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1. 18. (월) 영남일보
흔히 말하는 '주역'의 본디 쓰임은 음양 두 가닥으로 얽힌 것을 찾아 길흉을 점쳐 보는 방법에서 등장한 것이다.
점 중에서 가장 큰 관심은 백성을 다스리는 지붕의 용마름과도 같은 최고의 지도자,
즉 제왕이 되는 길을 제시한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모든 상황은 음양이 서로 엇갈리는 무늬로부터 길흉이 나눠질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음양으로 엇갈리는 무늬 자체를
그대로 본떠 만든 글자가 곧 '爻'(본받을 효)라는 글자다. 하늘처럼 높은 존재인 군주는 양과 양이 계속해 엇갈려 나오는
모양, 바로 그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군주를 상징하는 '하늘'로 오르는 길을 제시한 것이 '乾'(하늘 건)의 여섯 가지 무늬, 즉 육효(六爻)다.
이를 집약해 풀이하면 맨 처음은 '潛龍(잠용)'이요 다음은 '見龍(견용)'이며, 셋째 단계는 용의 자질을 갖추는
부단한 노력 그 자체며, 넷째 단계는 용이 날기 위한 도약이라 하였다.
즉 아무리 용꿈을 꾼 장래의 제왕이라 할지라도 맨 꼭대기를 바라는 자는 처음부터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밖을 관망하며 잠자코 자리만을 노리라는 말이다.
아직 힘을 얻지 못한 처지에서 "넘치는 생각은 한갓 정신만 상할 뿐이요, 헛된 행동은 도리어 재앙만 불러들일 따름이다
(濫想徒傷神, 妄動反致禍)"는 말이다. 그러나 마냥 잠자코 있을 수는 없다. 기회가 오면 이를 놓치지 말고 일어나
천지사방으로 자신을 알려야 할 것인데, 이때 필요한 일은 자신을 키워낼 큰 스승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스승을 따라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되, 천하를 두루 감싸고자 하는 제왕이 되려면
그만큼 큰 용량을 위해 큰 스승의 가르침 아래에서 공부를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용은 물을 만나야 비로소 용이 되는 법. 일단 큰 물을 얻은 용은 마음껏 크게 뛰어 자신의 용량을 힘껏 시험해 볼 일이다.
이처럼 潛龍(잠룡)에서 飛龍(비룡)으로의 발전단계에 이르는 길흉의 무늬는 '潛龍' '萌生(맹생)' '努力(노력)'
'跳躍(도약)'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飛龍'에서 물러난 '亢龍(항룡)'에 당해서는 일단 하늘을 벗어난 자리이기 때문에
'剛柔兼濟(강유겸제)'의 겸손함으로 돌아가야 '亢龍有悔'(항룡유회· 끝까지 오른 용은 뉘우침이 있음)라는
'끝남의 고독'을 당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태어날 때부터 각각 제 나름대로 무늬를 타고 태어난다.
하늘의 별도 반짝거리는 무늬(결)로 깜박거린다. 공중에서 떠도는 바람결도 그대로 출렁거리는 물결이 된다.
빛을 지닌 별은 빛날 때에는 '짝-'하고 크게 보이더니 순간 '반-'으로 작게 보인다.
물결도 '출-'할 때는 높더니 '렁-'할 때는 낮아 보인다. 이같이 눈 깜박일 사이에 때때로 달라지는 상황은
그저 하나가 하나로 곧게 진행된다 할 지라도 '하나'의 진행에는 반드시 작용과 반작용이 엇갈려 있게 마련이다.
이처럼 작용(양)과 반작용(음)이 엇갈려 나오는 무늬(결) 모양을 '爻'라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