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5. 24 (월) 영남일보
귀중한 것을 놓을 때는 반드시 받쳐 놓는 법이다. 몸을 살찌게 하는 음식은 바닥에 놓지 말고 밥상에 받쳐 놓고
먹어야 한다. 정신을 살찌게 하는 책은 책상에 놓고 봐야 한다. 이렇게 귀중한 것들은 상위에 올려 놓고 사용한다.
올려 놓고 먹을 밥이 없으면 굶게 마련이다. 밥상에 있어야 할 밥이 없는 상태, 상 바깥에 밥이 있음을 나타낸 글자가
'飢(주릴 기)'다. 먹는 밥만이 아니라 책이 책상 위에 없어도 마찬가지다. 몸 전체를 유지해야 할 배가 넓지 못하고 줄어들면
몸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 '주린다'는 말은 채워야 할 음식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배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뜻에서
'굶어 주린다'는 말을 '주린다'고 표현한다.
예로부터 우리는 곡식을 주식으로 삼았고, 채소는 부식이 되고, 과일은 간식으로 즐겼다. 그런데 이 모두가 농사를 통해
얻어지는 것들이라, 농사의 흉풍에 따라 우리는 배불리 먹을 수도 있었고, 주릴 수도 있었다.
풍년을 맞으려면 땅만 좋아서는 안 된다. 하늘이 도와야 한다. 닷새마다 바람 한 번 쳐 주고, 열흘마다 비가 한 번 쯤 내려주는
'五風十雨'가 풍년들기에 가장 좋다. 또한 곡식을 익히는 햇볕이 쨍쨍하게 쪼여 일조량이 풍부해야 곡식도, 채소도, 과일도
제대로 익을 수 있다. 주역에서는 64괘 중 '火天大有(화천대유)'라 하여 하늘 위에 햇볕이 밝아야 풍년을 맞을 수 있다고 했다.
한 그루의 나무도 잎이 햇볕을 잘 받고, 뿌리가 물을 제대로 빨아들여야 묻힌 부분과 나온 부분이 잘 자랄 수 있는 법이다.
일조량이 부족하다거나 수분이 모자라면 상하가 다 무성할 수 없다. 작은 생명체도 이러하거늘 사람이야 어떠하겠는가.
뿌리에서 공급돼야 할 경제적 기반이 전혀 없고, 잎을 통해 얻어져야 할 인간적인 사랑이 소홀하면 정상적인 인격을 갖춰
살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뿌리박고 있는 자리도 자리지만, 만물을 뒤덮는 하늘이 잘 돌봐야 한다. 따라서 흉년을 두고도
곡식이 잘못된 해를 '饑(주릴 기)'라 하고, 채소가 흉작인 해를 '饉(주릴 근)'이라 하며, 과일이 제대로 익지 않은 해를
'荒(주릴 황)'이라 했다.
안중근 의사는 동양삼국 평화를 주장하며 평화를 해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인류의 공적으로 지목하고,
만주 하얼빈역에서 그를 저격했다. 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다 바쳐 지킨다는 대의를 온 몸으로 실천한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가운데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고 하였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지만 결코 흔하지는 않다. 밥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노력에 의해 얻어진다.
밥을 먹은 자는 반드시 밥값을 해야 한다. 밥만 먹어 몸만 돌보는 것보다는 항상 정신의 양식을 접하여
정신도 키워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