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1. 4. 18 (월) 영남일보
바닷가에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조개'이다.
크거나 작거나 나름대로 단단한 껍질 속에 살이 들어 있어 이를 뜻하는 '虫'(벌레충)에
두 껍질을 나타낸 '合'(모일 합)을 붙여 '蛤'(조개 합)이라 했다.
즉, 두 껍질 속에 살이 든 조개라는 뜻을 바로 알 수 있는 글자가 '蛤'인데 이는 엄밀히 말해서 '큰 조개'를 말한다.
이에 비해 크고 작은 모든 조개를 통칭하는 글자로는 '貝'(조개 패)가 있는데 이 글자는 조개의 모양
그 자체를 본뜬 글자다.
사냥을 삶의 수단으로 여겼던 시대 이후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먹이로 바닷가에서는 '조개'를,
들에서는 그물로 잡을 수 있는 '물고기'나 활로 쏘아 잡을 수 있는 '꿩'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산의 '꿩'은 '雉'(치)라 하여 '矢'(화살 시)에 '隹'(새 추)를 붙인 것이고,
'그물'을 뜻하는 '網'(그물 망)은 실로 엮은 그물의 모양에 새, 짐승,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하는 도구라는 뜻을
나타낸 글자이다.
한편 생각해 보면 그물이나 활과 같은 무기로 사냥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또한 힘을 쓸 수 있는 이들만이 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닌 일이었다.
그러나 바닷가에 이르러 조개를 줍는 일은 아무런 도구나 장치 없이도 쉽사리 할 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원시 사냥시대부터 주나라 이전까지 오랫동안 '돈'의 역할을 해왔던 물건이 '조개껍질'이었다.
다만 주나라 이후에는 한 동안 돈을 '泉'(돈 천)이라 이름하여 돈이란 마치 샘물이 끊임없이 샘에서 솟아나
보다 낮은 곳을 향해 밤낮없이 흐르듯 유통되는 것이라는 뜻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진시황 대에 이르러 종래 사용해 오던 '貨泉'(화천)을 완전히 폐지하고,
쇠붙이로 만든 이른바 '동전'을 사용하도록 하기에 이르러 이때부터 사용하게 된 '錢'(돈 전)은
'작은 쇠붙이'라는 뜻으로 '金'에 작다는 뜻을 붙여 만든 글자이다.
한나라 이후에 종이의 발명으로 종이로 만든 돈이 등장해 오늘날까지 '돈'은 '종이 돈'(紙錢)과
'쇠붙이 돈'(銅錢)이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돈'의 원조는 '貝'이기 때문에 금은보화와 같은 화폐가치가 높은 물건을 통틀어 '貝物'라 하고,
싸움에서 지거나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중도에 돈을 잃게 되면 '敗'했다고 하는데,
그 정확한 뜻은 돈을 말하는 '貝'에 '攵'(칠 복)을 붙여 돈을 쳐버렸다는 말이다.
재화적인 가치를 창출해내는 재료를 '財'라 하고, 바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귀중한 물건을 '貨'(재화 화)라 하며,
남의 훌륭한 일을 기리기 위해 문서와 더불어 값진 물건을 얹어 주는 일을 '賞'(기릴 상)이라 하며,
기릴 만한 일을 보고 또 물건을 더해주는 일을 '賀'(하례할 하)라 하였으니 이 모두가 '돈'과 결부된 글자다.
재화로서의 가치가 훌륭한 금은보배는 산자 속에 잘 넣어 집안 깊숙한 곳에 간수해야 한다는 뜻에서
'寶'(보)라는 글자를 만들어 썼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물질적인 보배에 불과한 것이다.
이에 비해 참다운 보배는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