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다큐 '선라이즈 선셋' ; 달라이 라마 (티벳)

나무^^ 2013. 1. 23. 16:47

 

                                          

    

 

                                              감독   비탈리 만스키

                                제작   러시아, 중국, 인도 (2010년. 73분)

                                출연   달라이 라마

 

     새벽3시 기상, 런닝 머신, 오체투지, 기도와 명상, 그를 보기 위해 몰려온 사람들에게 설법하는 일,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일상을 담담히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된다.

     

          1935년 7월 6일 티베트 농가에서 눈을 뜨고 태어났다는 특별한 아이는 티벳을 이끌어 갈 정치적 종교적 수장이 되었다.

          전임 달라이 라마가 열반하면 그 환생자를 찾아 옹립하는 티벳의 독특한 체제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달라이 라마'는

          고유명사이자 직위를 나타내는 보통명사라고 한다.

 

          이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달라이 라마의 이력은 다음과 같다.

         '제13대 달라이 라마인 ‘툽텐 갸초’가 열반하자 1937년 티베트의 섭정관 ‘레팅 린포체’는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찾기 위해

          고승들을 전국으로 보냈다. “다리에 호랑이처럼 줄무늬가 있고, 커다란 눈동자와 활처럼 휘어진 눈썹과 커다란 귀,

          어깨엔 두 개의 사마귀, 마치 관세음보살처럼 기다란 두 팔과 손바닥에 조개 모양의 손금이 있는 사내아이를 찾아라.”

         ‘툽텐 갸초’는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환생할지 몇 가지 단서를 남겨두고 떠났던 것이다. 어렵게 고른 몇 명의 후보 중에서

         ‘라모 톤둡’이 가장 유력했다. 

          이렇게 새로운 달라이 라마를 찾은 티베트 정부는 1939년 ‘라모 톤둡’의 가족을 티베트의 수도 라싸로 불렀다.

          포탈라 궁의 새 주인이 된 ‘라모 톤둡’은 ‘잠펠 나왕 롭상 예쉬 텐진 갸초’라는 이름을 부여 받았다.

          이 이름은 ‘성스러운 분, 영광의 수호자, 진리를 설하는 분, 자비의 화신, 믿음을 지켜주는 분, 지혜의 바다’라는 뜻이었는데,

          새로운 ‘달라이 라마’는 ‘지혜의 바다’라는 뜻의 ‘텐진 갸초’를 주로 사용하였다.

          1940년 2월 22일, ‘라모 톤둡’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로서 즉위식을 가졌다. 사람들은 그를 ‘쿤둔’이라 불렀다.

         ‘쿤둔’은 ‘살아 있는 부처’라는 뜻으로 마땅히 공경 받을 만한 분에 대한 존경의 이름이었다.'

 

          1950년 10월 7일 중국은 무력으로 티벳을 침공하고, 현재 인도에 망명중인 그는 힘을 잃은 정부의 수반으로 

          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받고 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영화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시작되는 것을 증언한다.

 

          밀리고 밀려 현재 인도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그는 중국인민공화국의 일부가 되더라도 상관없으니 티벳의 고유한

          자치권만은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그는 정치수장이기에 앞서 불제자이므로 비폭력을 주장하지만 수많은 티벳민중은

          중국에 항거하며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식민지 역사를 겪은 우리로서는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이러한 중국의 비인류적 무력도발에 침묵하고 있다.  
          그는 티벳 난민들의 정착을 도우며 티벳 승가의 복원에 힘써 나라는 잃었지라도 불법은 잃지 않을 것을 바라고 있다. 

          따라서 그를 추종하는 세계의 수많은 불제자들이 찾아와 그의 정신적 세력을 넓혀주며 함께 마음을 모우고 있다. 

          평생토록 고난에 처해진 삶이지만 종교인으로서 삶의 모범을 보여 주는 그는 늘 평상심을 잃지 않고 희망의 메세지를

          보낸다. 자신의 삶을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삶의 지혜를 설법한다. 

          그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1994년 세계 안보 평화상과 루스벨트 자유상을 수상하며, 이 시대 최고의

          평화 수호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런 강인하고 아름다운 정신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가 믿는 불법의 자비심에서 비롯된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윤회와 삼라만상의 의존성을 바르게 인식하는 

           그의 의식은 보통 사람들의 근시안적 사고관을 뛰어넘어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그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일어나고 스러지는 세상만사가 저 하늘의 태양처럼 우리가 알 수 없는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무장을 하고 그를 보호한다.

 

           현실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본질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절대적 진리란 없다고 믿는 것이다.

           자아가 실체없음을 깨달은 이에게 실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육체적 고통,

           그것은 감각에 의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세상살이에서 비롯되는 고통들이 대부분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란 절대주의와 허무주의의 양극단을 피하는 것임을 설법한다. 
           이러한 불교의 지혜를 모르는 무지한 이들은 무조건적으로 종교를 신봉하며 의지하려고 한다.

           따라서 많은 종교인들이 무지와 이기심으로 종교의 본질을 잊고 분쟁을 일삼는 것이다. 

 

           세계 불교의 중심지이자 세계의 지붕인 티베트는 해발 평균 고도 3,500m이다.

           그 곳엔 신을 믿으며 자기 헌신을 통해 불멸의 삶을 추구하는 수 많은 불교신자들이 살아가고 있다.

           달라이 라마 14세의 인도 망명으로 반세기동안 주인 없는 박물관으로 전락해버린 포탈라 궁이지만 여전히

           전세계 불교신자들의 성지(聖地)로 불리우며,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런닝 머신에서 체력 단련을 하는 ‘달라이 라마 14세’의 평범한 일상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하지만 기도하고, 명상하는 하루의 시작은 특별하다. 특히,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는 ‘오체투지’는 자기 자신을 무한히 낮추고 5가지 마음의 부정적 기운을 없애며 불•법•승 삼보에게 

           존경을 표하는 큰절을 하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는 경건하다.

           그리고 우리 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에서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 온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법회 모습,

           쉬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는 그의 평온하지만 확신에 찬 메시지... 

           제작팀이 달라이 라마 와 헤어진 후 인도에서 출발해 중국을 통해 본국 러시아로 돌아가는 동안에

           그의 메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장면들을 그려내고 있다.

           전세계 60억 인구 중 50억 인구가 개발 도상국의 빈민층에 속한다는 감독의 나레이션과 함께 비춰지는

           인도 천민층의 모습과 대조되는 부유한 삶을 영위하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그의 평범해보이는 말 속에

           답이 있음을 보여준다.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 그러나 저녁이면 해는 사라진다. 그동안의 햇빛을 즐기라고 말하는 그의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세상만물을 고루 비추는 햇빛...

           가장 어두운 날에 희망을 생각하고 가장 밝은 날에는 불행의 원인을 생각한다는 말 또한...

 

           끊임없이 윤회하는 생과 사, 그에게 있어 죽음은 낡은 옷을 벗어버리는 일이요,

           탄생은 새로운 옷을 입는 것에 불과하다. 이생에서의 삶이 다음 생을 결정하며 이어진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공덕과 보시는 필수이며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리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장면이 있는 다큐는 아니지만 그의 설법에서 그가 믿는 불교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다큐 영화이다.

           나 또한 티벳의 자치가 이루어지는 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생활을 바란다.

           그 속에 평화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