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攴 (칠 복)

나무^^ 2010. 7. 25. 22:52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09. 12. 28.  (월) 영남일보

                            攴 (칠 복 : 막대기를 잡고 가볍게 치다) 

 

 

            인간이 맨 처음 사냥을 통해 목숨을 연명해 나갔을 때는 무조건 닥치는대로 힘으로 싸워 짐승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물이라는 편리한 도구를 만들면서 짐승을 사로잡아 우리 속에 가둬 기르게 되었다.

               짐승을 기르는 까닭은 한갓 고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힘센 것은 힘을 이용하고, 가죽이 좋다거나

               털이 부드러운 것들은 각각 그것들을 이용할 목적으로 기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소는 물건을 운반
하거나 밭갈이를 시키는 데 쓰고, 말은 교통수단으로나 전쟁에 썼으며,

               양은 털이나 가죽을 벗겨 쓰고, 개나 매는 잘 길들여 사냥하는 데 썼다. 짐승을 길러도 각각 용도에 맞게 방법을

               달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똑같이 '기른다'는 뜻을 두고도 '소'(牛)는 매로 때려(攴;칠 복)가며 길렀기로 '牧'(기를 목)이라 하였고,

              '양'(羊)은 단지 밥(食; 밥 식)만 주며 길러도 되었기로 '養'(기를 양)이라 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子'(아들 자)에게

               삶에 필요한 모든 '爻'(무늬 효)를 본받아 갈 수 있도록 길렀기에 '敎'(가르칠 교)라 하였다.

               단순하고 순한 것들을 기를 때에는 그저 밥만 먹여 기르거나 먹이를 주었다가 빼앗다가를 반복하며 기르지만

               소처럼 힘세고 순한 동물은 전후와 좌우를 가를 수 있도록 길들이되 미처 모를 때에는 매로 자극을 주어 기르기 때문에

              '좌우를 가르고 치다'는 뜻을 '가르치다'라 이른 것이다.

               인간 역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듯이 삶의 무늬(선악)를 본받도록 지도하는 것이 곧 '가르치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을 두고 '기르다'는 뜻을 나타낸 글자로 '敎'와 '育'이라는 두 글자가 있다.

              '선악' 자체를 본받도록 '자극하다'는 뜻을 지닌 것이 '敎'이고, 어미의 뱃속에서 '막 돌아 나온 아이'(子를 거꾸로 쓴 글자

               云; 아이 돌아 나올 돌)에 '肉'(살찌도록 하다는 뜻)을 그대로 붙인 것이 '育'(기를 육)이다.

               생명체에 있어서 자극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같은 생명체라 할지라도 위로 솟아 커가는 식물을 기를 때에는

               북돋아주어야 커갈 수 있기 때문에 '培'(북돋울 배)를 쓴다. 

               그래서 어린 식물은 '培養'해야 하고 어린 아이는 '育兒'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철이 들 무렵이 되면 어떤 형태로든지 자극을 통해 전후좌우를 가를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일이

               곧 소를 치고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니, 곧 바람직한 생명을 생명답게 만드는 과정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일이 바로

              '치는 일'이다. 그래서 어린 아이는 어미의 '育兒'를 통해 몸다운 몸을 이루도록 돌보아 주어야 하고,

               말귀를 알 때가 되면 아비는 손에 매를 잡고 전후좌우를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爻'와 '父'는 모양도 같고 어원도 같다. 

               만약 쳐주어야 할 때에 쳐주지 않고 정확히 갈라주어야 할 때 갈라주지 못한다면 선악을 가르지 못한 채

               장차 점점 길흉의 갈림 길에서 흉으로 빠질 수가 있다는 점에서 '攴'은 손(又)에 '卜'(점칠 복)을 붙여 만든 글자다.

               그러니 오늘의 작은 선악이 장차 크나큰 길흉으로 번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가르치는 일이 곧 '敎育'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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