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봄날에...

나무^^ 2011. 3. 24. 13:45

                                          

                                     

 

 

                  모진 추위를 이겨낸, 봄기운 도는 산 언덕 가득한 햇살을 바라보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의미없는 고통은 없다'는 시인 정호승씨의 글을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방안에 있어도 국내외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많은 소식들을 접하는 편리하고 번잡하기도 한 세상,

                       삶은 고통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고통 또한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는 시인의 말에 동감한다.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닫기만 하면

                       아픔의 양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것이 부족한 우리 인간이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움을 표현하고 참아내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얼마전 남편을 지병으로 앞세운 한 친구는 그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삼키며 

                       평정을 유지하여 평소 깔끔한 그녀의 성격과 인품을 다시금 느끼게 하였다.

                       수명이 늘아난 만큼 이제 혼자 살아가야 할 많은 날들이 그녀라고 왜 슬프고 두렵지 않겠는가! 

                       이혼이든 사망이든 배우자를 잃는 슬픔은 그 이유와 형태가 어찌됐는 힘든 일이다.

                       하물며 자식이야 말해 무엇하랴!

 

                       몇년전 오랜 지병으로 그녀를 괴롭게 하던 남편을 보내고 난 또 한 친구는 내게 말했다.

                      '그럼, 내가 계속 혼자 살란 말이니?' 부적절한 관계의 부당함과 함께 자유로운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내게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사랑으로 인하여 상처받은 나약함을 드러냈다.

                       그녀에게는 직업과 함께 장성한 아들이 셋이나 있었다. 또한 내세의 천국을 믿는 신앙인이었다.

                       내 침상에 홀로 눕는다고 해서 혼자 사는 삶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우주 만물들과 함께

                       긴밀한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적 생명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닌 세상이지 않은가. 

                            

                       보통 사람들의 권태로운 일상의 지루함을 자극하는 한 여성은 지난 날 자신의 치부를 모두 사죄 받은 양

                       유명인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자신의 힘겨웠던 고통을 같이 나누자고 마치 물귀신처럼 제나름 정의의 칼을

                       들이댄다.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어리석음을 포용하지는 못할 망정,

                       그것을 이용하여 고통스러운 삶의 합리성을 유지해 보려는 그녀의 처신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인간의 도덕성이나 정의는 자로 잴 수 있는 정확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행동하는 모든 인간들의 인격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절대적 기준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의 보편적인 도덕성이나 정의를 운운하는 데 그칠 뿐이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인성을 키우키 위해, 하버드대학에서의 열강 '정의'편을 

                       방영하는가 하면, 각종 대학에서는 인문학의 가치를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살면서 뜻하지 않았던 고통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기보다는

                       그것은 그저 묵묵히 참고 기다리는 '견디어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고통을 이겨내는 자에게는 그만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세상의 이치 또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심판은 하늘에 맡기고, 그 고통으로 얻은 교훈만을 명심하라는 옛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울음을 내보이지 않는다. 울어야 한다면 혼자 있을 때 얼마든지 울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들 살아가면서 울고 싶을 만큼 힘들 때가 없겠는가? 

                       자신의 고통은 스스로 감내하여 이겨낸 후 그것을 남의 이야기하듯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게 좋다. 

 

                       겨울을 이겨낸 산을 거닐며 뽀족히 고개 내민 연보라색 제비꽃, 푸릇푸릇 돋아난 쑥, 

                       이 나무 저 나뭇가지로 포르르 내려앉는 아주 작은 새들, 그 가녀린 생명들을 보면서

                       입가에 번지는 반가운 미소는 무상한 인생에 작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불행을 겪는 수많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어서 이 봄날 같은 따스함이 깃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