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10. 25 (월) 영남일보
나오고 들어가는 것은 자연의 어김없는 법칙이다. 일년을 두고 보더라도 동짓날 땅속 깊이 들었던 양기가 춘분이 되어 땅위로 오르기 시작해 하짓날 절정에 오른다. 그런 뒤 다시 하짓날을 기점으로 추분이 되면 땅속으로 들기 시작해 동짓날이 되면 양기가 가장 깊숙한 땅밑으로 든다. 따라서 양기가 가장 절정에 오른 때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그 반대로 땅속 가장 깊이 든 때는 밤이 가장 길다. 양이 성하면 음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음은 묻혀두었다가 내어주고, 양은 이끌어내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천지 간의 모든 생명체들은 이런 두 기운의 조화에 따라 낳고 죽는 일을 반복한다. 음기 속에 숨은 채 자라다가 봄의 양기를 받아 익기 때문에 알 하나하나가 고개를 쳐든 채 여물 수밖에 없다. 가을에 거둬들이는 곡식들은 땅속으로 들어가는 양기에 따라 고개를 숙인 모양이라 했다. 본디 '나무'라는 말 자체가 나온 부분과 묻힌 부분으로 이뤄져 있기로 나무라 말한 것이다. 그래서 묻힌 부분에 한 획을 그어 '本(뿌리 본)'이라 하고, 땅속을 벗어나 자란 가지 끝에 한 획을 그어 '末(끝 말)'이라 하였다. 그래야 나머지줄기나 가지도 튼튼한 법이다. 따라서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마르지 않는다'고 하여 모진 바람에 견디는 나무는 뿌리의 깊이 여하에 달려 있다고 했다. '甲(첫째 갑)'이라 하였다. 그러하니 모든 일은 좋은 종자가 좋은 땅을 만나 뿌리를 튼튼히 내리는 일로부터 비롯돼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성하게 자랄 수 있는 또 하나의 조건은 뿌리가 땅속을 파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밤낮없이 지하수를 향해 깊이 파들어 가는 뿌리의 모양을 본 뜬 글자를 곧 '入(들 입)'자로 삼았다. '안속'이라는 말은 들어가 버린 바로 그 곳이라는 뜻이라, 入에 경계를 나타낸 '(경계 경)'을 합쳐 '內(안 내)'라 하였다. 나아가 '옥에 티가 하나도 없다'는 말은 '玉(변하여 왕이 됨)'에 '입'을 붙여 속까지도 아무런 티가 없다는 뜻에서 '全(온전 전)'이라 하였다. 드러난 밖보다는 안속이 좋아야 참으로 좋은 것이다. 드러난 것은 쉽게 닦아낼 수 있지만 숨겨진 속을 닦아내기에는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속까지 티가 없어야 '온전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흔히 겉으로만 그럴싸한 것은 '겉짓(거짓)'일 경우가 많다.
비단 천지 사이를 운행하는 음양의 두 기운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음이 성하면 양이 줄고,
늦은 가을에 심어서 한 겨울을 거치며 다시 봄이 거의 지나서야 거두어들이는 '보리'는
한 그루의 나무를 살펴 보자.
한 그루의 나무가 무성하게 자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바로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이처럼 일단 땅속에 심겨진 종자가 맨 먼저 껍질을 깨고 자리를 잡아가고자 뿌리를 내리는 모양을 그대로 본떠
따라서 '들다'는 말은 '밖으로부터 안으로 들어간다(自外而中也)'는 말이며,
쉽게 드러나는 밖을 살펴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일은 경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