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4.5. (수)이 손없는 날이라는데, 운좋게도 웃돈을 치루지 않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마도 내 삶의 마지막 가장 큰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사하기 전 두 주일간이나 새로 산 아파트를 수리해야했다. 지은지 24 년 된 낡은 아파트에서 무려14 년간이나 전세금에 부분월세를 올려주며 살았던거다. 세월이 빠르기도...
2년마다 재계약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성가셨으나 몇 년전 사당동에 아파트를 분양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모자라 이사하지 못하고 전세를 놓아야 했다. 이 아파트는 산속에 있는지라 건강관리에 좋고 가격도 낮아서 내가 살기에는 아주 쾌적하였다.
십여 년 헤어졌던 아들과 다시 만나 살게 된 이 아파트에서 그리 오래 살게 될 줄 알았다면 진작에 사서 수리하고 살면 좋았을 것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일억 오천만원 정도 하던 아파트(지은지 10 여년 되었을때)를 이제 삼억천육백오십만 원을 주고 사서 수리하였다. 사실은 그것도 싼 가격이었다. 몇군데 알아보았지만 이만한 곳이 없었다. 다행히 멀지않은 탓에 1동에서 5동으로 오르내리며 손수 공사를 살피고 자재를 선택하며 인테리어 인력비를 절약하며 들인 비용은 삼천만원 조금 더 들었다. 부동산 실장이 말했던 공사예상금액보다는 오육백만 원을 초과하였다. 유리창 샷시부터 보일러 공사, 베란다, 화장실 방수공사까지 그야말로 뼈대만 남겨놓고 몽땅 새로 고친셈이었다. 넉넉하게 생각하고 대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갑을 탈탈 터는 사태를 초래하고 그 고단함이라니...휴!
그런데 이사하길 참 잘했다 생각될 만큼 매일매일 이 집에서 바라다보는 산의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도로변에 벚꽃이 가득 핀 산을 내다보는데, '아! 이곳이 천국이구나! 무엇을 더 바랄수 있으랴!' 할 만큼 아름다웠다. 깨끗한 유리창, 하얀색 실크벽지와 밝은 오크무늬의 문들, 새하얀 싱크대, 꽃화분들로 장식한 베란다, 그 뒤로 펼쳐지는 포릇포릇 연두빛 물오르는 산의 정경과 화사하기 이를 데 없는 벚꽃 향연... 고단한 심신을 어루만지고도 남았다. 아름다운 바흐의 선율이 흐르는 공간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내집이 곧 '전망좋은 까페'처럼 느껴졌다.
서재로 쓰던 안방을 문간방으로 바꾸는 바람에 가구배치를 다시하고 오래된 책을 많이 버려야했다. 말이 포장이사지 이번에 이사를 의뢰한 업체는 그야말로 일을 엉망으로 했다는 것을 하나하나 다시 정리하면서 알았다. 그러나 다 끝나고 난 뒤 말해서 무엇하랴, 부동산 실장에게 다른이에게는 그 업체를 소개하지 말라고만 했을 뿐이다. 그녀도 공사업체들을 소개하고 신경을 많이 써주었으므로 감사하게 생각하던터라 좋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사짐 나르는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수고를 보면 뭐라고 잔소리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조금만 더 신경써서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마무리를 했으면 좋았을 것을... 혼자 주방정리를 정성껏 하신 아주머니께는 선물로 무엇 하나 쥐어 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못내 마음에 남았다.
보름간의 수리를 하기 위해서 열집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한다는 관리실 규약에 따라 빈 손으로 동의서를 내밀기 미안해 맛난 떡을 해서 집집마다 돌리며 소음을 참아주십사 양해를 구하였다. 이틀에 걸쳐... (그 소음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랬는데도 아래층 할아버지는 관리실에서 난리를 치며 화를 내서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하다시피 해야만 했다. 그리고 힘에 부쳐 조금씩 조금씩 정리를 하다보니 한달도 더 걸렸는데도 아직도 끝내지 못하였다. 더구나 서재방에는 인터넷 선 연결을 하지 않아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공사할 때 놓친거다. 궁여지책으로 안방에서 아들이 사용하지 않는 노트북을 주어 글을 쓰자니 여러 가지가 여의치 않다. 계절마다 변하는 산의 풍광이 가득 들어오는 집! 이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지금은 아카시아꽃이 가득 핀 숲을 보며 절로 미소짓는 나날이다. 산에 가는 건 물론, 집안에서도 마치 산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정말 좋다. 산에서 살려고 강원도 양양에 사놓았던 땅이 남편과 함께 사라지고 느꼈던 허탈함이 생각난다. 남편 없는 나로서는 교통이 편리하고 집관리가 수월한, 아파트이지만 서울에서의 산 속 생활이 제격이다. 그나마 노년을 전원에서 살고 싶었던 한 가지는 바라는대로 된 것 같아 흐믓하다.
작은 오빠가 '전원에 가서 살지 않을래?' 묻는다.
내가 답한다. '내가 사는 이곳이 산촌이예요.ㅎㅎ' 말 그대로 이곳은 찻길만 건너면 산으로 들어가는 서울의 산촌이다.
시원찮은 직장을 다니면서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아들은 합격을 해야만 결혼을 한다며 나이를 먹어간다. 나로서는 그가 결혼해 나가도 좋고, 나와 함께 살아도 좋다. 조만간 하겠지 했던 생각을 접고 개의치 않기로 한거다. 어미의 사랑은 그를 존중하고 그가 원하는 삶으로 가는 여정을 지켜봐 주는 것 이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할때 나를 도와주거나,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도 자식이라는 명분은 그 모두를 인내하게 한다. 사람은 모두 제 몫의 인생이 따로 있으며 그 그릇을 자신 이외에는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 분수에 만족할 줄 아는 지혜를 익혀가는 나날, 이 또한 즐거움과 편안함이리라.
그런데 다 좋을 수만 없는 법,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바로 아랫층 할아버지의 성화로 노래연습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물병과 악보책을 챙겨들고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아름다운 가곡을 잠시도 듣기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산 중턱에 아침이면 운동을 하고 비어있는 베드민턴장이 제격이다. 주 이삼회 오르던 산을 더 저주 갈 수밖에 없다 그 덕에 운동을 좀 더하게 되었다.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생각하고 선선히 살아가면 돠는 일이다.ㅎ
초록이 무르익는 나날,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덮힌 꽃길을 걸으며 행복함을 느낀다.
'안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를 맞아... (0) | 2018.01.01 |
---|---|
작곡가 이 안삼 선생님을 만나고... (0) | 2017.10.05 |
이 좋은 가을에... (0) | 2016.11.02 |
호안 미로전을 보고... (0) | 2016.08.30 |
동대문 프라자 미술전시회 (0) | 2016.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