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09. 10.. 5 (월) 영남일보
깊은 산골 옹달샘에서 바다까지 흐르는 물의 여행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이다.
어디 그 뿐인가? 바다로 들어간 물은 다시 증발하여 하늘의 '구름'이 되고, 구름은 다시 '비'가 되어 내리고,
일단 땅으로 내린 빗물은 흐르기도 하지만 또한 땅속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그러니 곰곰 생각해 보면
땅위로 흐르는 물과 바다에 고인 물을 모조리 합쳐 보아도, 수억 년을 두고 땅 밑에 갈무리 되어 있는 '지하수' 양이
훨씬 많을 것이다. 땅 속은 땅 속 대로 깊지만 그 깊은 위에 '지하수'가 널리 분포되어 있고 그 위에 또 땅이 덮여있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지하수'를 밑받침하는 단단한 암반을 일정한 두께가 있다고 여겨
'工'(헤아릴 공; 받들다는 말과도 소리로 통함)으로 쓰고, 그 위에 많은 '지하수'가 분포되어 있는 모양을
'川'(천; 내 천의 본디글자)이라 하고, 그 '지하수'를 덮고 있는 땅의 겉을 '冂'(지하수 경)이라 하였다.
따라서 하늘로 오른 물기가 구름이 되었다가 땅으로 내려지는 모양은 봄에는 '비'(雨), 여름에는 '이슬'(露),
가을에는 '서리'(霜), 겨울에는 '눈'(雪)' 등으로 각각 다르다. 그러나 땅 속에 갈무리되어 있는 '지하수'가
땅 위로 오르는 일은 대략 세 가지 통로를 거쳐 이루어지니 그 대강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장 자연스럽게 오르는 일은 아무런 인위적 작용을 거치지 않고 거침없이 새어 나오는 '샘'(泉)을 통해
나오는 것이니 여기에서 말하는 '샘'은 곧 '사이'(틈)라는말에서 얻어진 용어다.
둘째, 속담에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는 말로 생명의 원천이 되는 물을 땅 속에서 찾아내기 위해 힘들여 파내
얻어낸 '물구덩'(움물)일 수밖에 없으니 '우물'의 어원은 '움물'이다. 따라서 '목마른 자가 샘 찾는다'는 말도 옳으나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는 말이 더욱 실감나는 말이다.
셋째, 초목은 지하수를 땅 위로 끌어 올리는 일종의 파이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무는 제 몸에 필요한 만큼의 물만 소비하고 나머지 물은 밖으로 발산한다.
숲속이 촉촉한 까닭은 그늘이 따가운 햇볕을 가려서만이 아니라 수분을 내놓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요, 경중의 표준이며, 고하를 정확히 가늠해 주는 잣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혀가 촉촉해야 말할 맛이 나고 뼈가 촉촉해야 다닐 맛이 나니, 생명의 근원이 곧 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끄러운 세상을 떠나 깊숙한 산중 동굴에 들어 자신을 연마하려해도 물이 없으면 살아 갈 수조차도 없으니
동굴을 뜻하는 '洞'(동굴 동)자도 비었다는 뜻을 지닌 '同'(대나무 마디를 본뜬 글자로 비다, 또는 한 가지라는 뜻이
있음)에 '물 수'를 붙인 것이다.
옛날부터 일러온 농사법에 '정전법'(井田法)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또한 농지를 아홉 등분으로 하여 한 가운데를
물을 저장하는 '井'으로 삼고 나머지 여덟 구역을 경작했던 농사법을 말한다.
"가뭄을 당해 우물 파지 말라"(毋臨渴而掘井)는 주자(朱子)의 가르침과도 딱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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