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몸을 구성하고 있는 두 요소는 단단한 뼈와 부드러운 살이다.
몸을 뜻하는 ‘體(몸 체)’에서 ‘骨(뼈 골)’은 단단한 뼈를 말하지만 ‘豊(풍성할 풍)’은 부드러운 살을 말한다.
그래서 ‘體’는 몸에 관한 공간적 구조를 뜻하는 글자다. 이에 반하여 똑같이 몸이라는 뜻을 나타낸
‘身(몸 신)’은 본디 어미의 뱃속에 든 태아의 모양까지를 그려낸 글자이기 때문에, 생명을 일컫는 모든 몸은
반드시 음양의 모임으로 어미의 뱃속에서 자랐다가 밖으로 나온 것이라는 말로, 몸이 지닌 시간성을 나타낸 글자다.
그리고 ‘身’을 ‘신’이라고 읽는 까닭은 ‘굽힐 수 있기도 하고 펼 수 있기도 함(屈伸)’이라는 뜻 중에서
‘伸(펼 신)’의 소리를 그대로 따서 이른 것이며, 나아가 구조상으로 몸을 펼 수도 굽힐 수도 있는 가장 큰 까닭은
몸을 지탱해주는 제일 중요한 등뼈가 많은 관절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몸의 구조처럼 합리적으로 잘 된 것이 없다. 숨을 가두고 뱉는 큰 허파는 들숨을 들일 때에 나는 ‘허’와
날숨을 뱉을 때 나는 ‘파’소리를 합쳐 ‘허파’라 하였고, 허파가 자리한 상체를 일컬어 가슴이라 말하는 것은
숨을 가두는 곳이라는 말이다.
오장 중 신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들은 다 가슴 속에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목숨과 직접적으로 결부되는 장은
‘심장’이다. 그래서 심장을 비롯한 장기들을 절대 보호하기 위해 가슴에는 앞으로 열 개, 뒤로 열 두 개의 갈비뼈가 있다.
그러나 가슴 밑의 배에는 갈비뼈가 없다. 그 대신 뱃살이 두둑하니 두텁게 있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다.
만약 배까지 갈비뼈가 둘러쳐 있다면 몸을 굽혔다가 다시 세울 수조차 없을 것이다.
겉으로 본 형식으로 몸을 굽혔다 폈다 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나타낸 글자는 물론 ‘躬(몸 궁)’자라 말할 수 있지만,
그처럼 굴신(屈伸;굽혔다 폈다함)할 수 있는 내부적 구조는 곧 머리에서부터 꼬리뼈까지 등뼈가 끊임없이 마디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呂’에는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는 뜻을 집중적으로 지니고 있는 글자이다.
‘呂’와 ‘人’을 합성시켜 놓으면 떼어 놓으려야 떼어 놓을 수 없는 ‘侶(짝 려)’가 되고,
나아가 서로가 짝이 되려면 반쯤은 서로 양보하는 사이라야 한다는 뜻에서 ‘伴(짝 반)’이라 하였다.
삶에 있어서 ‘짝’은 귀중한 것이다. 우선 첫째, 남녀의 가장 가까운 짝은 다름 아닌 ‘부부’요,
둘째, 부모와 자녀가 또한 짝이며, 형과 아우가 둘도 없는 짝이다. 그래서 바람직한 짝을 지닌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더 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짝’을 잃으면 곧 서로의 상대가 되는 ‘雙(짝 상)’을 잃었기로 이를 일러 ‘불쌍(不雙)’하다고 말한다.
아내를 잃은 홀아비나 남편을 잃은 홀어미가 일단 불쌍한 존재요, 부모 잃은 고아나 형제 없는 독자는 불쌍한 존재다.
이른 바 맹자가 말한 ‘鰥寡孤獨(환과고독)’이 불쌍한 존재의 네 시리즈다. 그러니 함부로 ‘고독’하다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 물론 인간은 본래부터 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에 군중 속의 고독을 말하기도 하나 사해안의 동포를
다 내 형제로 받아들이면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