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2. 1 (월) 영남일보
새는 마음대로 공중을 난다. 그들이 마음대로 나는 까닭은 우선 날개가 있고, 또 하늘이 무한히 비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 속에서 마음대로 헤엄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고기는 뱃속에 공기를 저장하는 부레와
지느러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다.
바탕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어야 날기도 하고, 또는 뛰기도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옛말에 "물고기는 물이 거침없이 넓다는 것으로 인하여 온 힘으로 뛰고, 새들은 하늘이 비었다는 것을 믿고
마음대로 난다"(魚因水全心躍, 鳥恃天空任意飛)고 일렀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음을 부러워하며 뛰는 놈과 나는 놈이 되기를 바라던 인간들이 스스로 머리를 써서
뛰는 것과 나는 것을 발명해 오늘날에는 저들을 굳이 부러워할 것 없이 마음대로 날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발명품은 내 몸 자체에 구비되어 있는 본래의 성능이 아니라, 저들을 부러워 하다가 만든
내 몸 밖의 기계들이기 때문에 역시 언제나 불안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비행기를 만들고 낙하산을 만들어야 했고,
산더미처럼 큰 배를 만들고서 구명조끼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보면 인간에 의한 발명이나 발견은 결코 완벽한 것일 수 없다. 오직 완벽을 향한 인간의 겸허한 노력이
있을 뿐, 완벽을 자부한다면 이는 '오만'이며, 대단한 '착각'일 뿐이다.
사실 새의 날개나 비행기의 날개는 다 같이 한낱 날개일 뿐이다. 그런데 이 두 종류 날개 중에서
날개의 원조는 물론 새의 날개다. 그렇기로 번득이는 새의 두 날개 모양을 그대로 본떠 그려 '羽'(날개 우)라 하였다.
그리고 날개를 번득인다는 말은 ''(새 추)를 붙여 '翟'(번득일 적)이라 하였고,
새가 날개를 번득일 때는 제 몸을 씻은 뒤에 하는 짓이라, ' '를 덧붙여 '濯'(씻을 탁)이라 하였고,
날기 전에는 뛰다 날기 때문에 발로 뛰다가 날개를 번득이며 날다는 뜻으로 '躍'(뛸 약)이라 하였다.
뛰지 못하면 날 수도 없는 법. 그렇기로 하늘에 관한 일을 말한 '乾'(하늘 건)괘에서도
날기 전의 단계를 "혹 뛰어 보라"(或躍) 하였고, 나는 일을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飛龍在天)고 하였다.
그러나 다만 뛰어서 날 수 있는 그 전 단계는 "종일토록 애타는 노력"(終日乾乾)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짐승은 태어나자마자 잠시 비척거리다가 뛸 수 있지만 알에서 나오자마자 금방 나는 새는 없다.
일단 어느 정도 날개가 이뤄진 뒤에 점차 나는 연습을 차근차근하다가 어느 날 비로소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習'(익힐 습)은 본디 '羽'밑에 '自'(스스로 자)를 붙인 글자였는데 뒤에 '自'가 '白'으로 바꿔져
오늘날에는 '習'이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自'와 '白'은 본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