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6. 7 (월) 영남일보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물어 보는 것은 '날씨'다.
자신의 운명에 대한 물음이나 전쟁의 승패를 묻는 일은 급박한 일이기는 하나 당사자들 끼리의 일이며,
생명을 앗아가는 전염병 역시 몇몇 지역에 한정된 일이다.
사냥을 하든 농사를 짓든 날씨에 관한 일은 인간생활에 있어 삶 전체를 흔들어 놓는 문제다.
숲에 주룩주룩 비가 오면 그 속을 활개치고 다녀야 할 짐승은 가만히 굴에 웅크리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니,
인간은 사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뭄이 계속돼 산천초목이 다 타들어 가는 마당에는 곡식을 심으려 해도
심어 볼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예로부터 가장 반가운 것 중 첫째를 "칠년 큰 가뭄에 단비를 얻었다(七年大旱得甘雨)"
라 하여 "천리타향에서 고향 친구를 만났다(千里他鄕逢故人)"는 말과 더불어 대귀(大貴: 대단히 귀함)를 이루었다.
긴 장마는 가뭄에 버금가는 큰 재앙이었다. 하늘이 내리는 세 가지 재앙 물난리, 불난리, 바람난리 중에서
물난리를 제일 무서운 재앙으로 여겨, '물이 돌아 제방이 터진다'는 뜻을 지닌 '물돌아 흐를 순'자 밑에 '火'를 붙여
'災(재앙 재)'라 썼다. "불이 무서운가. 물이 더 무서운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스스로 겪은 경험에 따라 대답이 다를 수
있다. 불은 그래도 예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물은 미리 막아낼 수 있는 여지가 적어 물난리가 더 무섭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임금은 물을 잘 다스리는 일을 항상 염두에 두고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산에 나무를 심고 봇도랑을 제대로 손질해 나가야 한다.
다스림을 나타내는 '治(다스릴 치)'는 곧 물을 잘 다스린다는 뜻이다.
장마가 들고 가뭄이 오는 일은 하늘이 관여한다. 농사는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만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병이 들면 반드시 인간인 의사가 고쳐야 하는 것처럼, 예로부터 하늘이 인간의 일을
어렵게 하면 반드시 이를 풀어내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 중에서도 가뭄은 인간의 심각한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어려움을 풀어주던 이를 '巫(무당 무)'라 했다.
하늘과 땅 사이를 두고 매개해주는 일을 '工(가늠할 공:헤아린다는 뜻)'이라 하고,
많은 이들이 주목하기 때문에 좌우에 '人'을 붙여 '巫'라 썼다.
무당이 '중얼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자 비가 내리면 모든 이들은 '靈(신령스러울 령)'하다고 했다.
이렇게 '(비떨어질 령)'에 '巫'를 붙여 '靈'이라 썼다. 하늘을 감동시킬만큼 인간의 정성이 사무치면 가뭄도 풀 수 있다고
믿었다. 공자도 이르기를 "병을 고치는 의사나 신령을 부리는 무당은 변함없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