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超 황안웅 선생의 말과 글
식물에서 얻는 열매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누면 사과·배·복숭아 등과 같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열매와,
넝쿨로 뻗어가는 식물에 있어서 넝쿨과 넝쿨 사이에 매달려 있는 열매가 있다.
나무에서 얻는 열매는 모양 그대로 나무가지에 매달려 열매를 맺기 때문에 이를 본 떠 ‘果(열매 과)’라 한다.
그러나 넝쿨에 매달린 열매는 원 넝쿨에서 다시 뻗은 넝쿨과 넝쿨 사이에 매달리기 때문에 이런 열매를 일컬어
‘瓜(오이 과)’라 한다. 따라서 나무에서 얻는 열매로서의 ‘果’는 땅을 벗어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넝쿨에 달려진 ‘瓜’는 땅바닥에 받쳐진 채 수박· 참외 등과 같이 거의 다 덩그렇게 커가는 것이 특징이며,
또 반드시 한 꼭지에 하나가 열린다.
이런 뜻에서 ‘果’나 ‘瓜’는 다 같이 ‘열매’로서의 ‘과’라고 읽는 소리 값은 같지만,
‘果’는 용하게도 땅 바닥을 벗어나 가지에서 뻗은 가지 중에서도 아주 작은 회초리 같은 가지(枚; 회초리 매)에
열려 있기 때문에 ‘열매(매에 열렸다는 뜻)’라 하였다. 그러나 ‘瓜’는 똑같은 열매이기는 하지만 원 넝쿨에서
뻗어내린 넝쿨과 넝쿨 사이에 자리를 잡고 땅 바닥에 받혀진 채 반드시 한 꼭지에 한 개가 열려 ‘果’보다는
좀 더 크게 무럭무럭 자라는 생리를 지녔기로 ‘외롭다’는 뜻에서 ‘외’를 취하여 ‘오이 과’라 하였다.
이렇게 넝쿨에서 자란 ‘瓜’가 별다른 맛이 없고 단지 대부분 물맛 뿐이면 ‘물 외’라 하고,
그와는 달리 색깔이야 어떻든 간에 단맛이 나면 이를 ‘참 외’라 하고,
모양이 커서 큰 그릇을 만들 수 있는 것은 크다는 뜻을 지닌 ‘(클 과)’에 ‘瓜’를 붙여 ‘瓠(박 호)’라 하였다.
아무튼 속말에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고, 오이 밭에 이르러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
(李下不整冠 瓜田不納履)”는 말은 애당초 남에게 오해 받을 만한 짓을 하지 말라는 뜻이기는 하나
오얏나무 아래와 갓, 외밭에서의 신발을 짝을 지은 것은 각각 위 아래로 짝이 될 만하기 때문이다.
‘瓜’에는 집중적으로 외롭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子’을 붙이면 부모를 잃은 아이를 뜻하는 글자로 ‘孤(외로울 고)’라 하는데
흔히 ‘獨(홀로 독)’과 비슷한 뜻을 지니는 것으로만 안다. 그러나 ‘獨’은 부모는 계시지만 형제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친해야 할 인간관계 중에서 부모와 내가 첫째요, 형제와 내가 둘째인데
이 둘의 관계가 다 없어진 상태를 ‘孤獨’ 이라 말한 것이다.
맹자의 세 가지 즐거움 중에 “양친 부모께서 다 계시고, 상하 형제가 다 아무런 일이 없음이 첫째 즐거움이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라는 말씀처럼 적어도 부모형제와 나 사이에 오가는 정이나 또는 이미 오고간 정을
되새기면 고독할 게 없는 일이다.
타고난 품질이 거의 같은 ‘박’ 중에서도 가늘고 긴 모양을 한 것을 일러 ‘표주박’이라 이르고,
둥글고 큰 것을 일러 보통 ‘박’이라 한다. 또 같은 ‘박’이라도 단 맛을 지닌 것은 식용으로 쓰지만,
쓴 맛을 지닌 것은 단지 그릇으로만 사용될 뿐이다.
아마도 쓴 것은 단 것을 일시적으로 담아두는 그릇일 따름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