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푀르스터 지음
고정희 옮김
나무도시 출판
책표지로 저자의 사진이 나온 책들이 많지만 이 분처럼 좋은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책은 드물다.
노년의 자애로운 인상이 편안해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책을 읽으며 이는 존경스러움 때문이다.
숙근초 육종가이자 정원사이며 작가였던 그는 1874년 독일 베를린에서 출생하여 원예학교에서 도제로 일을 시작하나 허리병으로 몇년간 중단하고 20대에 들어서 식물원 원예사로 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96세로 별세할때까지 60여년을 포츠담 보르님에 머물며 숙근초 신품종을 362종이나만들고 27권의 책을 집필했다고 하니 얼마나 왕성한 활동을 하며 살았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늦은 나이인 50세가 되어 결혼했지만 어리고 사랑스러운 아내를 얻어 딸을 낳고, 평생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사랑한 분이었다.
천문학자이자 교수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 3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다.
전쟁을 두 번이나 겪으며 망명을 하는 시련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줄 아는 그의 탁월한 재능은 어린 시절 다복한 가정의 진보적인 부모님 영향이 컸으며 평생을 꽃들과 함께 한 아름다운 마음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독일이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위에 있다'는 대목이 나오는 노래를 부르지 않아 선생님에게 쫓겨나는 일화가 나온다.
<'독일이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위에 있다고? 정의, 법, 양심보다도? 그럴 수는 없지.'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평생 간직한 그는 독일이 어떤 국가여야 하는가, 국수주의 민족주의 교육이 왜 위험한가에 대한 글을 수도 없이 발표한다. 그건 나중 일이고 우선 그날 음악실에서 쫓겨난 이후 그는 학교에 대한 흥미를 잃어 만년 꼴찌였다.
'파르스터 또 꼴찌했네' 교장선생님이 학기말이 되면 강당에서 늘 이렇게 빈정거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워낙 유명인사이니 화제거리가 될 만도 했다. 그는 학교 공부 대신 정원 오두막에서 책을 읽고 천문대 관측탑에서 별을 본 것이 진정한 공부였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졸업하는 해에 치르는 수능시험에도 천신만고로 합격하는데 그건 이 만년 꼴찌가 쓴 논술에 시험관이 모두 놀라 합격시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합격증을 흔들며 집으로 뛰어 들어와 '드디어 해방이다'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여 진짜 공부를 시작한다... 철학, 경제학, 윤리학, 사회학을 공부하고 칸트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독일에서는 교수가 되려면 박사학위 다음에 하빌리타치온(Habiliration) 이란 교수 자격 취득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던 건 꼴찌를 개의치 않으셨던 훌륭한 부모님과 어릴 적부터 차곡차곡 쌓인 독서의 힘이었다.
황제의 잘못을 반박하는 글을 실어 황제모독죄로 3개월간 형을 살고 어렵사리 교수 자리에 오르지만 반전인사인 그는 격렬한 극우파에게 시달림을 당해 호위를 받으며 강의실로 들어가야 했다. 전쟁 패배후 평화조약 체결에 기여하지만 나치정권과 함께 그의 저서들은 불태워지고 국적이 박탈당한다. 프랑스, 포루투갈 등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그의 나이는 칠순이었다. 그동안 독일에서는 그의 전집이 출간되었고 세 번이나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다.
그는 고국 독일이 아닌 스위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병이 있었음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며 천수를 누린 것은 선천적인 긍정성, 즉 정신적으로 무척 건강하고 사랑이 많은 평화로운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황금빛으로 점철된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첫 기억은 가족과 함께 정원과 자연에서 보냈던 시간들이다...자연 속에 불씨가 들어있어서 기억의 불길을 화려하게 타오르게 하며 그 불길은 우리의 삶 전체를 환히 밝힌다...>
<어머니가 타계하신지 벌써 몇십년이 지났지만 오늘까지도 당시 우리들의 어린이 정원에서 자라던 꽃들과, 산과 바다로 놀러 갔을 때의 기억들, 바이엘 지방의 숲, 북쪽 발트해의 바닷가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면 늘 어머니의 웃음과 사랑이 떠오른다. 사랑과 웃음이야말로 최고의 순간에 늘 함께 하는 친구가 아닐까. 쾌활함은 영혼의 노잣돈이다. 명랑하고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울한 사람보다 천배는 더 부담없이 타인들과 접촉할 수 있다...>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삼천평의 정원이 따린 천문대 대장이셨던 아버지, 사려깊은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각각 다른 작은 정원을 가꾸게 하여 서로 자연을 사랑하며 비교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하였다.
결국 그의 6살부터 싹튼 정원 사랑이 평생을 간 것이다.
<'꽃은 태양과 지구가 나누는 입맞춤이다.' 이 아름다운 표현은 칼 푀르스터의 것이 아니라 인지학을 창설한 루돌프 슈타이너가 1910년 강연 중에 한 말이다. 칼은 아마도 어려서 이미 루돌프 슈타이너의 말처럼 꽃이 지구에만 속한 존재가 아니라 하늘과 땅이 만나서 만들어 낸 '중간존재'라는 걸 인지했던 것 같다...사색적인 형은 철학자가 되었고 어머니의 심미안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칼은 꽃에서 별의 기운을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질투하지 않고 같이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그의 철학이었다.
<천문대에서의 우리의 삶은 또한 아버지의 피아노 소리가 늘 동반했었다. 특히 베토벤을 즐겨 연주했는데 베토벤은 그에게 평화의 사절이었으며 영웅이었다. 베토벤이 한 말 '나는 내 음악이 미래의 인류문화에 정신적 기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작곡했다.'라는 의미를 되새기듯 연주하셨다. 그의 연주는 열정적이었는데 여든 아홉 되시는 해까지 연주 솜씨가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 축제 땐 베토벤 대신 춤곡을 연주해 주시기도 했다...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천문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한편으론 괴테에서 홈볼트로 이어지는 정신세계의 마지막 심장 박동이, 다른 한편으론 천문학적 탐구의 빛나는 별빛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이끌고 비추어 주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아버지의 훌륭한 유전자를 받은 그의 환경이 또한 이러하거늘 어찌 그의 삶이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칼 푀르스터의 글 한 편과 그 글의 대한 부연설명이라고 할 번역노트 한 편이 줄지어 이어지는 형식이다.
그래서 더욱 그의 생활상과 신념, 시대상황 등을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꽃의 아름다움과 인간 영혼의 아름다움이 자연신의 노래를 들으며 함께 성숙해져서 신격으로 승화한다는 칼 푀르스터의 세계관이 이미 이 글 속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있다.> 그의 글 <판과 프시케>를 읽기 전 번역자의 설명이다.
그의 글은 아름다운 서정성과 함께 세밀한 묘사력이 흘러넘친다. 글을 읽으며 아름다운 광경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3월 중순, 모든 것이 연두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는데 눈이 왔다. 눈송이 사이로 종달새의 노래소리가 어느 때보다 귀엽게 들려왔다. 아마도 눈송이가 종달새의 눈을 간질이는 모양이었다. 한여름, 세상은 짙은 녹색인데 하늘이 부풀어 오르며 봄 흉내를 냈다. 양귀비꽃이 가득한 저녁 들판 위로 안개가 자욱하게 퍼지고 있었다. 7월 중순, 파란 하늘을 등지고 해바라기의 황금빛과 마가목의 빨간색이 눈부셨다. 가을과 봄이 여름을 건너 다소 어색하게 서로 악수를 청했다. 9월 말, 달빛이 푸르렀던 그 다음날 차가운 비바람이 불었다. 난로에서 나무가 바지직 타는 소리를 들으며 뿌옇게 김 서린 창밖으로 열매를 가득 달고 있는 사과나무를 내다보았다. 10월이 깊었다. 그런데 다시 여름 협주곡이 성대히 연주되고 있다...> 그는 아름다운 문필가이며 원예가이고 식물학자이자 철학자였다. 무엇보다 인류가 지향해야하는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할 때 그는 이십여년의 끈질긴 노력으로 제비고깔 육종에 첫 성공을 거두었다. 40초반이었던 그는 허리병이 도진데다 귀가 어두워지면서 후방 요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우울한 환자들을 웃기며 그들을 위로하였다. 집에 돌아온 후 미친듯이 글을 써서 <미래의 꽃피는 정원>을 출간한다. 이때 <데미안>을 집필한 헤르만 헤세와 마찬가지로 칼 푀르스터 삼부자는 전쟁을 반대하였고 그 결과는 전쟁에 지친 수많은 장병들과 시민들이 이 책에 열광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고 희망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숙근초와 꽃피는 관목이 가득한 자연스러운 정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기하학적으로 조성된 구시대 정원에서 신세대 정원으로 넘어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꽃병에 대하여>에 나오는 글이다.
<꽃병이 진정한 예술작품이 되려면 꽃의 본질에 새롭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익숙한 꽃을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며 꽃과의 내면적 관계가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꽃병은 꽃 애호가에게 미처 예상하지 못한 정신적 재산이며, 삶의 정서를 키워준다. 꽃병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마력은 어느 순간 어느 특정한 꽃을 꽂았을 때 비로서 감지된다. 내 방엔 옅은 녹색의 고운 유리 화병이 있는데... 다른 어떤 꽃병도 이것만큼 야생국화의 혼을 순수하게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순간의 고귀한 의미'에 대해 말해 주는 것 같다. 우리 내면의 흐트러진 것들을 모아주고, 정화의 불을 지피며, 디오니소스적 자유의 느낌을 속삭여준다. 그리고 꽃의 향기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영웅임을 얘기해 준다... 꽃병과 꽃이 방을 아름답게 하는 것과 아름다운 꽃병이 꽃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같은 이치이다. 지저분하고 누추한 방을 보면 꽃을 꼽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꽃이야말로 주거공간의 아름다움과 신비감을 늘 새롭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름다움은 그저 아름다움이 아니다.그리스어에선 장식이라는 말이 질서라는 뜻을 내포한다. 경여된 아름다움, 아름다움이 결여된 삶의 환경은 곧 물질적 , 사회적, 정신적 무질서를 뜻한다. 미가 결여된 무질서라는 명제를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토지이용 현황이 과연 현명하고 적절하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핵심적인 질문이 숨어있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집안에 화분이나 꽃병 하나 없다면 왠지 삭막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지만 초록잎의 화분이나 몇송이 꽃이 꽃힌 꽃병이 있으면 집안은 금새 환하고 따스한 느낌을 준다. 정원이 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시드는 꽃이 싫다면 화분을 몇 개 적당한 자리에 놓아 물을 주며 돌보아주는 일상은 우리의 마음을 순간 순간 싱그럽게 해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걸쳐 피는 꽃들과 그 꽃들과 함께 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멋지게 묘사했는지 모른다.
일곱계절이라함은 초봄, 봄, 초여름, 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까지 일년내내 꽃이 피는 정원을 말함이다. 즉 '세상이 다 꽃으로 채워지는 그날'과 같은 뜻의 정원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병에 걸리지 않는 제비고깔의 품종 개량을 위해 20년을 연구한 그의 집념에 대하여 그의 딸이 쓴 글이다.
<내 아버지는 왕립 수목원 원장이면서 숙근초 육종가셨다. 아버지는 꽃이 크고 엄청나게 빽빽하게 달린 제비고갈을 선호했다. 그래서 칼 푀르스터가 육종한 자연스러운 품종을 좀 탐탁치 않게 여기셨지만 나는 그와 반대로 처음부터 푀르스터 제비고깔 꽃의 단순한 구조와 선명한 색상에 반했었다... 꽃이 성글게 피어 자연스러우면서도 귀족적인 풍모가 있었고 색상이 환상적이었다. 게다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아름답고 건강한 식물로 온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정원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임을 알고 바로 그 방법을 설명해 주고 있다. >
그의 개인사 생활상도 아름답고 재미있다. 가족뿐만 아니라 지인들과 나누는 그의 사랑은 굳굳하고 자애롭다.
2차 대전 중 나누는 편지와 메모등에서 느낄 수 있다.
<자연은 신의 커다란 방주이다... 겉으로 보이는 경관의 마술같은 모습들 역시 서곡에 불과하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모든 크고 위대한 일들이 거기 연결되어 있어서 언젠간 폭력의 건너편 더 높은 제국에 닿을 것이다. 아직 세상은 가면을 쓴 지옥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언젠가 이 세상에서 지옥을 소멸시킬 것이다. 아름다움은 이 지구라는 별이 성숙한 다음 도달할 장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며 아직 초기 단계의 혼돈에 갇혀있는 우리들에게 미래의 영광스러움을 한 조각 맛보게 해준다.>
<내 자신의 운명과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은 터득했지만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지 말아야 할 굴욕의 장소로 끌려가는 모습은 정말 견딜 수가 없소. 쓰디쓴 감정이 소용돌이치지만 다 잘 될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 하나로 지탱하고 있소. 여기서도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심장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아파와요... 종교라는 것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라면 결국 그 악기는 사람의 육신일 텐데 이떻게 이렇게 불가능한 악기를 가지고 끊임없이 연주하시는지 모르겠소. 살아있는 것들의 살아있음으로부터 그리 멀어져서... 정말 어두운 시간이요.>
그는 자연을 곧 신이라 여겼던 사람인지라 전쟁의 어리석음과 폭력에 대해서 많이 힘들어하며 결국은 조국에 돌아가지 않았다.
전쟁중이었던 시기 1943년 9월 29일 일기에 보면 '아무리 훌륭하게 태어난 사람도 늘 새로운 양식으로 채우지 않으면 퇴보하게 마련이다. 이 새로움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 세상에서 오는 것이다. 거기서 영혼의 양식과 에너지를 취해야 한다.'는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좋은 그림과 책으로 주변을 채우기 권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위안을 받는다.
<자연과 가까이 하는 건 하늘과 가까이 하는 것이다. 영혼이 아닌 것은 영혼을 만들 수 없다고 우리의 영혼이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자연에 대한 기쁨은 결국 자연 속에 초월적이고 모험적인 혼을 끊임없이 느끼는 것이다. 이런 느낌이 내면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음을 안다. 쉬지 않고 자연의 비밀 문을 두드려 우주의 수수께끼에 깊이 접근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 원리인 것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커다란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 자연 속에는 우리 인간과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늘 예감한다... 자연에 대해 우리가 많이 알면 알수록 자연의 비밀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그로 인해 얻어진 혜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자연의 신비는 그 끝이 없음을 알게 된다... 이 거대한 본래의 힘에 대한 경외감이 우리에게 진정한 내면의 힘을 준다... >
<숲속엔 죽은 나무도 필요하다. 그곳이 바로 동물들이 깃드는 생활터전이기 때문이다. 깨끗이 정돈된 숲속엔 새도 날아들지 않는다. 그래서 조용하다. 아름다운 것 하나가 다른 아름다운 것을 끌어 들인다. 늙어가는 생명체 하나는 다른 생명체를 불러들인다. 그렇게 하여 서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이는 동물이나 사람이나 식물에게 모두 해당되는 원칙이다. 이동수단이 발달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 깊은 자연을 찾게 될 것이고 필요로 할 것이다...>
<이 세상을 빛나게 만들어 보겠다는 목적만이 우리를 극복의 길로 인도한다. 세상과 그 의미에 대하여 고민하고 예견하는 것, 즉 인간의 가장 높은 이상이야말로 현실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주어진 사명을 다했을 때 정신적 육체적 으로 가장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삶과 그 너머의 것에 대한 의미를 추구하고 거기서 위로받고 싶어하는 본능이 우리 유전자 안에 새겨있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 속에 잠재해 있는 최고의 상태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전체'가 하나의 호흡인 것이다...>
인간 삶의 진정한 의미를 어디에 두어야하는지 설명한 그의 글이아름답게 마음에 와 닿는다.
<나는 꽃이 걸어가는 길과 인류의 정신세계가 열리는 과정이 같은 맥락에 놓여있음을 느끼고 있어.>라고 말하는 그는 모든 사람들이 정원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들처럼 정신세계가 만개하기를 꿈꾸고 싶천한 사람이었다.
84살이 되어서도 선물을 받고 <선물을 받으면 마음에 불이 지퍼지지. 그리고 그 불꽃이 기억에 영원히 남아...>라고 한 그처럼 나도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을 즐긴다. 과하지 않게 정성을 담은 마음의 선물은 얼마나 흐믓하고 기쁜가.ㅎ
<감사하는 마음은 영혼 중의 영혼이어서 세속을 향한 것이 아니다. 이 감사의 마음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별들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하늘에 대한 고마움은 사람에 대한 고마움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크고 작은 일에 고마워하는가. 작은 선물로 전달된 마음이 우리를 오랫동안 감동시키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고결한 감정, 우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랑과 우정은 언어로 표현되는 행복의 열매이다. 사랑은 침묵하지 않는다. 노년에 들어서도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하고 꽃처럼 피어오르게 하며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 인간은 늘 두 가지를 필요로 한다. 분명함과 비밀스러움.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진리를 터득하게 되면 도덕성이라는 것이 개개인의 삶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최고의 도덕성은 여러 민족과 종족들이 지구상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때 비로소 도달되는 것이다...>
졸속한 내 자신에 대해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혼란한 세계의 지도자들이 이처럼 원대하고 이상적인 가치관을 지닌다면 아마도 세상은 좀 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꽃이나 정원의 사진이 흑백사진인 점이다. 컬러사진으로 제색을 볼 수있었다면 정말 더 아름다웠을 거 같았다. 오래전 사진이라서인지... 그는 1874년태어나 1970년까지 살았다.
현재 칼 푀르스터의 보르님 정원은 정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수많은 상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책 '내 아버지의 정원에서 보낸 일곱계절' (원서 제목은 '내 아버지 칼 푀르스터의 정원')을 더 사보고 싶다.
어릴적 내가 살던 집 마당에 앵두나무, 다알리아, 백일홍, 붓꽃, 채송아, 봉숭아꽃 등이 피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조부님을 모시고 대가족 살림을 하면서도 꽃밭을 가꾸시며 고단한 일상을 위안 받으셨던 것 같다.
지금 나역시 꽃을 좋아하지만 베란다와 거실에 화분을 좀 두었을 뿐이다. 대신 삼성산이라는 커다란 정원을 드나들면서 자연을 만끽한다. 또 오래된 아파트인지라 나무가 많고 봄이면 꽃이 만발하여 내 마음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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