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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 ; 인디고 연구소 기획)

나무^^ 2014. 11. 17. 19:58

 

 

   

                                

삶에 있어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희망을 지니는 일이다.

따라서 이 책은 나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고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유를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우리 시대 가장 첨예한 문제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사유의 틀을 제공한다.

1989년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2000년대에는 '유동하는 현대' 시리즈를 펴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유럽 아말피 상, 아도르노 상, 아스투리아스 상을 수상하였다.

바르샤바 대학의 교수였던 그는 1968년 폴란드에 만연한 반유대주의 때문에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 폴란드를 떠났다. 현재는 영국 리즈 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인디고 연구소팀이 바우만의 저작들을 읽고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과 답을 정리하였다. 2부에서는 영국의 사회학자 '키스 케스터', 바우만 전집 편집자인 미켈 야콥슨, 리즈 대학 교수이자 바우만 연구소 소장인 '마크 데이비스' 등이 그에게서 받은 영향과 학문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대담을 하였다. 

 

'숨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는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게 될 세계를 우리가 순전히 선택하지 않았으니 이루길 원하는 것과 실제로 이룰 수 있는 것 사이의 충돌은 빈번히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울리히 벡'의 '체계적인 모순을 개인적으로 해결해야하는 처지'라는 말을 인용하여 우리가 처한 이러한 체계적인 문제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단순명료하지 않음을 설명한다.

근대적 삶의 방식이란 기획(project)을 향해 살아가는 것을 뜻하지만, 그건 또한 현실 이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많은 불안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리감독과 통제의 필요성이 도출되므로 공동의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감시 대상자의 선택권을 최대한 없애는 체제에서, 선택의 기회나 생각의 가능성이 적으면 적을수록 보다 상황이 나아지는 고체 근대의 시대가 '혁명적 변화의 태동'을 의미하는 액체 근대의 시대로 이동되었다고 말한다. 즉 변화 그 차체를 삶의 영구적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에 직면했다. 따라서 우리는 지속적인 변화의 상태에서 살아가기에 적합한 행동양식과 삶의 기술을 습득하고 발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룬 성취는 축적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삶은 불합리적 추론이 만들어 낸 사건들로 점철되기 때문에 자신의 존엄을 지키면서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동시에 세속적 성공의 현명한 행동 양식을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모순인가!

그렇다면 그 해법으로서 첫째 '해방'을 말한다. 그 의미는 어떤 것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두번째 자질로는 '개인적 책임'이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독립적인 주체가 된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이며 내가 내린 위험한 결단이 초래하는 결과까지도 책임지고 기꺼이 껴안는다는 것이다.

 

'액체 근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세 가지 조건에 내던져진다는 뜻이다.

첫째,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둘째, 에측하려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결코 측정되지 않는 지속적인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즉 감당하기 힘든 변수들이 있기 마련이다.

세째, 신뢰의 위기 속에서도 과감히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믿을 만한 일이 미래에는 비난받거나 배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개인의 책임을 넘어 자기 결단과 해방의 자유, 거대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공동의 노력을 위한 책임의 '통각'을 길러야한다.

 

극도의 경쟁과 끝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소비주의 시장의 억압은 '배우면서 잊어버리기'라는 모순에 당면하며, 오늘날의 배움이란 내가 믿어왔던 진실, 기술, 지혜 등을 바꾸는 능력까지 포함하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기존적 인지의 틀을 뒤흔들고 원칙들을 거부하며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재생산해야하는 3차 학습의 능력은 거의 병리적인 수준의 학습과정이며 심지어 광기의 징후라고 까지 표현된다.

 

고체 근대의 단계에서 기본적 전략의 원칙은 약자를 그들의 책임하에 종속시키는 방식이었지만 최근 들어 책임은 권력을 가진 소수의 거대 집단으로부터 약자들에게 이동하고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 그 누구도 사회전반에 체계적으로 쌓여가는 책임을 지지 않으므로 제한된 선택권이 주어진 약자들에게로 넘어가고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진정한 배움이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결단이며, 견고한 지평을 뒤흔드는 도전이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 희망이 자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학력이라고는 없는 나의 아버지는 위기에 처했을 때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다.

'세상일이 맘대로 되면 부자 아닌 사람이 없지.' 나는 자식들을 위해 좀 더 능력발휘 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은근히 속으로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나이들어 부모의 역할이 힘든 것을 깨달으며 그 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대로 그 분은 개인적 존엄성을 지키며 최선을 다해 사셨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내린 결정들에 후회는 없다. 그에 따른 힘겨운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지만 크게 성취한 것도 없다는 사실에 삶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 그 과정이 그저 한 개인의 진실한 삶이었을믈 알게 되었다.  옳다고 믿은 선한 신념대로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해서 대견하게 생각하는 존엄성을 지니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극도로 치닫는 물질 만능주의는 억압된 현대인에게 소비의 자유만을 무한히 누리라고 부추긴다. 심리적 광풍 속에 매몰되지 않고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우만이 말하는 사실들에 통감해야한다. 세상이 복잡해지면 질수록 사유하는 일이 힘들어지고, 편리함에 길들수록 치루어야하는 댓가는 커진다. 자신을 통제하며 공동선을 향한 의지를 지니고 살아가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이 책은 그러한 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희망을 지닐 수 없다면 삶의 변화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의 말처럼 숨쉬는 한 희망해야 한다. 그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는 인간의 삶을 반짝이는 빛으로 채울 수 있는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