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1. 4. 4 (월) 영남일보
큰 네모꼴을 짓고 있는 글자는 동서남북 사방을 다 막아놓은 모양으로 '사방을 다 감싸 포위하다'는
뜻을 나타낸 글자인 동시에 어떤 장소의 안과 밖을 사방으로 분리해 놓은 경계를 나타낸 글자라고 할 수 있다.
즉 한 나라를 뜻하는 '國'(나라 국)은 첫째 나라를 구성하는 주인으로서의 백성을 뜻하는 '口'(人口의 口)가 있어야 하고,
둘째 백성이 자리 잡고 사는 터전을 뜻하는 '_'(삶의 바탕)이 있어야 하며,
셋째 백성들이 꾸려 나가는 문화의 지킴을 뜻하는 '戈'(창 과=영토와 문화를 지킴)가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남의 나라와 내 나라 사이를 가르는 나라의 경계가 있어야 하는데,
이때에 경계를 '큰 네모꼴'로 나타낸 것. 따라서 근대 이후 나라의 세 가지 요소를 백성·영토·문화라고 정의한
'나라'의 개념은 이미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國'이라는 글자에 그 주요 골자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는 언제나 남의 침략을 끊임없이 지켜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어
무기를 나타내는 '戈'가 등장하고 있지만, 내 집과 남의 집 사이의 울타리를 뜻하는 말로는 '圍籬'(위리)라 하여
굳이 무기를 사용해 지킨다는 뜻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圍'(에울 위)는 집을 나타낸 '口'(큰 네모 속의 작은 口)에 위 아래로 발자국을 뜻하는 글자를 붙여
'韋'(違의 본자=어길 위)를 사방의 경계를 나타낸 큰 네모의 울 속에 넣었다.
또 '籬'(울타리 리)란 대나무 등의 나무를 심어 안과 밖을 분리시켰다는 뜻에서
'竹'(대 죽)에다가 '離'(가를 리)를 붙인것이다.
따라서 집안의 울타리나 나라의 경계는 수시로 살피고 잘 단속해 흩어지거나 빼앗김이 없어야 한다.
다만 '우리' 속에 항상 갇혀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문'이라는 통로를 통해 안과 밖이 알맞게 소통되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열려 있을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언제나 열려 있다고 한다면 우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항상 열린 우리는 처음에는 기웃거리고 모여도 대부분 모인 자들은 언제나 달아나 버릴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린 우리'라는 말은 애당초 모였다가 흩어지기 마련이라는 뜻을 자체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人'에 큰 네모를 두르면 '囚'(갇힐 수)가 되고, '木'을 두르면 '困'(괴로울 곤)이 되니 경계 속에만 갇혀 있는 일은
누구나 싫어한다는 뜻이 분명하다.
사람은 한 가지만으로 살아 갈 수는 없다. 경제만으로 살 수도 없고,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
안에 박힌 뿌리는 경제에 힘을 쓰고 밖으로 나온 줄기나 가지, 잎들은 햇빛을 받아야 산다.
경계는 분명히 잘 지키되 안과 밖이 적당히 소통되어 가면서 지나친 내부적 단결이 배타적으로 흘러도 안 되고,
지나친 개방이 자신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해서도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 중의 하나가 '오직'이라는 구호만으로 스스로 답답함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더불어 소통하며 '우리'를 더욱 고르게 커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다 알차게 확장해 나가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