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11. 1 (월) 영남일보
물건을 담는 그릇은 흙이나 나무로 만든 것은 물론 짐승의 뿔 속을 파내어 만든 것, 나아가 쇠로 지은 것도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역시 흙으로 지은 질그릇이다.
특히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가장 적당한 것이 질그릇인데, 이 질그릇에도 작게는 술이나 간장을 담는
깍쟁이부터 크게는 열 말 넘는 술을 담아 두는 술단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릇이라 하면 첫째, 물건을 담는 그릇 자체가 있어야 하고
둘째, 크고 작은 그릇에 걸맞은 크고 작은 덮개가 있어야 한다.
셋째, 그릇에 그린 무늬가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를 그대로 본 뜬 글자가 곧 '缶'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술을 담아 두는 술독을 '(술독 뢰)'라 하고,
이 술독에서 술을 담아 나르는 술 두레박을 '(두레박 병)'이라 하며,
술독에서 술을 두레박질 하는 일을 '冂(빌 경)'이라 한다.
그래서 술독에 든 술을 두레박질하는 것인데 두레박질 할 일이 없는 것은 술독에 술이 차 있지 않은 까닭이기 때문에
"두레박에 술을 더 담지 못하는 것은 오직 술독의 부끄러움일 뿐이다"(之矣, 維之恥·시경)라는 말이 있다.
아주 먼 옛날부터 내려온 이 말의 참뜻은,
부자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대중이 소수인들을 동정하지 않으며,
그 근본을 다스릴 줄 모르고 결과적으로 모자람만 탓하는 이들의 잘못된 행태를 풍자한 것이다.
근본을 저버리거나 대중이 소수를 멸시해 버리는 것, 부자가 가난한 이를 못 본 체 하는 일들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무겁고 가벼운 것이 위아래로 갈라져 있고, 맑고 흐린 것이 뒤섞여져 있어
마치 하나의 젓갈이 질그릇 속에 들어 있는 것과도 같다.
생선이나 고기가 질그릇 속에 뒤섞여 있는 것을 본뜬 글자는 '缶'위에 '肉(고기 육; 변하여 月)'을 붙인 글자이다.
그래서 이런 젓갈동이는 반드시 쓰기에 앞서 흔들어 주어야 한다는 뜻에서 '搖(흔들 요)'라 하였고,
나아가 같은 말이라도 가락을 지닌 말을 '謠(노랫말 요)'라 하였다.
따라서 몸 속의 '기'를 가까스로 빼내며 가락을 이어가는 것을 일러 노래하다는 뜻으로 '歌(노래 가)'라 하고,
노랫말에 깃든 감정을 가락에 맞춰 그대로 전달하는 노래의 내용을 '謠'라 하였다.
이런 뜻에서 '歌謠'는 흔들림을 떠나 생각할 수 없다.
병속에 든 막걸리를 예로 들어 보자.
담겨진 그대로 두면 위아래 물이 나눠져 이상한 맛을 내지만 잘 흔들어 상하를 소통시키고
맛을 보면 제 맛을 잃지 않고 마실 수 있다. 이처럼 가끔은 이 사회 전체가 공통된 목표를 지니고
상하가 융통되는 흔들림으로 제 목소리를 내어 합창하면 보다 건전한 사회를 향해 나갈 수 있다.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흔들림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지만 내부로부터의 자발적인 흔들림은 성숙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법이다. 하나의 옥돌이 빛나는 까닭은 이미 옥 자체가 지닌 빛이 그대로 흔들려 보이기에 나타나는데
빛 그 자체를 '瑤(반짝일 요)'라 하였다. 누구나 돌이 아닌 옥돌이라 흔들면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