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夢 (꿈 몽)

나무^^ 2011. 12. 7. 18:26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011. 11. 28 (월) 영남일보

                  [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213] 夢(꿈 몽) : 잠 속에서 진행되는 의식 활동          夢 (꿈 몽 : 잠 속에서 진행되는 의식활동)

 

 

                  사람은 누구나 잠을 잔다. 잠이란 의식이 지배함에 있어 실제 행동하는 때와는 달리, 의식이 밑으로 가라앉아

                  머릿속에서 모든 생각이 일시 쉬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외형상 잠을 잔다고 모든 의식까지 잠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겉으로는 잠을 자는 것 같지만 머릿속은 더욱 많은 생각으로 꽉 차있다.

                  실제 활동할 때보다 훨씬 복잡한 의식활동이 진행되는 수도 있고, 또는 의식이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가운데

                  뚜렷한 하나의 꾸밈이 드러나는 때도 있다.

                  이런 경우를 꿈(夢), 또는 꿈인 듯 아닌 듯 하는 사이(非夢似夢間)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모두의 경우를 통틀어 ‘꿈’이라 말하는데 꿈이란 바로 ‘꾸밈’을 줄인 말로,

                  잠자는 동안에도 지각 활동이 살아나 움직여 일을 꾸미는 상태를 이른 말이다.

                  이 같은 뜻에서 집안에 들어 잠을 자는 동안이라는 뜻으로 ‘寐(잠잘 매)’에 ‘目(눈 목: 옆으로 젖혀 놓음)’에

                  덮는다는 뜻을 나타낸 ‘(풀 초)’와 어둠을 나타내는 ‘夕(석)’과 ‘덮다’는 뜻을 나타낸 ‘(덮을 멱)’을 합성시켜

                  본디 ‘꿈’을 뜻하는 글자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복잡한 자획을 덜어버렸다. ‘꿈’이란 오직 밖으로는 어둠이 깔리고, 눈을 감아야 비로소 일어나는

                  일종의 생리 현상일 따름이라는 점에서 ‘夢’이라고 썼다.

                  그러나 반드시 어둠이 깔리고 눈을 감아야 꿈이 드러나는 것만은 아니다.

                  아주 옛날 자연시대에 있어서는 낮에 일어날 일들의 길흉을 어둠이 깔리는 밤에 달과 별을 각 방면에서 관찰했다.

                  그 결과를 눈을 감은 상태의 명상을 통해 밝혀내었기로 ‘夢’이라 썼다는 설도 그럴 듯한 설득력이 있는 풀이다.

                  꿈의 종류로는 ‘바른 꿈(正夢)’, ‘놀라는 꿈(夢)’, ‘생각 끝에 나온 꿈(思夢)’, ‘깨달음을 주는 꿈(悟夢)’,

                 ‘기쁨을 주는 꿈(喜夢)’, ‘두려움을 주는 꿈(懼夢)’, ‘신령스러운 꿈(靈夢)’ 등이 있다고 ‘주례’로부터 전해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꿈은 대부분 낮에 골똘히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밤에까지 연장하여 내놓는 경우가 허다(晝思夜夢)하다.

                  때문에 밤낮으로 연결되는 의식의 연장이 곧 꿈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또한 꿈을 분석하고 보면 식욕과 색욕, 두 가지 본능과 직결되어 있다고 여긴다.

                  무너진 한나라 왕실을 부흥해보려는 원대한 꿈을 안고 세 차례나 남양 땅 제갈공명의 초가를 방문한 유비에게

                  마지막 방문 날, 공명은 유비에게 은근히 다음과 같은 시를 벽상에 붙여 보였다.

                 ‘초당에 봄잠이 족한데 창밖을 보니 아직도 해가 뉘엿뉘엿 하노나. 큰 꿈을 뉘 먼저 깨달을까?

                  평생 내 혼자 알리로다(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 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흥망이 유수한데 한실을 부흥하려는 그 큰 꿈을 뉘 먼저 깨달을 수 있었을 건가.

                  벅찬 꿈을 유비 자신은 자신의 꿈이 어떤 것인지를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공명만이 그 큰 꿈의 성패를 알 수 있었을 것인가.

                  돌아가신 뒤 일생을 물질적으로 결산해 보니 단지 뽕나무 팔백 그루뿐이었다는 무소유의 주인공 공명만이

                  삼국쟁탈의 소용돌이 속을 아무런 사심 없이 고스란히 바라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무욕한 심정에서는 눈을 뜨고도 신령스러운 영몽은 항상 꾼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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