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북스
어릴적 개에게 물린 적이 있는 나는 자연히 개를 무서워하며 귀여운 강아지조차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와의 만남은 내 의도 이상의 그 무엇이 있는지, 직장을 그만 둔 나에게 올케는 떠맡기듯이
낳은지 한 달 정도 된 귀여운 강아지를 안겼다. 짐승은 그냥 가져가는 게 아니라며 돈 삼만원까지 내놓으라며...
자신 없다고 사양하던 나는 정 못키우겠으면 다시 가져오라는 말에 그 귀여운 모습을 들여다 보다 그만 안고 돌아왔다.
시끄러운 전철 소리 등에 죽은듯이 꼼짝않고 내 품에 안겨있던 따뜻한 생명은 그대로 거실 상자곽에서 잠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밤, 정신을 차렸는지 막무가내로 거실에서 혼자 자지 않겠다며 침실문을 긁어댔다.
처음부터 따로 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생각하고 버티던 나는 강아지의 성화를 견디다 못해 그만 문을 열고 말았다.
이불발치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양이 측은하여 결국은 한 방에서 잠드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맑고 예쁜 눈동자에 매혹되어 이름을 '맑은 눈'이라 짓고 남편과 함께 많은 곳을 데리고 돌아다녔다.
이상스레 그 맑고 검은 눈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연상케하곤 하였다. 혹시 딸과 헤어지는 것을 그리도 비통해하셨던
어머니의 영혼이 깃든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일들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겠지만...
높은 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을 물론, 얼마나 영리한지 시댁에 간 첫 날 스스로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 얌전히
변을 보아 '무슨 개를 실내에서 키우냐'며 질색하시는 시아버지와 눈치 보는 나를 안심시켰다.
한 번은 산책 나갔다가 암내를 맡았는지 사라져버려 시간반을 찾아 헤매다 들어왔는데,
두세시간 지나서 피를 흘리며 4층 계단까지 올라와 쓰러진 것을 이웃이 알려주었다.
놀란 나는 무거운 개를 안고 병원까지 10여 분을 달려가 치료를 받으며 땀을 닦았다.
앉지도 못하고 며칠을 끙끙거리며 앓던 녀석은 무사히 완쾌를 하였다. 제 씨를 퍼뜨리기 위한 본능은
이렇게 톡톡히 댓가를 치루어야 했다. 제대로 하기나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후로 오도바이나 산악자전거를 보면 혼비백산하며 달아나는 양이 그런 것에 치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살가운 정을 나누며 함께 산 건 겨우 2 년 정도였다. 동물에 대해서 무지했던 나는 녀석을 혼자 두고
자주 외출을 하고 여행을 다녔다. 공부를 하던 아들은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야 돌아왔다.
내가 견디기 어려웠던 남편과의 이별이 녀석에게도 힘들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늘 현관 앞에 움크리고 앉아 그가 올 때를 기다리는 모습은 더욱 내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나는 생각다 못해 동무하라며 어린 강아지를 한 마리 사와 함께 지내게 하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어린 강아지에게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는 게, 이 녀석이 천방지축이였다.
제 먹이 다 먹고 형 밥그릇 뺏기는 예사고 그럴 때마다 맑은눈은 짖지도 않고 점잖게 물러나며 봐주곤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인가 자폐증 아이 모양 구석에 쳐박혀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쟤가 왜 저러나?'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였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의를 요해달라는 경고인 것을 나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먹은 것을 토해서 병원에 가니 장염 감염이라 링거를 맞아야 한다며 입원을 시키라고 했다.
외로움에 면역력이 약해진 녀석을 병원에 두고 오니, 직원들도 밤에는 모두 퇴원하여 혼자 철창 속에서
힘겨운 밤을 보낸 것이다. 다음 날 병원에 가서 본 맑은눈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상해서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지만 다시 데리고 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고비를 이겨내야만 살 수있어요.' 의사의 말이었다. 그리도 건강하던 녀석이었는데...
병원 간지 이틀만에 녀석은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차라리 통원치료를 받았더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나의 부주의로 녀석이 죽은 것 같아
마음이 몹시 아프고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예방주사를 맞혔다고 했던 어린 강아지가 장염균을 옮긴 것이다.
그래서 동네에 다른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에게 새로 사온 강아지와 물품 모두를 주었다.
잘 키워주길 바라면서... 그리고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년쯤 지났을 때였다. 집을 나서는데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이쪽 저쪽 출입구 앞을
분주히 오가며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애를 쓰고 있었다.
"왜그래? 주인을 잃어버렸니?" 나는 다정하게 물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강아지는 내 무릎에 기어오르며 머리를 바짝 기대고 날 도와주세요 하는게 아닌가?
그런데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5개월쯤 된'코카 스파니얼') 도저히 그대로 돌아설 수가 없어서
안고 관리실로 가서 방송해줄 것을 부탁하고 볼일을 보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궁금하여 들렀더니 그 날따라 방송이 안 된다며 직원이 프린트물을 붙이겠노라 했다.
그럼 주인이 찾아갈 때까지 내가 임시로 데리고 있으마 하고는 연락처를 남기고 집으로 안고 왔다.
저녁에 돌아온 아들은 깜짝 반기며 좋아라 했지만 '다시는 안 키운다고 하더니 잘 생각하세요' 한다.
곧 찾아가겠지 생각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주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애들이 좋아서 키운 강아지를 성가시게 여긴 어른이 그만 내버린 것 같았다.
주렁주렁 매달린 장식 목걸이를 풀어내고, 맑은눈과 비슷한 크기, 같은 색깔을 지닌 녀석을 다시
'맑은눈'이라고 부르며 병원에 데려가 모든 예방접종을 시키고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안타깝게 떠나야했던 맑은눈이 다시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끔씩 먼저주인이 생각나서인지 그 조그만 생명이 한숨을 폭폭 쉬어 나를 어이없게 하며 웃게 했다.
이 녀석은 훈련이 되지 않아서인지 똥오줌도 못 가리고 애교부리는 데만 선수였다.
"넌 맑은 눈 이름 가질 자격이 없어. 좀 더 영리해야 돼!" 내가 투덜대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려서인지 천방지축 명랑하여 나와 아들을 웃기며 재롱을 떠는데는 모두 용서가 될 정도였다.
그리고 일년이 지나 성견이 되자 말썽부리던 많은 행동들을 어느 날부터 일체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철이 든 거였다. 아니면 자신을 거두어 준 주인을 이제는 그만 골탕 먹어야겠다고 결심이라도 했는지...
이제 맑은 눈은 아직 한 가지 훈련은 덜 되었지만 (그건 의도적인 것 같다), 나와는 가장 친근한 가족이 되어
서로 신뢰하는 존재가 되었다.
녀석과 주 4회 산으로 산책을 가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과로 서로의 심신 건강을 도와준다.
자연스럽게 녀석을 관찰하게 되면서 전에는 몰랐던 많은 귀한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과의 나눔 못지않게 짐승과의 나눔이 삶에 즐거움과 활력을 느끼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장황하게 내 경험을 이야기한 것은 동물과의 교감이 내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이 책에 글을 쓴 이들 못지 않게 느꼈기 때문이다.
유명한 생물학자인 저자들은 그들의 관찰대상과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뽐내던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왜 우리가 짐승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야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솔로몬의 지혜'를 쓴 '콘라드 로렌츠'의 책을 통해 눈을 뜬 나의 동물에 대한 이해가 강아지를 키우게 하였고,
지금의 맑은눈을 잘 키우기 위해 개의 대한 지식과 이해를 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은 무지했던 내게
자연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느끼게 해주었다.
침팬지을 연구하며 일생을 보낸 제인구달을 비롯하여 거북이, 원숭이, 앵무새, 올빼미, 당나귀, 물고기, 돌고래,
코끼리, 고양이 등등 다양한 생명체와의 교감을 통해 그들은 지구에 존재하는 자연과의 상생에 대해서 말한다.
인간만을 사랑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 사랑을 느끼는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풍요로움이 필요한 일임을 알게 해준다.
이제는 점차 새들도 사라지는 숲에 들어서면서, 그나마 몇 안되는 작은 새들의 노래소리를 듣기 위해
낱알 한 웅큼을 주머니에 담고 집을 나선다. 다람쥐를 비롯한 날짐승들을 볼 수 없는 삭막한 숲을
뛰어가는 맑은눈은 낙엽 깔린 흙길, 나무들과 어울려 그대로 한 폭의 움직이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솔숲에 나란히 앉아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솔향기 가득...
맑은눈의 윤기나는 작은 코의 미세한 움직임을 보면서 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그리고 죽은 맑은눈을 대신해서인지 산악자전거와 오도바이만 보면 빼놓지 않고 짖어대는 녀석을 번번히 달랜다.
동물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책을 읽음으로 놀라운 사실들에 접하고 동물들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으며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강아지를 혼자만 집에 두어야 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키우지 않는 것이 좋다. 사람만 외로움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강아지도 외로움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져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짐승은 우리와 다른 존재이지 우리보다 못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그들도 우리가 느끼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며 살아 숨쉬는 생명체이다. 주인에게 보답도 할 줄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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