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高 (높을 고)

나무^^ 2011. 4. 21. 11:02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0. 11. 15 (월) 영남일보

                       高 (높을 고 : 이층 이상의 높은 집의 모양)

 

 

              인류가 만들어낸 높은 것으로는 여러가지가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같이 토석을 모아 성을 쌓아 울을 짓고,

              그 성 위에 다시 집을 지어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구조물을 만든 것이 첫째로 치는 가장 크고도 높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물의 목적은 적으로부터 삶을 지키려는 노력의 소산이었다.

              이와는 달리 죽은 자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고 영구보존하기 위해 각종 밀실을 두고,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아놓은 것은 삶의 현실과 사후의 이상을 연결시켜 보려는 인간의 소망이 담긴 노력의 한 표현이었다.
              소박한 인심을 지닌 우리 조상들은 당상의 정간에 부모
를 모시고 당하의 행랑채에 자손이 거처하면서 언제나 염원하기를,

             "당상의 부모는 천 년의 수를 누릴 것이요, 슬하의 자손들은 만세를 두고 번영할 지어다.

             (堂上父母千年壽 膝下子孫萬歲榮)"라 하였다. 그러다가 조상이 돌아가시면 집 뒤 정갈한 곳을 택해 사당을 짓고

              4 대에 걸친 조상의 신위를 모시고, 사당의 울은 향나무로 둘러치고, 동고조 이하 많은 자손들은 한마당을 중심으로

              오순도순 지내며 죽은 조상과 산 자손이 한 울안에서 살았다.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둔 배산임수(背山臨水)로 집을 짓되, 산보다 높은 집을 짓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았다.

              설사 높은 집을 짓는다 할지라도 큰 산이 이미 사방으로 울이 둘러쳐지고 큰 물이 넉넉히 흐르는 너른 곳에 터를 잡고

              좌우로 각각 종묘와 사직을, 그 중간에 궁을 지었다. 그래서 높다란 집들이 즐비한 곳은 한적한 시골이 아니라,

              서울이었다. 높은 성안에 들어 높다란 집을 우러러 보아야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깊었기때문에

              예부터 "사람을 낳거든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거든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성위에 높은 집을 나타낸 '廓(성곽 곽)'도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글자요,

              이층 이상 층층이 높은 집을 말하는 '高(높을 고)'도 서울에 가야만 즐비한 광경을 볼 수 있는지라

              高와 京은 서로 통하는 글자일 수 밖에 없다.

              큰 것은 큰 것 속에서 나오고 높은 것은 높은 것에 머물러 있어야 비로소 나오게 마련이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이치일 것이다. 따라서 다락에 올라 천지의 유유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고,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자리한 정자에 올라 위로는 한없이 높은 하늘과 그지없이 너른 땅을 굽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십년을 경영하여 집 두채를 지었더니/ 하나는 명월주고, 또 하나는 청풍주자/

              강산은 드릴 데 없으니 그냥두고 보리라"는 넉넉한 여유도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 살핀다는 뜻을 지닌

              면앙정 송순만이 얻을 수 있는 걸림없는 자유였다.

              그 뿐인가. "천지의 유유함을 생각하다가 내 홀로 눈물 흘리노라(念天地之悠悠 獨然而涕下)"라는 진자앙의 깊은 사색도

              다름아닌 악양루에 올라 이뤄진 천고의 명시였다.

              따라서 높은 곳에 넓게 지은 집을 뜻하는 '亭(정자 정)'이나 나무로 거듭 얽어 높게 지은 집을 말하는 '樓(다락 루)'는

              거의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자리한 작품의 산실이었기 때문에 고상한 이들의 모임처였는데,

              실은 고상하다는 말 자체도 '高'에 지붕의 연기가 위로 오름을 본뜬 '尙(높을 상)'을 붙여 만든 말로

             '높고도 높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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