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4. 5. (월) 영남일보
긴 실을 감아 쓰는 데 필요한 도구가 실패다. 그런데 실패는 실을 감을 때도, 풀어 쓸 때도 돌려야 한다.
그래서 실패 모양에 손을 붙인 '專(오로지 전)'은 곧 '돌리다'라는 동사로 쓰게 됐다.
잊지 않고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나 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傳(전할 전)'이라 한다.
수레가 굴러가는 것을 '轉(구를 전)'이라 해 지구가 스스로 굴러가는 것을 '自轉(자전)'이라 하고,
지구가 해를 중심으로 굴러가는 것을 '公轉(공전)'이라 한다.
어떤 한 분야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入門(입문)'이라 한다. 한 번 입문한 이상 다른 길을 걷지 않고
그 방면을 향해 나아가는 일을 '專門(전문)'이라 하며, 그 결과 그 방면에 남다른 것을 얻었다면
전문성을 갖췄다 하고, 그런 사람을 두고 그 방면의 '專門家(전문가)'라 말한다.
실이 그것을 감는 패를 벗어나지 않고 감겨가야 하듯, 어떤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굴러 간다는 뜻이
곧 '專'이라 한다. '塼(벽돌 전)'이라는 글자 또한 흙으로 구워낸 건축재료로 동서남북 사방의 '벽'을 쌓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돌'이라는 뜻이다. 흙보다는 돌이 단단하다. 흙을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어 불에 구운
벽돌은 돌보다는 못하지만, 흙을 뭉쳐 쌓은 것보다는 훨씬 단단하다.
소문은 두 가지다. 그 중 밑바탕이 없는 소문은 심한 자극을 내포해 전파력은 빠르지만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런 소문을 '뜬소문'이라 한다.
진실에 바탕을 둔 참다운 소문은그 생명력이 끈질긴 법이다.
우선 성춘향과 이도령에 관한 소문이 그렇고, 눈먼 아비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에 관한 소문이 그렇다.
사실 춘향전이 실제로 역사에 있었던 일인가 아닌가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며,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정말 있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큰 관심사가 아니다. 그 같은 이야기를 사실판단의 대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가치판단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아무리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거셀지라도 오히려 제 속에 지닌 향기를 더욱 더 발하며
끝내 바람을 이기는 법이다. 가장 연약해 보이는 봄의 풀이 그 모진 바람 앞에서도 향기를 더욱 더 발한다.
그렇듯이 춘향전도 '봄의 향기'에 관한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다가 글로 꾸며져 오늘날까지
우리의 대표적 고전이 된 것이다.
심청의 이야기는 어떤가. 어린 청이는 아비를 위해 남경 상인에 팔려가 인당수 깊은 물속에 제물이 됐다.
아비는 아비대로 맹인 신세 탓에 잃은 딸을 그리며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움직인다는
말처럼, 다시 태어난 청이는 맹인잔치를 열어, 아비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얻어 냈다.
그래서 이름하여 '春香(춘향)'이요, 수중의 연꽃으로 다시 태어난 어린 딸 '沈淸(심청: 맑은 물에 빠진 처녀)'
일 수밖에 없다. 봄풀을 괴롭히던 이는 도를 배웠다는 '學道(학도)'요, 불쌍한 맹인을 따돌리고 달아난 어미는
'뺑덕어멈'일 뿐이다. 변학도나 뺑덕어멈은 한 패거리라, 춘향이나 심청과는 전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