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8. 30 (월) 영남일보
몸이란 모임의 준말이다. 우리 몸을 분석해 보면 뼈와 살이 대부분이며, 이 뼈와 살은 곧 "부정모혈(父精母血)'이라
하여 뼈 속에 흐르는 정과 살속을 적시는 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런데 음양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단단한 뼈에 간직되어 있는 정은 아버지에서 얻어진 '양', 부드러운 살 속을 끊임없이 적시는 피는 '음'이다.
그런 뜻에서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은 부모의 은혜를 말할 때에 더러 "아버님 전 뼈를 빌고, 어머님 전 살을 빌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참 좋은 집안이라는 표현을 할 때에도 살이 좋은 집안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말한다. 한편 어떤 일을 행하여 나갈 때에 열심히 행하여 나가는 모양을 두고 '몸을 바쳐 다 한다'
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짙은 표현으로 '혈성(血誠)을 다 바친다'고도 하고, 나아가 '분골쇄신(粉骨碎身)'이라 하여
'뼈가 가루되고 온몸이 다 부서지도록 한다'라고 말한다.
'다하다'는 뜻을 지닌 글자에도 흔히 쓰이는 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앉아만 있지 않고 서서 한다는 뜻으로 '立(설 립)'에 가슴속에 든 것을 다 밖으로 드러내 말하다는 뜻을 지닌
'曷(다할 갈)'을 붙여 '竭(다할 갈)'이라 하였는데, 이는 적극적으로 행동하거나 숨김없이 다 말한다는 뜻을 지닌 글자다.
이에 비해 그릇에 담겨진 것을 불로 말려 버리든지, 아니면 붓으로 빨아내든지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만 써도
다할 수 있다는 뜻에서 '皿(그릇 명)'위에 '火(불 화)'를 얹고, 그 위에 '筆(붓 필)'을 붙여 '盡(다할 진)'이라 하였다.
따라서 똑같이 '다하다'는 뜻을 지닌 글이지만 '竭'이 말과 행동을 다하다는 뜻이라면,
'盡'은 그릇에 담겨진 것을 다 없애다는 뜻으로 다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은 '효당갈력(孝當竭力)'이라 하지만 임금님께 충성하는 일은 '충즉진명(忠則盡命)'
이라 말한 것이다. 부모를 섬기는 태도는 숨김없는 말을 하고 실행할 수 있는 행동을 다해야 하지만,
임금을 섬길 때에는 부모로부터 받은 목숨까지도 다 바쳐 더욱 적극적으로 섬겨야 한다는 말이다.
소박함으로 꽉 찼던 아주 옛 시절에는 해가 뜨면 일어나 모두 한 몸이 되어 삶을 위해 산으로 사냥을 나갔거나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오순도순 무리지어 살며 서로 다툴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소박성을
잃은 나머지 욕심이 일어나고, 전쟁이라는 못된 인류의 행각이 벌어지게 됐다.
그 때부터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피'를 바쳐야 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血' 밑에 세 사람을 붙여 '衆(무리 중)'이라는 글자가 나게 되었다.
피를 막으려는 더 많은 피들이 모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