내려 골짜기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골짜기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물이 흐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를 비껴 흐르는 물의 모양을 그대로 본 떠 만든 글자가 곧 '谷'(골짜기 곡)이요,

               이 골짜기의 물은 몸을 씻기 적당하기에 몸을 씻는다는 뜻 또한 '浴'(목욕할 욕)이라 하였다. 
               따라서 '谷'을 풀이하기를 "샘에서 솟아나온 물이 냇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통해진 곳을 골짜기라 한다"

              (泉出通川爲谷· 설문)라 하였고, "물이 큰 내로 흘러 들어가는 곳을 시내라 하고 시내로 흘러 들어가는 곳을

               골짜기라 한다"(水注川曰谿, 注谿曰谷·단옥재의 풀이)고 하였다.

               사실 산과 물은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 산이 있기에 물이 흐르고, 물이 있기에 산은 산대로 여유롭다.

               이는 마치 "어진 자는 산을 즐기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즐긴다"(仁者樂山 知者樂水)는 공자의 말처럼

              '어짊'과 '지혜'를 나눠 볼 수도 있지만 실은 그 어짊과 지혜가 둘이 아닌 이치와 같다.

               흔히 "깊은 산이라야 골짜기도 그윽한 법이다"(深山幽谷)라고 하여 우리 그림
의 소재로 산과 물을 하나의 화폭에
즐겨

               담았다. 물도 없이 산만 그리면 삭막하고, 물만 그리고 산을 빼어 버리면 아무래도 막막하다. 그래서 막막하지도 않고

               삭막하지도 않아야 삶은 부드러운 것이다. 버티고 서있는 우람한 산만 높은 것이 아니요, 잔잔히 흐르는 깊은 물 또한

               어쩌면 산보다 더 깊은 것이기 때문에 산과 물을 가장 자연스러운 조화로 여겨 즐겨 그려온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수많은 짐승들이 산을 의지해 살아가지만, 깊은 물 속에 잠긴 수많은 고기 떼는 물을 바탕삼아

               마음대로 헤엄쳐 다닌다. 삶의 의지처가 되어주는 '어짊'도 좋지만, 마음껏 헤엄치고 거침없이 뛰놀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는 '지혜'도 필요하다.

               우리의 산수화
는 자연을 화폭에 담아낸 단순한 미술의 한 장르가 아니라 위대한 철학적 사유의 한 표현이다.

               산이나 물 그리고 산 위에서 자라는 나무나 물 위의 낚싯배에 탄 어부 등 눈으로 보이는 것들만 그린 것이 아니라,

               잡다한 것들 이외에 빈 하늘을 고스란히 남겨 산과 물의 조화 뿐 아니라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까지를 모두 조화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산은 바람과 비에 깎여 어김없이 '바다
'로 향하고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 한없이 너른 것 같지만,

               한편 때때로 하늘로 증발되어 바람따라 흐르는 '구름'도 되고, 땅속으로 스며들어 바다보다 더 너른 '지하수'로 뭉친다.

               이런 뜻에서 우리의 산수화는 하나의 화폭에 '음양의 조화'를 그린 그림인 동시에 유무상즉(有無相卽)의 도를 나타낸

               철학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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