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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격 (페터 비에리)

나무^^ 2015. 7. 1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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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사 보았다. 작가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삶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따라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내게 이 책의 내용이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읽는 동안 삶이 지향해야하는 바를 다시금 재확인하는 점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한 책이다. 사고력을 좀 더 성숙시켜가야 하는 많은 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 이다. 

 

이 책 첫 장을 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을 수 있다.

'존엄성은 하나가 아니라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이 많은 것들이 한 인간의 삶에서 서로 얽혀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그것을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간 존재의 광대한 지도를 그리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오만은 불가피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관대히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1901년 리스본 페드루 바스쿠 데 알메이다 프라두 <중요한 것에 대하여>

 

위의 문장으로 그는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지닐 수 있는 오만을 관대히 품어줄 것을 바란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가는 서문에서 '존엄'의 의미에 대해서 자신이 접근하고 있는 바를 밝힌다.  

'이 책에서 내가 말하는 존엄이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특정한 방법이다. 그것은 사고와 경험, 행위의 틀이다.

이러한 존엄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틀의 개념을 행동으로 나타내고 생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을 매번 이해하고 인과관계에 관해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다. 존엄성에 대한 경험에 담긴 직관적 내용을 끝까지 자기 것으로 만드는 그것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또 나자신은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이 모두에 있어 존엄성은 지켜지고 있는가?  그리고 또 어떤 결함을 통해 불행해질 때 느끼는 존엄성 상실은 다시금 균형을 잡고 일어설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며...

이 책은 8 개의 큰 단락으로 나누어 문학작품들을 예로 들며 존엄성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1 장 독립성으로서의 존엄성을 설명하면서 내적 독립에 이르는 '사고'의 가치를 역설한다.  

유명한 소설 '샐러리맨의 죽음'에서 주인공 '로먼'이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가장으로서의 존엄성을 예로 든다.

'자아인식의 범위를 내면으로 확장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무력감과 굴욕을 당할 위험이 줄어든다. 앞으로는 그리 쉽게 남에게 의존하거나 협박당하거나 예속당하지 않는 것이다. 내적 강박을 양분으로 한 외적 노예화는 그 원천이 어둠 속에 숨겨져 있을 때에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내가 그 뿌리를 밝은 곳으로 끌어다 놓고 그것과 다른 것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나면 그가 가진 힘은 사라진다. 내적 권위를 다시 회복하면 존엄성도 따라서 바로 선다...'

 

2 장 만남으로서의 존엄성에서 카프카의 소설 '소송' 등을 예로 짓밟히는 존엄성을 보여준다.

여러가지 설명 중 특히 마음에 와닿는 '존엄성을 지키는 이별'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별의 존엄성은 인정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둘 사이의 관계를 위해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인정해주고 만일 그를 하찮게 여긴 적이 있었다면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비난을 절대화하지 말고 일의 경중을 구분한다.

또한 상대방을 통합된 인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자신이 그에게서 미처 보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가로막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인정해야한다. 관대할 필요도 있다. 관대함은 상대방이 자기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되어주었던 사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관대함은 오직 자아성찰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3 장 사적 은밀함을 존중하는 존엄성에서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을 두려워 하랴' 에 나오는 부부의  대화를 통해 존엄성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존엄성은 무엇인가? 사적인 것에 대해서 말을 아낌으로서 타인과의 사이에서 유지되는 간격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간격이 필요한 이유는, 침묵의 경도를 조금 무르게 함으로써 사람 사이의 친밀감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리처럼 투명하다면 친밀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좁혀야 할 거리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좁혀야 할 거리라는 것이 애초부터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모두에 대해서 다 알고, 그 중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으로 이야기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친밀성이 자아내는 신비한 마법도, 마법이 만들어내는 행복도 없다...'   

   

4 장 진정성으로서의 존엄성에서는 크고 작은 수많은 거짓말이나 허세가 불러오는 어리석음에 대해 말한다.

나는 예전에 거짓말을 잘 하는 친구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녀는 어떤 일로 인하여 거짓말이 습관이 된 나머지 친구에게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거짓말을 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고자 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열등감을 일으켰고, 나는 그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면서 수시로 느껴야 한 불쾌함으로 우리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5 장 자아 존중으로서의 존엄성에서는 자신을 돌보는 일과 책임을 강조한다.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서 스스로를 돌보는 것은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건강과 능력을 돌보는 것, 내적 강박에서 벗어나서 더 큰 독립성을 추구하는 것, 자신의 삶이 가진 논리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 그리고 그 삶에 의미와 방향을 찾아 주는 것 등이 있다. 실패를 한다고 해도 자아존중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위의 것들이 가진 중요성을 더 이상 인지하지 않을 때, 그리고 결국 손을 완전히 놓아버릴 때 비로소 위협이 된다. 거기에는 그 어던 불변의 잣대도 없다. 그러므로 설사 어떤 일로 인해서 병이 든다거나 생명의 위협이 다가온다고 해도 누군가는, 나는 이렇게 살 것이며 다른 삶을 원치 않는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아 존중은 자신의 결정권을 인지하는 데 있다...'

 

6 장 도덕적 진실성으로서의 존엄성에서 그는 절대적 도덕성의 경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베른 하르트가 말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런 것이겠군. 막대한 고통과 자신의 도덕적 존엄성을 근거로 한다면 재난이 어느 정도로 심각해야 타인 존엄성 수호의 엄격한 원칙을 무효화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아니면 다른 말로 해볼까? 장애물을 뛰어넘는 자의 도덕적 위기는 얼마나 중대하고 심각해야 하는 것인가? 아이 하나가 납치될 정도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비행기나 핵발전소처럼 수많은 생명이 걸려 있어야 되는가?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과연 누가 그것을 결정하는가, 하는 문제요."...' 이는 도덕적 진실성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지 끊임없이 사고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7 장 사물의 경중을 인식하는 존엄성에서 그는 말한다.

사람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지만, 죽음을 모든 경험의 종착역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아직 경험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로 공포심을 지닌다. 죽음의 순간에 겪을 고통에 대한 공포, 그보다는 죽음으로 인해 놓쳐버릴 인생에 대한 두려움일 수 있다. 

'자신이 정한 사물의 무게가 바람직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에서부터 인생을 바라본다면 무엇인가가 아주 천천히, 고되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 뭔지 이해하는 것, 그리고 내 의식 안으로 새롭게 들어오는 욕구와 그 인생을 대비해보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의 방향이 스스로 원하고 결정한대로 흘러가고 있는지, 또한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살면서 돌아보고 수정하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독립성을 가진 존엄성이다.  

 

8 장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존엄성 에서는 타인의 소멸과 자신의 소멸을 바라보면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의 자세에 대한 존엄성을 말하고 있다. 

'아직 내가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때 훗날 내 독립성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그래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스스로 결정해야 이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 자연적인 죽음을 뜻한다. 인간은 자신의 자연적 죽음이 어떤 모습을 하길 바라는가? 죽는 과정은 삶의 마지막 사건이다. 그리고 그 삶은 개인마다 다 다르다. 한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인생과 그의 마지막 모습이 서로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 죽음의 존엄성이 가지는 기본 개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각자 서로 다른 개별적 죽음의 과정, 자신만의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는 삶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죽을 수 있게 놓아두는 것이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본인의 의사여부와 관계없이 고통스럽게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최선은 아닌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91살에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서 한 달여쯤 삶을 연장하시다 퇴원하여 돌아가셨다.     

작은 오빠는 그 분의 목숨줄을 놓지 않는 것이 효도라고 믿었지만, 큰오빠와 내 생각은 아니었다. 그만 편안히 보내드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내 아버지는 살아 생전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한 적 없이, 흔들림 없는 무위의 삶을 성심껏 살다가신 천성이 착하고 훌륭한 분이셨다. 

따라서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존엄하길 바랬다. 의식없는 아버지에게 하직을 고하고 예정된 여행길에 오른 나는 낯선 이국땅에서 쓸쓸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명복을 빌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우리들 자신의 삶에 대해서 깊은 통찰을 유도해간다. 온통 편리한 문명의 혜택속에 파묻혀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을 우려한다. 이 책에 예로 등장하는 여러 문학 작품들을 읽어보았다면 더욱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