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피아노 조율

나무^^ 2010. 9. 5. 15:04

 

 

 

              20여년 전 친구가 딸이 어렸을 때 치던 피아노를 이제는 연주하지 않아 짐이 된다며 중고상에 팔아야겠다고 했다.

                   나는 그 피아노를 중고상에서 사겠다고 하는 가격을 주고 우리집으로 옮겨왔다. 그 당시 수출하던 영창 피아노는

                   부품이나 재질이 지금보다 훨씬 좋다며 삼대(三代)를 물려쓸 수 있다고 조율하시는 분이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우리집에 온 피아노는 오랫동안 연주되지 않은채 역시 자리만 지키며 몇 번을 함께 이사다녔다.

                   그러다 8년전 아들과 함께 살면서 가끔씩 제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곤 했다. 그애는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지만,

                   (초등학교 일학년 때 바로 옆집에서 피아노교습을 하길래 권했더니 싫다고 해서 그냥 두었었다) 대학다닐 때   

                   기타연주를 해서인지 피아노 악보도 없이 연주를 곧잘 하곤 해 음악적 소질이 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아마 그 피아노를 구입한 건 어릴적에 배우지 못했던 부러웠던 기억 때문인 것 같았다.

                   지금은 웬만하면 어린 자녀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키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아주 부유한 집이 아니고는 배울 수 

                   없었다. 이웃에 딸이 여럿 있었던 목사님 댁에 피아노가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그 때 했었지만 어머니께 말하지는 못하였다. 형편도 형편이지만 몸이 약한 나는 학교 다니는 일 하나도

                   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년전 피아노와 함께 온 책들을 펴놓고 혼자 연습해보려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작심삼일이라고 조금하다 그만두고 몇년이 또 흘렸다. 아니, 세월은 왜 그리 빠른가!

                   원래도 총명하지 못한 기억력이 더 나빠지는 것을 염려해야하는 나이가 되면서 악기 연주자 중에는

                   치매환자가 없다고 할만큼 손가락 운동이 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알기에 맘 먹고 아파트 단지 안의

                   교습소 문을 두드렸다. 일주일에 한 번 내가 지도를 받으러 가면 아이들은 나를 이상한 듯 구경한다.

 

                   그래서 건반 하나가 덜 올라오는 것도 고치고 조율도 받으려고 언젠가 한 번 오셨던 아저씨를

                   다시 청하려고 연락처를 찾느라 며칠이 지났다. 드디어 스티카를 찾아내어 아저씨께 전화를 했다.  

                   오래전에 한 번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기억하시고 반갑게 방문약속을 해주셨다.

 

                   조율을 하기 전 소리의 상태를 점검하시는 듯 한 두곡 쳐보시는 솜씨가 보통이 넘으셨다.

                   그리고 마치 피아노 조율을 천직으로 여기시는 듯 성심성의껏 하나하나 조율하며 마지막에는 먼지까지 

                   말끔히 청소해주셨다. 그야말로 피아노가 때빼고 광내는 날이 아닐 수 없었다.

                   건반을 고쳐주신 건 물론 살짝 금이 간 흰건반뚜껑까지 새로 갈아주셨다. 그것도 서비스로!!! 

                   갑자기 일이 생겨 조금 늦게 도착한 것이 미안하다며...   

                   처음에도 작업하시는 모습에서 성실함을 느껴 연락처를 받아두었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하실 뿐 아니라 친절한 성품 또한 인간미가 넘치신다. 기술이 좋으신 건 물론이다.

 

                   18살때부터 조율하는 일을 하셨다고 하니 근 30여년을 해오신 베테랑이시다.

                   그러나 다시 찾아준 것을 고마워하시며 할인까지 해주신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맑은눈이 쫄랑거리며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며 정신 사납게 해도 '이 녀석이 나보다 더 바쁘네!'하며 웃으신다.

                   까치발을 하고 피아노 속을 드러다보고 싶어하는 녀석을 번쩍 들어올려 '자, 그렇게 궁금하냐?'하며

                   보여주시기까지 하신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말이다. 이 분의 성품이 얼마나 선한지 느낄 수 있었다.  

 

                   일년에 한번 정도 해야하는 피아노 조율을 몇 년이 지나서야 하면서 할인까지 받으니 여간 죄송하지 않았다.

                   서너시간씩 애를 쓰시는 아저씨의 노고로는 싸게 느꼈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좋은 분을 널리 알리고 싶다.

                   일이 끝나고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연주해주시는데 얼마나 듣기 좋던지, 나보고도 한 곡 쳐보라 하신다.

                   자신의 일을 그토록 즐거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하는 아저씨의 진실함이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 만큼이나

                   값지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나도 이제부터는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연습하여 언젠가는 명곡을 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 아쉽게도 양쪽 팔굼치에 통증(엘보현상)이 심해서 피아노 연습하는 것을 3개월만에 중단해야 했다.

                  그래서 모든 일이 때가 있는 것이다. 악기를 다루는 일이 여러 가지로 이점이 많지만 어쩌겠는가!

                  결국 집에서 FM 93.1을 즐겨 들으며 음악감상을 하고 문화원에 나가 가곡을 노래 부른다.

 

                  아들이 가끔 집에서 주먹구구로 피아노를 친다. 그래도 나보다는 훨 잘 친다.

                  다시 조율을 하고 싶었지만 아저씨는 전화번호가 바뀌어 연락이 되지 않는다.

                  늘 건강하시고 편안하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