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자음과 모음 출판
학창시절 나를 감동시켰던 책 '데미안','지와 사랑', '유리알 유희' 등,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사랑이라니 얼마나 궁금한가!
1946 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는 독일인 아버지에게서 러시아 국적을 지니고 태어났다.
어머니도 선교사 일을 하는 개신교의 교양있는 집안이었다. 인도에서 동양문화를 접한 그는 신학교를 그만
두고 불교사상 및 노장철학에 심취한다. 그는 전쟁 등으로 스위스로 망명하지만 독일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 글을 엮은 작가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여러 편지와 문서를 찾아내 헤르만 헤세의 여인들을 소개하였다.
그의 생각이나 의견은 거의 담기지 않고 헤세나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사실을 바탕으로 쓴 책이었다.
사진 작가였던 '마이아 베르누이', 그녀는 9 살 연상의 여인으로 그를 진정으로 한없이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지도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나는 저녁마다 한 여인을 만나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머리카락이 검은, 매력적이면서도 거친 야생마 같은 여인입니다... 기껏해야 네 턱수염에 닿을 정도로 자그마한
여인이지만 그녀의 열정적인 키스는 나를 거의 질식하게 만듭니다. 물론 나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결혼에 대한 소질도 없는 거 같고요. 대신에 나는 이미 다 녹슬어버린 사랑의 기술을 다시금 되살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들은 1904년 혼인하였고 세명의 아들을 두었다. 마리아는 헤세와 자녀들을 돌보고 정원일을 하느라 늘 과로했다.
헤세는 작가로서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당연한 일이겠으나 가장으로서는 그리 바람직한 사람이 될 수없었다.
혼자 모든 살림을 꾸러나가야 했던 그녀는 점점 지치고 우울해졌다. 헤세 역시 40 세 이후부터는 정신분석 요법에
임해야 할만큼 사회적, 개인적 삶에 혼란과 좌절을 겪으며 힘들어 했다.
'나의 사상이나 예술관 때문에 내 인생에서, 혹은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종종 어려움에 봉착한다.
나는 사랑을 부여잡을 수도, 인간을 사랑할 수도 삶 자체를 사랑할 수도 없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헤세와 이혼한 후 노년에 다른 남자와 함께 살았지만 그들은 모두 헤세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여자를 곁에 두는 것을 부담스러워한 그였지만 그에게는 항상 매력적인 여자들이 접근했다.
감성적인 그 또한 남자인지라 여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어머니가 아니었지만 그는 아내에게
냉담했다. 별거생활에 들어간 이후 성악가였던 29 세 연하의 '루트 벵거'와 교제한다.
루트는 끊임없이 그의 정부가 아닌 아내이기를 원했다. 그는 언제나 결혼을 원하지 않았지만 여인들은 집요하게
그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결국 아버지의 압력까지 동원하며 헤세와 결혼했지만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할 수없었다.
헤세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역시 현실적인 도움을 주기보다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루트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자 헤세는 불임시술을 하여 책임지기 힘든 아이를 더는 낳지 않았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각자 다른 공간에서 생활하며 불과 몇년 가지 못하고 루트는 이혼을 원했다.
그 후 학창시절부터 그를 존경하며 사모했던 여인 '니논', 미술사학자였던 그녀는 헤세보다 27 세가 아래였다.
그녀의 상류층 생활습성은 헤세를 불편하게 했다. 그녀가 마음대로 여행하도록 배려하면서 서로 자유롭기를 바랬다.
남편과 이혼하고 그와 결혼한 니논은 헤세의 노년을 함께 하지만 헤세는 그녀에게서 행복하지 않았다.
헤세는 수행자로서의 정신적 삶을 동경하였기에 육체적, 현실적 삶에 적응하는 것을 매우 힘겨워 했다.
젊은 여자들에게 있어 사랑이란 '소유'였기에 헤세는 그녀들의 결혼욕구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결혼은 여느 결혼하고 다를 바 없다네. 나로서는 결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네. 오랜 망설임과 저항 끝에
어찌할 수 없는 체념, 아니면 이 여인에 대한 너그러운 양보라고나 할까. 어쨌든 난 이 여인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네. 그녀가 다 늙어빠진 나를 유혹하고, 나의 욕망을 일깨워주고, 나를 타락시켰다네. 그리고 내 집안 살림을
성실하게 꾸려주고,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있다네. 난 건강이 좋지 않아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섭취해야
하거든. 하지만 가끔은 내가 편하게 지내는 게 오히려 비참하다는 생각이 든다네. 그럴 때면 발가벗고 밖으로 나가
비를 흠뻑 맞고 싶은 심정이라네.' (1932년 3월 말 헤르만 헤세가 알프레드 쿠빈에게 보낸 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동경했던 한 작가의 육체적, 정신적 삶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 했다.
같은 여자로서 첫번째 아내 마리아에게 동정과 함께 존경심을 느꼈으며, 섬세하고 민감한 헤세의 문학성에
감동하며 그를 한 인간으로서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하여 그림도 많이 그렸다.
전문가의 솜씨는 아니였기에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주는 위안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10 월 말까지 전쟁기념관에서 그의 수채화 전시를 한다고 하니 친구들과 가보아야겠다.
그리고 읽지 않은 그의 책 '정원일의 즐거움', '페터 카멘친트'를 사보고 싶다.
그의 시 '안개 속에서'는 인간의 절대고독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 아니던가!
(마리아 베르누이 1903 년경)
(루트 벵거 1929 년)
(니논 돌빈 1927 년) (니논 돌빈과 헤세)
< 헤르만 헤세의 수채화 >
안개 속에서
헤르만 헤세
안개 속을 혼자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덩쿨과 돌들은 저마다 외롭고
나무들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나의 생활이 활기에 찼을때
세상은 친구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지금 안개에 휩싸이니
보이는 이 아무도 없구나.
어쩔 수 없이 모든 것들로부터
인간을 홀로 격리시키는
그 어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일 수 없다.
안개 속을 혼자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
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혼자인 것이다.
'좋은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 (0) | 2015.12.25 |
---|---|
걷는자의 꿈, 존뮤어 트레일 (신영철) (0) | 2015.10.14 |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作) (0) | 2015.08.31 |
승효상의 건축여행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0) | 2015.08.12 |
그리고 산이 울렸다 (할레드 호세이니 作) (0) | 2013.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