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 용 단 장 김 소진 作 도서출판 삼성
신림동 고시촌의 한 쉼터가 재건축 건물이 되어 문을 닫으면서 우연히 여러 권의 책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단편 소설집에는 '처용단장', '파애', '아버지의 자리' 이렇게 세 편이 묶여있다.
고전 설화 속에 나오는 처용의 노래와 소설 속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어우르며 이어지는 첫번째 이야기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지식인으로, 아내를 지닌 남편으로서 수용하고 초월해야하는 그의 내면적 갈등을
설득력 있게, 군더더기 없는 좋은 문장으로 그리고 있다. 글의 끝부분이다.
'그래, 나는 서른 살의 처용이다. 하루에 한 번쯤은 해탈을 할 나이다.
그런데 해탈은 어떻게 하는거지. 나는 짐짓 힘차게 대문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며
소리내어 아내의 이름을 길목이 떠나갈 듯 크게 불러제꼈다.
"라 윤 미, 나오라! 서 영 태 왔다!"'
그렇게 주인공은 용서하기 힘든 친구 희조와 아내를, 작가는 현실적 초월로 포용하였다.
두번째 이야기 '파애'는 아내의 글쓰기를 통하여 드러나는 내면의 상처를 보듬는 과정이다.
'아!
나는 결코 가볍지 않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파애를 번쩍 치켜들면서 문 밖으로 내달렸다.
아직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들꽃을 찾아 꺾어서는 파애 가득히 심어두고 아내를 기다리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 속에서 주먹처럼 불쑥 뻗쳤던 것이다.' 역시 글의 끝부분이다.
세번째 이야기 '아버지의 자리'는 한 가장이 자신의 어린딸에게서 마주치는 아픔을,
자신의 아버지를 회상하며 써내려간 글이다.
이 작가의 글들을 읽으며 인간의 무력하지만 따스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장편과는 다른 함축성 강한 구성과 문장으로 작가의 정신을 표현해야하는 단편의 어려움을 무난히
통과한 작가의 능력이 앞으로 더 좋은 많은 작품을 탄생시켜 삶에 힘겨운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위안이 되어주길 빈다.
* 처용가(處容歌) 中 일부
서라벌 밝은 달 아래
밤새도록 노닐다가
돌아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사람 것이 분명한데
둘은 도대체 누구 것인가.
원래 내 사람이던 이를
빼앗아가니 낸들 어쩔 것인가.
(헌강왕이 처용에게 내려준 교선이라는 여인을 농락하자 목숨의 위험을 느낀
처용은 경남 양산의 영취산,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몸을 숨긴다.)
* 처용단장 (處容斷章)
김춘수 詩
삼월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던 남쪽 바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삼월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삼다화의
뽀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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