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한정록'을 추려 번역한 책이다.
숭불 자체가 탄액의 대상이었던 유교사회에서 불교에 깊이 심취하여 파직 당하면서도 늠름했던 그가
도교사상, 은둔 및 신선 사상과 함께 사회 개혁적인 면모를 보인 것은 훗날 실학의 비조라 할 수 있다.
그는 삶의 지침이 되는 주옥 같은 글들을 읽으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글들을 골라 편집하였다.
이 글들을 한문을 모르는 이들을 위하여 역자는 한글로 읽기 쉽게 풀었다.
'이태백의 시에,
청풍명월은 일전이라도 돈을 들여 사는 것이 아니다. (靑風明月不用一錢買)라고 하였고,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는 이르기를,
저 강상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이여,
귀로 듣노니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노니 빛이 되도다.
갖자 해도 금할이 없고 쓰자 해도 다할 날이 없으니
이것은 조물(造物)의 무진장이다.라고 하였으니,
소동파의 듯은 대개 이태백의 시구에서 나온 것이다.
무릇 바람과 달은 돈을 들여 사지 않을 뿐더러 그것을 가져도 누가 금할 이가 없는 것이니
태백과 동파의 말이 진실이다.
그러나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되지 않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도 일년 동안에 또한 몇 날이 되지 않는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이 낙을 안다 할지라도 세속 일에 골몰하여 정신을 빼앗기거나
혹은 장애로 인하여 비록 그를 즐기려 해도 즐기지 못하는 자가 있다.
그렇다면 일없이 한가하게 있으면서 돈을 들여 사는 것도 아니요,
게다가 그것을 가진다 해서 누가 갖지 못하게 금할 이도 없는
이 청풍명월을 보고서도 즐길 줄을 모른다면,
이는 자기 스스로 장애를 만들어낸 것이다.'
-경서당잡지-
'어떤 선비가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밤이면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되
날이 갈수록 더욱 성의를 다하자, 어느날 저녁 갑자기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상제께서 너의 성의를 아시고 나로 하여금 네 소원을 물어오게 하였노라."
선비가 대답하기를,
"제가 원하는 바는 아주 작은 것이요, 감히 지나치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승에서 의식이나 조금 넉넉하여 산수 사이에 유융자적하다가 죽었으면 족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중에서 크게 웃으면서,
"이는 하늘나라 신선의 낙인데 어찌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만일 부귀를 구한다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헛된 말이 아니다.
내가 보건데, 세상에 가난한 자는 춥고 배고픔에 울부짖고
부귀한 자는 명예와 이익에 분주하여 죽을 때까지 거기에 골몰한다.
생각해보면, 의식이 조금 넉넉하여 산수 사이에 유유자적하는 것은
참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극락이건만 하늘이 매우 아끼는 바이기에
사람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가난하다 할지라도 도시락 밥 한 그릇 먹고 표주박 물 한 잔 마시고서
고요히 방 안에 앉아 천고의 어진이들을 벗으로 삼는다면,
그 낙이 또한 어떠하겠는가.
어찌 낙이 반드시 산수 사이에만 있겠는가.'
- 금뢰자(金罍子)-
'옛사람이 지은 글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금으로 만든 완구가 가득한 좋은 집이거나 대나무로 울타리를 한 초라한 띠집이거나
이 모든 것에 무심해야 한다.
처사(處士)가 진실로 무심으로 세상에 응한다면,
쓰여져 높은 벼슬에 오르거나 버려져 초야에 은거하거나 간에
어디 간들 유유자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유심하다면
빈천은 말할 것도 없고 지극히 부귀를 누린다 해도 유유자적할 수 없는 것이다."
-임거만록(林居漫錄)-
'북송의 호안국이 많은 제자 가운데 양훈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일이 일마다 만족스럽게 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약간 부족한 것이 좋은 것이다.
만약 사람의 일이 일마다 모두 만족스럽게 되면
곧바로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이것은 쇠함과 성함의 이치가 그러한 것이다."
- 공여일록-
'왕휘지는 산읍에서 살았다.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 잠이 깨자 방문을 열어놓고 술을 따르라 명하고 사방을 보니 온통 흰빛이었다.
일어나서 거닐며 좌사의 초은시(招隱詩)를 외다가 갑자기 대규 생각이 났다.
이때 대규는 섬계에 있었다. 그는 작은 배를 타고 밤새 가서 대규집 문에 이르렀다가는
들어가지 않고 돌아섰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흥이 일어 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가니 어찌 꼭 대규를 보아야 하는가?"
-세설신어-
'오직 독서만이 유리하고 무해하며,
오직 산수만이 유리하고 무해하며,
오직 풍월(風月)과 화죽(花竹)만이 유리하고 무해하며,
오직 단정히 앉아 고요히 말없이 있는 것이 유리하고 무해한데,
이러한 것들을 지극한 즐거움이라 한다.'
-미공비급-
'남북조 시대의 문신 안지주는 말하였다.
"재물 일천만 냥을 쌓아도 작은 기예(技藝) 한 가지를 몸에 지니는 것만 못하고,
기예 가운데 쉽게 익힐 수 있고 또 귀한 것은 독서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면식이 많기를 바라고
널리 보려고 하면서도 독서를 하려 하지 않으니,
이는 배부르기를 구하면서 밥짓기를 게을리 하는 것과 같고,
따뜻하기를 바라면서 옷 만들기를 나태하게 하는 것과 같다."
-안씨가훈-
이 책의 내용을 알리기 위해 몇 편의 글을 올렸다.
아담하고 예쁘게 디자인된 이 책을 오며가며 짬짬히 읽음으로 삶의 양식으로 삼으면 좋을 일이다.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전자기기만 두드리며 오가는 것을 보면 왠지 그들이 누리는 젊음의 시간이 아쉽게 느껴진다.
또한 모두들 정신없이 분주한 삶에 매여 피곤함을 느낄 때 이 한 편의 청량제 같은 글들을 읽음으로
잠시 마음을 쉬어가는 여유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내가 아는 마음이 고운 이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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