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

마음이 그릇이다 천지가 밥이다 (임지호 作)

나무^^ 2018. 3. 23. 14:36

 

마음이 그릇이다 천지가 밥이다

 

 

지은이  임지호, 한지원

   출판사  샘터                

 

 언젠가 TV에서 다큐로 소개된 그를 보아서 사게 된 책이다. 읽을 책이 많아 책꽂이에 한동안 있다가 이제야 읽었다. 다른 책과 달리 가로 넓이가 좀 넓고 저자의 독특한 사진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식탁에서 아침식사를 할 때마다 읽었다.

 

 저자와 한지원 방송작가가 번갈아 글을 쓰는 방식으로 엮은 내용을 재미있게 읽었다. 요리사진도 잘 감상하였다. 점차 '개천용'이 사라진다는 시대에 자수성가한 그의 인생은 일터가 곧 학교이자 수양처이며 피땀어린 노력의 산실이었다. 어려서 '주워온 아이'라는 놀림이 싫어 열 한살에 집을 떠나 방랑의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는 한의사 아버지의 자식이었다.  

 생모는 그를 임신한 채 시집을 갔지만, 결국은 버림 받고 생부에게 자식을 내놓아야 하는 설움을 안고 돌아가다 교통사고로 죽은, 참으로 불운한 여인이다. 본가 어머니는 그를 친자식 이상으로 돌보았지만 그의 내면에 잠재된 외로움을 달래주지 못했다. 그는 생모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본가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을 안고  세상의 다른 어머니들께 밥을 지어 대접한다.

중국집, 한정식집, 리비아 건설업자들의 식당 등등 안 가본 데없이 닥치는 대로 취업을 전전한 그였다. 처음 집을 나와 배가 너무 고파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줄행랑을 친적도 있었다. 몇년 후 그 빚을 갚으러 갔지만 식당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는 자연에게서 사람에게서 삶의 진리들을 배우며 깨달아 간다. 연탄배달을 할 때를 회상하며 쓴 글이다.

 

<봄에 꽃이 피고 꿀을 모으는 부지런한 벌들을 자세히 보면, 녀석들은 꽃 위에만 앉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벌들은 오물더미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꽃에서 꿀을 따다 모으고, 재래식 오물 더미에서 유산균을 채집해 꽃에서 따온 꿀에다 섞어 저장한다. 꿀이 오래 두어도 썩지 않는 것은 오물에서 건져온 유산균이 쉬지 않고 활동하기 때문이다. 거기 빗대어 보면, 나의 인생은 오물더미에서 유산균을 채집하는 시간이 꽃 위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훨씬 길었다고 할 수 있다. 내 몸을 굽혀 검은 연탄을 드는 일은 세상에 나를 낮추는 일이었고, 그 자세로 세상을 보니 세상은 참으로 배울 것 많은 곳이었다...>

그는 고생하며 세상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연속이였으니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인가!

나는 한 해가 넘게 찬장에 두어도 변하지 않는 꿀병을 신기하게 들여다보며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ㅎ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의 신비로움이라니! 

 

이 책은 1장 따뜻한 밥상, 2장 고마운 밥상, 3장 건강한 밥상, 4장 꿈꾸는 밥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스승을 만나 요리를 배우게 된 일과 이제는 스승이 되어 요리를 가르치는 과정이 나온다.

<요리를 하면 할수록 무언가 진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방랑 끝에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그것은 '자연 요리연구가'였다. 산을 다니며 열심히 풀을 공부하고, 각 지역별로 다양한 음식 문화를 터득하고, 그것을 토대로 요리를 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그는 을릉도에서 자생 식물 연구가 이 덕영 선생을 만난다.

<산당, 명심해라. 토종은 아름답고 힘이 세고 멋이 있다. 내 말, 뮌 말인지 알지? 그걸 다 터득하면, 요리는 저절로 될 거야.>

나뭇가지와 뿌리는 다르게 생겼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겉모습이 같은 것 처럼 사람 역시 자세히 보면 그 속이 드러나게 마련이고 마찬가지로 음식도 만든 사람의 마음 따라 그 충실함이 드러난다는 그의 말은 웬만큼 인생을 살은 사람이라면 동감한다. 

뒤늦게 절집 선방에서 만난 음악을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게 되고 문화 예술인 지인들의 후원으로 양평에 음식점을 차려 정착하게 되고 아들도 둘 낳아 잘 길렸다. 그의 식당 메뉴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그때그때 즉흥요리가 나온다고 하니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건강을 지키는 기본은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리라... 山堂은 해마다 건강검진을 받듯, 마음에도 건강검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몸과 마음이 편치 않다는 신호 중 하나가 가위눌리는 일이라고 산당은 말한다.> 그가 겪었던 지인이 몹시 가위눌리던 일을 읽으며 나 역시 심신이 허약하던 때 몹시 가위 눌리곤 하여 시어른들을 심려케 했던 일이 생각난다.

'병이 마음에서 온다'는 말처럼 나의 심약하고 어리석었던 마음이 몸 건강에 충실하지 못해 벌어졌던 일이었다.

 

그는 몹시 부지런하다. 젊어서 산전수전 겪으며 고생으로 단단해진 심신은 여전히 바쁜 생활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주방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부족한 직원을 호되게 야단치기도 하지만 다시 그를 감싸듯 음식으로 따스한 마음을 전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잠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듯, 자극이 있지 않으면 게으름을 떨치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란 걸 주방에서 배웠습니다. 한결같지 않으면 그리고 정성이 떨어지면, 맛은 변합니다. 그러고 보면 맛은 손으로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드는 귀한 노동임에 틀림 없습니다...> 이래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이 자식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리라.  

 

늘 서성거렸지만 한사코 사양하던 그에게 뜨근한 국수를 말아주셨던  한 식당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글을 읽을 때 나는 내 어머니가 몹시 그리웠다. 후에 자식이 철이 들어 효도를 하려고 할 때는 이미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그는 다른 어머니들께 공양을 한다.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지붕 아래 머무는 삶은 죽은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나는 그때 무엇을 찾아다녔던 것일까요?

아마도 나에게 그 긴 여행은 외로움을 이겨내는 수행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온 세상에 나 혼자이고 천둥벌거숭이 같다는 외로움 그리고 공포, 그것을 이길 무언가가 필요했었나 봅니다. 그 길에서 나는 '맛'이란 오아시스를 찾아내고, 요리란 세상을 여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나는 자유롭습니다. 이제 나는 떠나도 행복하고 머물러 있어도 편안합니다. 그래서 그 세상을 내 아내에게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자연을 벗 삼으며, 힘겹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밥 나눠 주는 아름다운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던 아내, 음악 전문가에서 이젠 주방 보조가 돼버린 아내, 현실에선 분명 내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지만, 그녀를 날게 해주고 싶습니다. 접시 위에 펼쳐진 내 정성 위에서 그녀가 날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아내는 분명 그의 아름다운 구속을 기꺼히 행복해 할 것 같다. 두 사람이 한 곳을 바라보며 손 잡고 살아가는 일보다 더 든든하고 좋은 일이 있겠는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요리를 따라 해보거나 먹어보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충분히 그 요리를 맛보고 즐긴 느낌이다. 순진하고 고상한 영혼을 지닌 저자의 삶이 지금처럼 늘 축복 속에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