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1.25. (월) 영남일보
현실적으로 '나'라는 것은 나의 몸을 말하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얼굴이다, 얼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입이나 눈이 아닌 '코'다. 그것은 얼굴의 가장 중심에 있기도 하지만 눈은 안 보여도 살 수 있고,
입은 며칠 동안 안 먹어도 살 수 있으나 코는 잠시라도 숨을 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코는 얼굴의 가장 중심에 붙어 있으면서 그 생긴 모양은 오뚝하다. 그 기능으로 보면 무엇보다도 '크다'고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뚝하면서도 크다' 즉 '크고도 오뚝하다'하여 이른바 '코'라 하였다.
결과적으로 코는 첫째 내 몸의 대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라는 뜻을 지녔으며,
둘째 숨 쉬는 일은 숨 쉬려는 의지나 멈추려는 의지가 따로 있을 수 없고, 오직 스스로 그렇게 숨 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스로'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내 자신을 살피라"는 말을 '자아성찰'(自我省察)이라 하고 "내 스스로 말미암아 나가라"는 말은
'자유'(自由)라 하였으며, "나도 좋고 남도 좋게 살라"는 말을 '자리이타'(自利利他)라 하였다.
흔히 "밥값을 하고 살라"고 말하지만 밥값을 따지기 전에 숨 쉬는 값을 하고 살면 밥값도 그 속에 포함되는 것이며,
언필칭 '자유'를 부르짖지만 되도록 '나도 좋고 남도 좋게 살아가는 좋은 방법'을 찾으면 자연히 자신의 자유도
그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숨을 쉬고 사는 것은 동시에 남도 숨을 쉬고 산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내게 이롭지 못하면 남도 또한 이롭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나도 남도
다 같이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의 숨은 어찌 되었던간에 나 혼자만 고르게 숨을
쉬려들고 남이야 숨이 가쁘든 말든 상관치 않고 살아간다면 끝내 사회는 모두 숨 막히는 사회가 되고만다.
이런 점에서 공자의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는 말씀은
제자 중궁에게 설파하신 '어짊'의 기본이며, "자기가 서고자 하면 먼저 남을 세우고 내가 통달코자 하면
먼저 남을 통달케 하라"(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는 말씀은 제자 자공에게 '어짊'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라는
권장의 말씀이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목숨을 지닌 것들의 '코'는 다 같이 마치 밭의 두덩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처져 있는 것처럼
위 아래로 내려처져 있으므로 막상 '코'라는 글자는 '自'(코의 모양)에 '卑'(줄 비)를 붙여 '鼻'(코 비)라 하였다.
그런 뜻에서 "눈은 가로로 코는 세로로 되었음"(眼橫鼻直)이라는 말은 인간은 물론 동물까지도 생명을 지닌 것들의
모습은 이처럼 공통성을 지니듯 모든 생명은 알고 보면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니 곧 '스스로인 나'도 참다운 나 스스로가 되려면 우선 모든 생명은 기본적으로 다 같이 평등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참다운 자유는 평등에 대한 절실한 자각으로부터 이뤄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