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1.14. (월) 영남일보
옛날에는 언제나 일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어떤 형태로든 점을 쳐서 일의 길흉을 판단하였으며,
일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흉함을 피하고 길함으로 나아갈 방도'(避凶趨吉)를 강구하였다.
일이란 내적인 어떤 것과 또 외적인 어떤 것이 만나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안과 밖이라는 두 가지 속성이 있게
마련이다. 그 두 다른 내외의 속성을 잘 살펴 일을 이뤄갈 '수'를 얻는 방법으로 점대 50개를 써서 길흉을
가늠해 보는 점법이 곧 '육효점'(주역점)이다.
이미 일이 지니고 있는 내외의 속성을 하나의 괘로 보아 이를 원점으로 삼고, 그밖에 흉함을 피하고
길함을 얻는 수를 구하려는 것이 역점(易占)의 기본방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은 다른 것이 아니다. 사물이
열림에 그에 따라 힘써야 할 것을 제시해 준 것이다"(易, 無他也. 示開物成務之道也·주역 서)라고 한 것이다.
모든 사물은 원천적으로 보면 음양의 조화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이 음양의 변화를 두고 길흉을 가늠해야 하며,
길함을 찾고 흉함을 피하는 방법 또한 '긴 것은 끊어주고 짧은 것은 보태주는 법'(切長補短)으로 나가야 한다.
즉 "길고 짧은 것은 집집마다 다르지만, 덥고 차가운 것은 곳곳마다 한가지로 같다"(長短家家有, 炎凉處處同·
명심보감)는 전제 아래 '길고 짧은 것'을 가늠하되 "정성껏 처음으로 점친 결과를 얻었거든 간절히 그대로
형통하기를 구할 것이지, 재삼 반복하여 점치는 일은 경솔한 일이니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주역 몽괘사)고 하였다.
일에 앞서 그 성패를 두고 간절히 구해야 결과에 대한 의심이 바르게 풀릴 수 있고,
나아가 간절한 마음의 바탕이 일단 이뤄지고 그 위에 간절한 구함이 행해져야 옳은 해답이 주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루려는 간절함'에는 두 측면이 있다. 즉 첫째 이루고자 하는 말 자체가 진실되어야 하고,
둘째 이루고자 하는 과정이 정성스럽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言'(말씀 언)에 '成'(이룰 성)을 붙인
'誠'자에는 두 가지 깊은 뜻이 있다. 하나는 '진실로 성'이라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정성 성'이라고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말'은 쓸 만한 말을 해야 한다는 뜻에서 '말씀'이라 하였고, 그런 말씀을 제대로 실행에 옮기자면
한결같은 정성으로 직접 밟아가야 한다. 즉 귀중한 일을 귀중한 가치로 이뤄 나가려면 그만큼 귀중한 시간을 쏟아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애당초 간절히 구하던 일을 별다른 무리없이 성취하려면
언제나 처음 먹었던 마음을 그대로 지켜 나가야 한다는 큰 메시지를 담은 글자가 곧 '卜'(점 복)에 '中'(가운데 중)을
붙여 만든 '用'(쓸 용)자이다.
간절히 구하는 것을 제대로 성취 못하는 까닭은 그 구함이 무가치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노력의 과정에서 중심을 잃었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예가 태반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글자이며,
한편 모든 쓰임새는 한계가 있다는 뜻에서 '울타리'를 본뜬 글자라 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