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予 (나 여)

나무^^ 2010. 10. 10. 23:34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4. 12 (월) 영남일보

                           予 (나 여 : 위아래가 서로 맞물려가는 모양)

 

 

                 사람은 주위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인식이 성장한다. 갓난 아기가 어머니 자궁에 있을 때

                 감고 있던 눈을 세상에 나와서 뜨면, 자신을 먼저 바라보지 않는다. 주위 사물을 먼저 바라본다.

                '이것과 저것'을 번갈아 보며 높은 것과 낮은 것,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알게 되면서 맑은 것과 탁한 것을

                 구별할 줄 안다. 갓난 아기가 자라면서 차츰 이 세상에는 귀하게 태어난 것과 천하게 태어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밖으로 향해 있던 눈은 점점 사물과 내가 엮인 관계에 관해 관심을 갖는다.

                 마침내 자신을 바라보게 되면, 내 존재를 깊게 성찰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밖으로만 향해 있던 눈이 점차 스스로를 향하면서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는

                 다만 이것과 저것과의 관계에만 그치는 문제가 아니고, 나와 너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삶에 끊임없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굴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수'에 대한 자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잡게 된다.

                 애당초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조건속에서 그렇게 자라니, 더 이상 커질 리도 없고,

                 더 이하로 오그라질 리도 없는 '리'를 깨닫는다.

                 봄을 알리는 매화는 아무리 차가운 겨울에도 향기
를 잃지 않아 '봄의 군자'로 불린다.

                 연달아 피는 진달래나 개나리는 아무리 곱고 화려해도, 매화처럼 군자라 불릴 수는 없다.

                 애당초 진달래나 개나리니 끝내 매화가 될 리는 없다.

                 가는 실로 짜면 고운 비단이 되지만, 굵은 실로 아무렇게나 짜면 한낱 거친 삼베
가 될 수밖에 없다.

                 고운 비단은 실부터 고와야 한다. 아무 물건이나 담는 가마니는 비단처럼 고울 필요는 없다.

                 고운 비단이 되려면 우선 베틀에 매는 '생사(生絲)'가 고와야 한다. 고운 비단을 얻기 위한 제일의 조건은

                 본디 실을 말하는 '素(바탕 소: 生絲라는 뜻)'에서 비롯된다. 또한 고운 실과 실이 '날'과 '씨'가 되어 곱게 엮여야

                 고운 비단이 나온다. 고운 실로 짰지만 베가 곱지 않다면 베틀에 앉아 정성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운 실로 정성을 다해 짠 비단은 곱지 않을'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바탕을 잘 닦아야 고운 사람이 된다. 평소 바탕이 모자란데 그가 하는 일이 넉넉할 수 없다.

                 바탕이 곱지 않은데 그 결과가 고울 수는 없는 까닭이다.

                 상하로 맨 씨줄에 좌우로 들고 나는 날줄이 서로 얽혀 고운 비단이 나온다. 일 하나를 마무리해 이미 끝난 듯 싶지만

                 어느 한 끝부분은 새로운 일의 중요한 부분이 돼 또 다른 일로 꾸려져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앞뒤가 서로 맞물려 어김없이 그대로 나가는 모양'을 '予(나 여)'라 했으니, 얼마나 '나'를 잘 나타낸 말인가.

                 그러니 평소 내 바탕 실(素)을 곱게 간직해야 함은 물론 잘 가꿔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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