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질로 폰테코르보
출연 : 말론 브란도, 에바리스토 마르케즈 외...
음악 : 엔디오 모리코네
나는 아나로그 세대이기 때문일까? 요즘 영화보다는 아들이 머리 내젓는 오래된, 흘러간 명화를 즐겨본다.
토요일 밤 TV로 본 이 영화는 1969 년 제작된 것으로 내용이나 연출, 연기, 음악 모두 수작이었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육감적인 연기를 했던 젊은 말론 브란도, 그리고 나이든 그를 '대부'에서 다시 보았었다.
그는 연기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자기 주관이 강하여 많은 일화를 남긴 매력 넘치는 배우이다.
이 영화는 19C 영국의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오늘날 부강한 다국적 기업들이 가난한 제3 세계 국가를 착취하고 있는 국제질서를 생각하게 한다.
자연에 있어 진정 강자와 약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왜 강자였던 공룡은 멸망해야 한걸까?
영화에서 교수대로 끌려가던 호세 돌로레스가 마지막으로 하던 말이 생각난다.
'문명은 백인 것이라고? 언제까지?'
어쩜 백인은 문명이라는 옷을 잘 차려입은 사악한 짐승들은 아니었을까? 적어도 원주민들에게는...
영국 정부에 고용된 윌리엄 워커는 포르투갈 식민지인 서인도 제도의 퀘이마다섬으로 가 반란을 일으키게 하여
포르투갈로부터 사탕수수 무역권을 빼앗게 한다. 그가 호세 돌로레스를 이용하여 반란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은 재미있게도 설득력이 강하다.
'퀘이마다'는 '불타다(Burn)'는 뜻이다. 10년후 결국 그는 또 다시 영국 정부에 고용되어 그곳에 가게 되고,
섬 전체를 불태우며 그를 친구라고 믿었던 호세 돌로레스를 생포한다.
'사람들이 주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스스로 쟁취할 때만이 자유다'라고 말하는 원주민의 영웅이었던
호세 돌로레스는 뒤늦게 월리엄 호커가 그의 양심에 의해 부여하는 자유를 거부하고 순순히 교수대로 향한다.
끝까지 저항하는 호세를 붙잡음으로 자신이 부여받은 할 일을 다하고 떠나는 그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이었나?
진정한 자유를 위해 투쟁함으로 승리한 인간은 과연 누구였을까?
강자라고 착각하는 인간들은 결국 자신들의 오만과 욕심으로 스스로 멸망한다.
삶에는 진정한 강자도 약자도 없음을, 삶은 그저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인 것을 인식하는 겸손함이 필요할 뿐이다.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감동과 볼거리가 많은, 또한 생각하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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