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5. 31 (월) 영남일보
무엇을 만들 때에는 아무렇게나 만들 수 없다. 반드시 쓰임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만들기에 앞서 쓰임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하게 길이를 잰 뒤에 맞게 마름질해 만들어가야 한다.
집을 지을 때는 우선 집이 들만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우북하게 자란 초목을 제거하고 기둥이 들어설
자리에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 집을 지을 터를 잡는 일을 두고 '其(그 기)'에 '土(흙 토)'를 붙여 '基(터 기)'라 한다.
집의 크기를 정하고 그 터를 닦아 주춧돌을 놓는 일을 '楚(가시밭 초)'에 '石(돌 석)'을 붙여 '礎(주춧돌 초)'라 쓴다.
아무런 기반도 없이 나서는 것은 실패를 스스로 걸머지는 셈이다. 터도 없이 집을 지으려 하거나, 터가 있다 해도
터를 단단히 다지거나 닦지도 않고 집을 지으려 드는 일은 모래 위에 집짓기와 진배없다.
몇 칸을 짓고 몇 층으로 올릴 것인가. 이에 대한 전반적인 구상은 사실 터를 장만한 후에 그림을 그려
그 크기를 셈하여 낼 것이고, 그 셈한 것을 낱낱이 품으로 정확히 헤아려 '품셈'을 내야 한다.
붓으로 집의 크기와 내용을 정확히 그려내는 일을 두고 '筆(붓 필)'로 늘어뜨린다는 뜻에서 '延(늘어뜨릴 연)'을 붙여
'建(세울 건)'이라 썼다. 건축용어로 말하면 설계를 하는 일이다. 집을 짓는 일은 곧 터전에 알맞은 집의 규모를 구상해
모든 형편에 걸맞은 설계로부터 시작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터를 제대로 닦고, 설계한 그대로 주춧돌을 놓은 뒤에 나무나 대나무를 품셈대로 가늠하여 얽은 후에
지붕을 잘 덮고나야 제대로 지은 집이 완성된다.
'木(나무)'와 '竹(대나무)'를 쓸모에 맞게 마름질하는 일을 두고 '工(만들 공)'이라 하고,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대나무로 벽을 막아 집을 올리고 지붕을 덮는 일을 '凡(덮을 범)'이라 하여
실제 집을 얽어 짓는 일을 '築(쌓을 축)'이라 했다.
'建'은 설계에 따른 구상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일이며, '築'은 나무와 대나무로 집을 얽고 지붕을 덮어 집을 짓는 일을
뜻하는 글자다.
옷을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옷감을 마름질하는 일이 곧 옷 만드는 일의 시작이다.
흔히 '시초'라는 말을 사용한다. '初(처음 초)'는 생명의 시작인 '始(비로소 시)'와 맥락을 함께 하는 글자다.
'始(비로소 시)'는 어미의 몸을 나타낸 '女'에 목(입)과 숨(코)을 상하로 붙인 '台(클 태)'를 붙여 어미의 몸속에
생명이 깃드니 '생명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모든 일은 구상만 해서는 성사될 수 없다. 그 구상대로 실제 마름질하는 '工(만들 공)'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