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연출가이며 독문학자인 서항석님의 '진달래꽃나무' 글은 어느 이른 봄날 '관상용으로 꼭 알맞게 생긴 가지새도 좋았거니와, 더구나 봄바람 한 가닥이 살며시 건드리기만 하면 금방에라도 꽃으로 웃어버릴 듯한 귀여운 봉오리까지 맺혀' 있는 진달래꽃나무를 보자 하숙집 내 방 앞 화단에 심으면 좋겠다 생각해 지갑을 꺼내다 말고 언제 이사갈지 모르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그만 두었다. 그런데 마치 뿌리를 내린 듯 몇 해째 그대로 그 하숙집에 눌러살면서 그 꽃나무가 생각나는 이야기이다. 식민지 시절 가난했던 사람들은 꽃나무 한 그루의 호사도 누리기 어려웠나 보다. 남정네들이 술들은 잘 먹으면서...
시인·정치평론가인 김동명님의 '자화상' 글에는 늙음을 한탄하던 중 늙는 일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자문한다. '문학청년도 채 청산하지 못한 채 어느덧 노시인이 된 까닭이라고나 할까... 나는 진정 늙기가 억울하다. 그러나 이렇게 앙탈하는 동안에, 어느새 늙은이가 되어버렸음을 어찌하랴. 아무려나 천도야 어길 도리가 없으니 나도 이제부터는 부질없는 미련을 버리고, 내 연륜의 선물인 고혈압과 신경통을 훈장 삼아 넌지시 차고, 늙음의 대도를 성큼성큼 걸으리라' 말한다.
공평하게 누구나 맞는 노년의 비애와 평안이다. 이왕이면 기꺼이 보듬고 살아있는 날들을 감사하며 기뻐함이 옳다.
또 '파초 해제(芭蕉 解題)'는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시 <파초의 꿈> 이여서 반가웠다.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나도 실은 그 언젠가, 조국을 잃은 사나이. 외롭고 쓸쓸하고, 그리고 더욱 겨울이 슬프기로는 그녀로 더불어 다를 것이 없는 처지겠다. 서로 껴안고 서로의 체온과 외로움을 나눔으로써 계절의 위협을 물리칠 수만 있다면, 또한 얼마나 즐거운 일이랴. 하고 또 이것은 반드시 허망한 욕심일 턱도 없으리라.' 한 여인을 그리워 한 시인이 파초분에 정성을 쏟으며 지은 멋진 시다.
소설가 현진건님의 글 중 '불국사에서' 는 천 여년 넘게 비 바람을 견디며 옛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불국사 예찬과 함께 다보탑과 석가탑을 이야기 한다. '다보탑을 능라와 주옥으로 꾸밀대로 꾸민 성장(盛裝)미인임에 견준다면, 석가탑은 수수하게 차린 담장(淡裝)미인이라 할까? 높이 二七尺, 층은 역시 3층으로 층마다 수려한 돌병풍을 두르고, 병풍 네 귀에 병풍과 한데 얼려 놓은 기둥이 있는데 ... 이 탑은 한 층마다 돌 하나로 되었다고 하니, 그 웅장하고 거창한 규모에 놀랄 만하다.' 이 탑의 별명이 그림자가 없다는 '무영탑'인데 탑에 얽힌 아름답고 슬픈 전설이 신비스럽다. 이어 석굴암에 이르기까지 '천추에 빼어난 걸작', '신품(神品)이란 말은 이런 예술을 두고 이름이리라' 며 경탄해 마지 않았다. 신라 경덕왕 때 이룩한 석굴암의 옛이름은 석불사로 모두 돌을 따내어 건축한 것이다. 작가의 수려한 글을 읽으니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소설가 김동인님의 글 중 '자기가 창작한 세계 · 톨스토이와 도스토에프스키를 비교하여' 라는 글에서는 사람다운 사람의 예술이 생겨나는 요소에 대해서 설명한다. 누구에게나 가득한 에고이즘, 즉 자아주의, 극도의 에고이즘이 변화한 것이 참사랑이며 이 사랑이 예술의 어머니, 또는 태(胎)라고 한다. '자기를 대상으로 한 참사랑이 없으면 자기를 위하여의 자기의 세계인 예술을 창조할 수 없다. 자아주의가 없으면 하느님이 지은 세계에 만족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예술이 생겨날 수 없다.'
그리고 노년의 톨스토이는 건전한 재능과 예술의 분야를 내던지고 자기 재능의 자신감으로 횡포한 설교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숭배자에게만 위대한 인격자라고 칭송을 받았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였다. 반면 도스토에프스키는 숭배자는 없었지만 오는 세기의 문학자로, 선지자(先知者)로 만인의 환영을 받았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창조한 인생을 지배할 줄 몰랐는지, 능력이 없었는지 지배를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거기 지배를 받았으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는 자기가 지은 인생에서 보기 싫은 패배를 당하였다고 한다. 반면 톨스토이는 그가 창조한 인생을 자기 손바닥에 올려놓고 조종하며 가짜든 진짜든 만족하였으니 이것이 예술가적 위대한 가치라고 결론지었다.
나는 도스토에프스키의 작품들이 더 좋다. 그 작가의 치열한 고뇌와 인간적 비장미가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
사학자 손진태님의 글 '토속연구 여행기'는 함평 · 황해 등지의 토속을 조사하며 쓴 글이다.
미개시대의 유풍(遺風)은 그 민족의 정서를 이해함은 물론 사회· 문화인류학적 가치가 크다. 예를 들어 결혼 예물인 금지환(金指環)은 다산(多産)과 축귀(逐鬼)를 위한 호부(護符)에 지나지 않았다. 즉 자식을 많이 낳고 외간남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예전에 단옷날이면 창포를 엽초 엮듯 엮어서 문간에 매단 것은 일년 동안 가내태평과 무병을 위함이었다. 일본에서도 창포탕에 목욕을 한다. 이는 식물숭배가 성행하였던 남부아시아의 인도지나족에서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한다. 한겨울 화전민의 방털집 일화는 재미있다. 함평 양도에는 지나형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 많고 함경도 사람은 체격과 인물이 조선 민족 중 제일 우수하다고 한다. 함경도말이 경상도 말과 비슷한 것도 이러한 인종적 관계가 있는 까닭이며 인종적 관계는 동시에 문화적 관계를 의미한다. 작가의 이북지역을 다니며 쓴 글을 읽다보니 오랜 세월 동안 반으로 갈라진 우리 국토가 통탄을 금할 길 없다.
평론가·언론인 설의식님의 글 중 '헐려 짓는 광화문'은 일본 총독부에서 헐고 다시 짓는 것을 가슴아파하며 쓴 글이다. '다시 짓는 그 사람은 상투 짠 옛날의 그 사람이 아니며, 다시 짓는 그 솜씨는 옛날의 그 솜씨가 아니다. 하물며 伊時·伊人의 감정과 기백과 이상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다시 옮기는 그곳은 북악을 등진 옛날의 그곳이 아니며, 다시 옮기는 그 방향은 경복궁을 정면으로 한 옛날의 그 방향이 아니다... 광화문 지붕에서 뚝딱 하는 마치 소리는 장안을 거치어 북악에 부딪친다. 남산에도 부딪친다 그리고 애달파 하는 백의인의 가슴에도 부딪친다.' 빼앗긴 나라로 겪은 수모와 찬탈을 어찌 다 열거하겠는가!
문필가·종교인 함석헌님의 글 '당당한 출발'에서는 사료(史料)를 '글워리'라 칭한다. 우리 민족이 판국이 바뀔 때마다 전옛것을 싹 없애버리는 버릇이 있다며 사료의 부족함을 한하였다. 예를 들어 경주 태종무열왕비에는 아래 받침돌과 위의 비갓은 있는데 중요한 비몸이 없다. 고려조에 와서 일부러 없애버렸다고 한다. 문화는 나와 다르거나 원수의 것일지라도 보존을 하는데서 발달을 한다는 것이다.
'들사람의 얼'에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훓어내려오며 씨알의 사상을 언급한다. '소위 사실이란 것은 현실을 가지고 말하는 것인데, 현실은 결코 참이 아니다... 씨(種)는 언제나 뵈지 않는 속에 있다. Things are not what they seem! 씨가 피어나온 것이 잎이요 꽃이지만, 잎과 꽃이 그 씨가 품었던 전부는 아니다. 씨가 품은 것은 영원이요 무한이다. 그러므로 열매를 내기 위해서는 꽃마다 잎마다 떨어져야 하고(현실은 없어지고), 그 씨는 또 더 많은 더 새로운 씨를 위해 땅속에 들어가야 한다. 사실이 중요하지만 事實은 史實이 되어야 하고, 死實에 이르러야 한다.' 신화가 이상(理想)임을 주장하며 이 세상은 들사람이 있으므로 되어간다 하였다. 서거정과 김시습의 일화가 재미있다.
'문명은 제 글에 취한 사람이요, 저 만든 기계에 종이 된 죄인이다.'라는 '문명이 병이다'라고 비판하는 말에 공감이 간다.
소설가 심훈님의 글 중 옥중에서 '어머님께' 쓴 편지에는 한 사람의 임종을 지키는 절절한 장면이 나온다. 일제시대 우리 조상들이 겪은 고초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자식에의 사랑으로 존재하는 위대한 단어이다.
'조선의 영웅'에는 농촌소설을 쓴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예술가 무리의 나약함에 비해 단 한 사람의 농촌청년이 더 소중하다 말한다. '시래기죽을 먹고 겨우내 가갸거겨를 가르치는 것을 천직이나 의무로 여기는 순진한 계몽운동자는 조선의 영웅이다. 나는 영웅을 숭배하기는 커녕 그 얼굴에 침을 밷고자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농촌의 소영웅(小英雄)들 앞에서는 머리를 들지 못한다. 그네들을 쳐다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겸손한 말씀이다. 학창시절 <상록수>를 감동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글의 힘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깨우치고 감동과 함께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시인 김동환님의 글 '연시연비(戀是戀非)'에는 연애의 타당성과 좋은 점, 마땅히 해야할 것임을 설명하였다. '즉 첫째로 생명에 혁명의 불길을 주니 할 것이며, 둘째로 마취제가 필요한데 그 임무를 맡아주니 좋은 것이며, 세째로 성의 조화기관이 되니 할일이라 하겠다... 연애의 본질은 태양 같은 것이다. 즉 햇빛 같은 것이다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되는 光과 熱이라고 본다. 그래서 예찬한다... 연애운동이란 것이 있하면 그것은 조선에서 가장 큰 운동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점으로 사회주의 운동이나 제국주의 운동에 못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중요하다. 또 급하다.' 연애할 여유가 없던 당시에 작가는 진정한 연애의 필요함을 피력하였다. 인간으로 태어나 몸과 마음을 다 연소할 만큼의 크나큰 사랑을 해보고 죽는다면 무슨 여한이 남겠는가!
시인·소설가·평론가·철학박사인 박종화님의 글 '사미인(思美人)'에는 송강의 사미인곡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가곡 발표회때 가사와 곡이 아름다웠던 정철 시· 임긍수 작곡의 '사미인곡'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작가는 <여명>이라는 소설에서, 작가 자신이 주인공 초운의 '백겁(百劫)까지 당신을 따르리라'는 사랑을 위해 슬며시 남종삼이 되었노라 고백한다. 상상력으로 작품속에서 연애를 한거다. 나는 학창시절 <금삼의 피>를 비롯한 박종화전집을 밤을 새워가며 빠져들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문장력이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담바귀타령' 글에는 시골에서 흔히 불려지던 흥겹던 이 노래가 이등박문이 총독부 총감으로 부임한 후 흔적도 없이 감추어졌다 한다. 이 노래만 부르면 어느 귀신이 잡아가는 줄도 모르게 잡혀가 갖은 봉변을 당했다. 이유인즉 담배의 유래가 울산과 동래를 통해서 왜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이라, 담배에 비겨서 왜놈이 한국으로 퍼져 들어온 것을 풍자했다고 금지했다는 것이다. 유행하는 노래를 통해서 민족성이 결집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또 바리바리 쌓여 서울로 올라간 '성천초'에 얽힌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소개된다. '대감의 소실이나 기생들은 추야장 긴긴밤과 춘면을 느낄 때 청곱돌·황곱돌 담배 서랍에 섬섬옥수를 집어넣어서 서초 한 자밤을 양철간죽에 담아 백통 재떨이에 얹어놓고 푸른 연기를 뿜어 상사초를 피우는 것이니 단원이나 혜원의 풍속도를 구해서 보면 내 말이 허술이 아님을 알 것이다.' 또 '남북촌·우대·아래대' 글에는 지역에 따라 형성된 이름과 연유, 그 배경을 자세히 알려준다. 요즘처럼 건강을 위해 금연이 성행하면 언젠가는 담배피는 풍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소설가 나도향님의 글 '별호(別號)'에는 친구 월탄(박종화)이 십여 개의 호를 지어 보여준 것 중 하나를 고른 것이라고 한다. 배가 고플 때 우리를 살릴 수 있는 나락의 고마움처럼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은 데서 향내를 맡는다는 의미로 도향(稻香)이라고 하였다. '쓴다는 것이 죄악 같다' 글에는 바쁜 일상생활에서 틈을 내 청탁받은 원고를 간신히 써 내놓고 그 부끄러움을 호소하였다. '내가 믿는 文句 몇 개' 글에는 연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연애는 반드시 도덕적 토대가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나는 단언하고 싶다. 자기를 희생하는데 영원한 승리가 돌아올 것이다.' 라고. 희생 없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은 행하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희생이며 승리라고 생각한다.
소설가·극작가 채만식님의 글 '벽도화에 어린 옛 기억'은 열 세 네 살때 있었던 아련한 꿈 같은 시간을 더듬는다.
벽도화(碧桃花)가 피는 시기, 우물앞에서 수줍은 열 여섯 살쯤 된 소녀에게 물을 얻어먹으며 있었던 일이다. '봄도 다 늙고 꽃이 진 자리에 연한 떡잎들이 우줄거리며 새생명을 춤추던 때다... 그저 그 처녀가 고개를 숙이고 나를 보지 않은 것만 다행으로, 그의 소곳한 머리- 동백기름을 발라 한가운데로 가리마를 곱게 갈라 빗은 머리와 빠알개진 두 귀를 치어다만 보았다... 그것이 어떻게도 무렴(無廉)하든지- 내가 허둥대는 것을 보고 처녀는 해쭉이 웃었다. 그때도 그 웃음이 아름다왔거니와 지금 생각에는 그만큼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는 다시 없을 줄 나는 믿는다... 한참 뛰어오다가 무엇인지 잃어버리고 온 것같이 섭섭한 생각에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돌아보니까 두레박을 손에 든 그 처녀가 까웃이 冬靑나무 울 밖으로 나를 내어다보고 있었다... 그때에 문득 보니까 그 우물을 둘러싼 동청나무 울에 한포기 우뚝 솟은 벽도가 있고 때 한참 연푸른 꽃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그리고 더욱 기특한 것은 그 처녀의 입고 있는 치맛빛이 꽃빛과 꼭 같았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신통스러운 부합에 돌아설 줄을 모르고 그 처녀와 벽도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한 장면으로 또렷하게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
'인간의 본능인 물질의 안정과 정의 위무(慰憮)에서 버림을 받은... 앞으로 남은 반생이 역시 사람다운 생활의 권외에서 방황할... 나에게는 이 기억만이 한 기쁨이 된다.' 작가의 순수하고 애틋했던 기억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벽도화를 찾아보니 옛날 궁중에서 왕의 정면에 좌우 한쌍으로 홍도화, 벽도화를 비단으로 만들어 장식하였다고 한다. 꽃은 순백이고 푸른 잎이 무성하다. 복숭아처럼 열매를 맺는데 복숭아와 사과맛이 난다고 한다.
'밤손님' 글은 지방에다 빚까지 지며 간신히 마련한 집에, 둘째 仲兄은 재수가 좋다는 길일(吉日)과 사립문의 방향까지 잡아주었지만 일착으로 도둑이 드는 바람에 집에 대한 애착과 흥이 절반이나 달아났다는 이야기이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예전에는 좀도둑이 많았다.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각 각 다른 집에서 세 번이나 겪으며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시인 김상용님의 글 '詩'에는 시 같은 작가의 감상이 실려있다.
'「詩」는 작렬이다. 「저」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 해서 罪는 안 된다. 돌이 갈려 옥이 될 수 없다. 예서 더 진부한 상식이 있겠는가. 능금꽃은 능금나무 가지에 피고...'
'「詩의 生成」은 아메바적 분열작용에서만 유래한다. 「詩」와 「詩人」은 같은 조각이다. 파란 시의, 시인의 얼굴빛의, 분홍색의 허위성의 진정을 알아야 한다. 「시는 나다」 할 수 있는 시인이 「피로 썼다」 할 수도 있다.'
'「달이 청첩을 보냈다.」 이 우자를 몽유병자라 진단한 명의의 과학에 오류가 없다. 그러나 이때 「시」의 산욕은 어수선하였다. 진리는 달이라 하나, 시는 허무의 아들로 자처한다. 시에서 모순을 발견치 못하는 건 백치다. 그러나 시의 모순을 사랑하지 못하는 건 백치를 부러워해야 할 속한(俗漢)이다...'
'진흙에서 연꽃이 핀다. 이 점에서 자연은 시인이다. 시를 직업으로는 못한다. 정절을 직업으로 할 수 있을까.
시가 거울일 때, 그는 고독의 단 젖을 빤다.' 오늘날 우리들이 읽고 쓰는 감상적인 시들을 보면 시인은 무어라 할까?
'유덕(遺德)' 글에는 식목절 산기슭에서 노쇠해진 노인이 힘들게 일년생의 어린 밤나무를 심으므로 언제 뉘를 보겠느냐 하자 백년도 넘었을 고목을 가르키며 '저 나무는 내 조부께서 심으신 것이요. 그 어른은 돌아가신지 六,七0 년이 됐지만 그 어른 심으신 나무는 저렇게 남아 있어 해마다 몇 말씩의 밤이 열리오' '조상이 심은 나무에서 우리가 「열음」을 따고 자손의 앞날을 위하여 우리가 어린 싹을 심는다. 어찌 나무뿐이랴. 덕(德)을, 문화를, 이러해 인류의 번영은 유구하다 하노라.' 교육자나 정치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꼭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고고(孤高)한 학자를 방문했던 일을 쓴 짧은 글 '청빈' 은 가난을 여여하게 여기며 대처하는 선생이 가슴을 짠하게 한다.
시인 유엽님의 글 '죽음과 미의 창조' 에서 '멋'이란 말에 대한 다각적 검토와 함께 멋진 생활은 '미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며 예술에 대한 순례이며 창조적 생활이며 허식된 규범에 대한 인성적 자유에 대한 반항이며 침체해 가는 전통에 대한 이단이다. 멋대로 살다가, 멋있게 살다가, 멋지게 살다가 골고다 산상에서 최후를 맞는 예수의 임종과... 拘尸那迦羅國 沙羅林(구시나가라국 사라림) 에서 涅槃相(열반상)을 나타낸 서가모니의 입멸은 숭고한 美 그대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하여 깊은 감회를 토로하며 '내 어머니께서는 죽음으로써 미를 창조하신 위대하신 성모이심에 틀림없으나 성자 없는 성모의 쓸쓸하신 최후가 한결 섧다.' 자책하였다. 애석하게도 부모는 자식이 철들어 효도할 때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신다.
'천재는 대립된 모순을 조화시킬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가장 높은 정신의 힘이다. 능재(能才)는 숙련에 의하여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의 힘이다. 生의 환희에 대립되는 死의 비애, 이것이 인생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대립이며 가장 근본적인 모순일 것이다. 예수는 영생의 도를 우리에게 보여준 천재를 가진 성자다. 석가는 불생불멸의 「멋」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천재적 선각자이다. 이들 천재자들은 충분히 생과 사의 대립을 조화시켜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서 멋대로 놀다 갔다. 뭇 능재들은 갖은 기술로 이것을 설명하려고, 해설하려고 또는 표현하려고 무한히 애를 써 왔다. 그것이 혹은 철학도 되며 종교도 되며 예술도 되어 나왔다... 주지주의적 능재에 몰두한 세태는 「멋」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大死 이후에 必有大生이란 말이나, 거듭나라는 말은 곧 멋을 알라는 말에 불과하다... 聖 · 凡이 一如하고 貴 · 賤이 無別하고, 貧 · 富가 동등한 이 죽음! 이것이야말로 言思를 초월한 無二의 설법이며 모든 갈등을 절단한 최상의 멋이다... 죽음은 설멋진 세계에서 「멋」의 세계로 귀합하는 최종의 관문이다.' 죽음이 미의 창조라고 한다면 두려움 없이 맞아야 당연하며, 죽음의 시기 또한 충동적이지 않은, 내 멋대로 정할 수도 있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생의 노년에 이르러 죽음에 임하는 시간을 구차하지 않게 맞을 존엄함이 필요하다.
'산은 흐르고 물은 서 있다' 글에는 '유전하는 時나 영구불변하는 空은 一心上에서 환화된 범주로서, 이것을 완전히 해탈해야만 귀신을 항복받고 누리를 창조할 수 있다... 우리 인류의 본성은 神을 창조도 하거니와 鬼도 창조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바로 모든 것을 창조하는 창조주의 假名이다. 그리고 생각은 나「主」 · 남「客」 · 곳「空」 · 때「時」의 네 기둥으로 이루어진 말「言」과 뜻「志」의 그릇이다. 산이 흐른다는 말은 시간성에서 볼 때요, 물이 서 있다는 말은 공간성에서 볼 때다. 모든 기둥과 범주를 벗어난 자리에서 다시 산도 없고 물도 없는 참꼴을 보려면 허공의 뼈를 부수어버려야 할 것이다.' 라고 한다.
'멋으로 가는 길의 머리말' 글에서는 '힘이 가장 잘 어울려서 멋지게 움직이는 모습이 산 무리의 꼴들이며 그것을 서로 씽기고 어울림이 없이 그대로 식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죽음이라는 사람의 생각이다. 이 모든 것들의 씽김과 어울림이 한데 뭉쳐서 안팎도 없고 그지도 없는 것이 바로 누리며, 이 누리야말로 누리라는 말까지도 있을 수 없고 붙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이다. 힘은 그지없이 길고 죽음은 꿈같은 생각이다... 이것을 가장 멋지게 다투시고 또 보이신 어른이 부처님이시며 이 어른이 가르치신 말씀이 으뜸가는 줄 「法」이 되어 있다.'고 했다. 문장마다 정신적 각성을 추구하는 의지가 드러난다.
영문학자 박술음님의 글 '인생의 해질 무렵' 글에서 셰익스피어의 37편 작품 중 마지막 것인, 임종의 노래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 「폭풍우」인데, 다른 작품들이 '인생은 이러한 것'임을 그렸던 것과는 다르게 '인생은 이래야지' 하는, 파란곡절 후 남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조화로운 인간의 사랑이 얽혀있는 보람찬 세계를 보여준다고 한다.
'산 속의 왕국 네팔' 글에는 145세로 사망한 자연인 노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이나라는 물질적으로 가난하여 다른 나라의 원조를 많이 받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순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청정자연이라 일컫는 네팔의 산야를 보고 온 경험이 생각난다. 힘들었지만 경이로웠던 풍광이 잊혀지지 않는다.
소설가 주요섭님의 글 '미운 간호부'에서는 밤낮 사흘을 지키다가 잠깐 집에 간 사이 어린 딸이 죽어 시체실로 달려간 어머니에게 문이 잠겼으니 가볼 필요 없다며 '죽은 애 혼자 두문 어때요?' 애멸차게 내밷는 간호사의 냉정함을 작가는 미웁다 했다. 애끓는 어머니의 심정을 조금도 동정할 줄 모르는 간호사를 보면서 '나는 문명한 기계보다도 야만인 인생을 더 사랑한다... 과학문명이 더욱 발달되어 인류 전체가 모두 다 냉정한 과학자가 되어버리는 날이 이른다면... 나는 그것을 상상만 하기에도 소름이 끼친다. 情! 그것은 인류 최고과학을 초월하는 생의 향기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 정 때문에 위로 받고 힘을 내고, 또 정 때문에 상심하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우리가 가족을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영화인 나운규님의 글 '劇 · 映畫街 산책'에서 「개화당아문(開化黨異聞)」영화를 만들었을 때, 김옥균 등이 정부를 전복하려고 한 음모는 좋으나 성공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검열당국에서 죽이게 하였다고 한다. 역사상에 있는 사적의 각본도 모두 이러해서 현대의 사회사상에서 재료를 취하여 영화를 만들어보자니까 연애타령 밖에 할 수가 없었다며 '어쨌든 금후 조선의 작품은 혼이 있고 정신이 있고 피와 살이 있는 것이 아니면 안되겠다.' 하며 天品 있는 극작가의 출연을 간절히 바랬다.
이제 내 나라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려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나 드라마 등에서 여전히 연애와 폭력이 주를 이룬다. 다행히 빈부격차 등을 다룬 영화 '기생충'(봉준호 감독) 등이 세계시장에 나가 최고상을 받으며 한류 문화시장을 넓혀가고 있어 다행이다. '오징어게임'보다는 품격있는 영화로 좀 더 우리다움을 드러내는 영화 '자산어보'(이준익 감독)를 내놓고 싶다.
중국문학자 정래동님의 글 '난초의 高古性'에는 식물을 인격화한 梅 · 蘭 · 菊 · 竹 중 유독 난초를 귀하게 여기며 그 특성과 종류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였다. 또 추사는 난초 그림의 一分을 인품이라 말하였으니 이는 향기와 통할 수 있으며 '난초는 고상한 인품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난초의 절개를 배우며' 글에서는 난초의 꽃을 보기 위해 기다려야하는 인내와 그 관리의 세심함을 표현하였다. 나도 예전에 남편이 사오거나 선물 받은 난초 몇 화분을 돌보았었다. 꽃의 향기를 맡으며 정성을 들이기도 하였지만 이사하는 과정에서 두 개의 고급스러운 화분은 분실하고, 별반 잘 키우지도 못하여 지금은 한 개의 화분이 남아있어 가끔은 그를 생각나게 한다.
신부 윤형중님의 글 '6·25 동란의 회고' 는 1950년 6월 25일 주일부터 10월 9일까지 쓴 일기글이다. 신부의 처지로 피난을 다니면서 겪은 일 중 평택을 향해 가다가 묵은 신도의 집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그를 노인이라며 상좌에 모시고 특별대우를 하였다. 그의 나이 48세인데,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듣게 될 「노인」이란 말을 처음 들었는데, 그런 말을 듣기가 싫지는 않다. 일생의 절반 이상을 훨씬 넘어서 있지 않느냐.' 하였다.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다른 인식이 아닐 수 없다. 60세가 넘어도 노인이란 말을 듣기 싫어하고, 동안(童顔)열풍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성형외과를 찾아가는 풍조이다. 이것은 수명이 늘어난 이유도 있을 것이며 경제적으로 부유해져 예전과는 달리 건강해진 육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고생을 많이 했던 조상들에 비해 턱없이 철없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 예로 결혼이 늦어지고 자식을 낫지 않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확고한 가치관에 의해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는 있는 일이지만 그저 세태에 휩쓸려 살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인·국문학자·영문학자 양주동님의 글 중 '상투설'에서 한 노인이 몰래 잘린 상투를 부여잡고 몇날 며칠 통곡하는 이야기를 기억하며 우리 마음에 또 다른 형태의 「상투」를 부여잡고 사는 것은 아닐까 반문한다. 즉 제각각 모두 자신의 시대의 「상투」를 가지고, 먼저 자각하는 자가 천재요, 선구자요, 위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그만큼 진지하게 파지(把持)하는가? 낡은 전통이 무너진 대신 새 시대의 윤리와 정신적 「등뼈」는 아직 구성되지 않았다. 바람 부는대로, 유행에 따라서, 신념과 주체성이 없이, 오늘은 이리로, 내일은 저리로, 동분서주 · 광가난무하는 현하 우리들의 생활과 사고.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차라리 우리 선인들의, 「상투」를 붙들고 통곡하던 그 「완미(頑迷)」하나 「진지(眞摯)」했던 태도에 일종의 경의조차 표하고 싶은 심정이라 할까.' 우려하였다. 요즈음은 무엇보다 인기몰이의 정치상황이 가장 염려스럽다.
'한자문제(漢字問題)' 글에서는 몇 가지의 실례를 들어 한문전용을 했을 때, 한글전용만 했을 때 일어나는 문제들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한자제한」쯤의 어정쩡한 중도에 머물러 있음을 딱하다 하였다. 한글만으로 그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거나 잘못 알려질 수 있는 경우 한자를 혼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한문공부가 어려워 점점 사라져 가지만 때론 꼭 필요한 경우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기억술'에서는 이은상님과 동경에서 유학하던 때 기억술에 관한 내기를 했던 이야기가 재미있다. 여러 개의 단어를 연상법을 이용해 문장으로 암기를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 또한 두 분 처럼 두뇌가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평론가·소설가·시인 김팔봉님의 글 '선거유감'에는 뒤지는 후보가 인기가 더 많은 상대당 후보의 표를 깍아내리기 위해서 일부러 청중을 모아놓고 후보는 나오지 않는 작당을 하는 등 인심을 돌아서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선거철만 되는 쏟아지는 흑색선전에 국민은 어리둥절한다. 문제는 서로 비방하는 그 내용이 거의 사실로 들어나는 어이없는 사태이다. 인식 수준이 낮은 국민은 수준이 낮은 대통령을 뽑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당하고도 또 반복되는 역사의 되풀이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별을 그리던 시절' 글에는 15,16세 때 동물표본 만들면서 친구의 도움을 받아 산 고양이의 목을 졸라서 표본을 만들었던 일도 나와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동경으로 가 공부하던 중 뒤이어 온 형님과 사이좋게 전공을 타협하여 문학을 택하였다. 형님이 하려던 문학을 필자가 하고 그림을 잘 그리던 형님에게는 조각을 권하여 선선히 양보한 형님은 졸업도 하기 전에 동경원전에 입선하여 한국에 돌아와서는 조각계의 개척자 역할을 하였으나 40세에 요절하였다 한다. 작가는 동경이 싫어져 한국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다행히도 일본 동경에서 일어난 지진을 면하였다고 한다. 사람 명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시인·아동문학가·심리학자 김태오님의 글 '대학교육의 사명'에서 교수와 학생은 진리를 탐구하는 동지로서 서로 신의가 있어야 공동체적 교육도장일 수 있으며 면목이 서는 일이다 하였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는 식견 · 신념 · 기백이 투철하고 확고부동한 주체적 · 적극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마음의 소지자다. 입체적으로 학문한다는 것은 인격통일의 노력을 의미한다. 그것은 마침내 생활의 구체성에 입각한 전인격의 확립의 노력이다. 즉 자기 본연과 소박한 내심에 입각한 것이면서 객관성에의 지향이다. 그리하여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와중(渦中)에서 그 가야할 구체적 목표를 정하게 된다. 자기를 길러온 전통과 풍토에 의한 시대성 · 역사적 현실은 여기에 능동적 실천성과 종합한 새로운 학문의 지반을 닦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들이 받고 있는 대학교육의 현실을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근대 지성인의 생태' 글에서는 토인비의 예언처럼 가장 중대한 문제로 종교적 제문제를 들었다. 또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며 19세기 후반 나타난 니힐리즘에 대해 말한다. 니힐리즘은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에서 처음 쓰였는데 주인공을 통해 니힐리즘에 부정의 정신, 반역의 정신을 밝힌 것이라고 한다. 니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초인사상과 영원회귀사상을 역설하였다. 지성인은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판단으로 전쟁을 멈추고 인류 평화와 행복을 전제로 정신적 혁명을 해야한다 하였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종교 갈등은 멈추지 않는다. 오갈 데 없는 난민들이 쏟아지고 성장과 번영이 소용없는 세상 같아 안타깝다.
'학자라고 하는 직업'에서 학자는 명예스럽기는 하나 가장 고역을 담당한 업무이다. 학자의 사명으로 볼 때 전공하는 학문에 있어 신경지를 개척하는 독창적 사상과 신발명의 업무를 최고도로 발휘시키는 것이 학자의 의무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또 '학자는 사회를 위하여 공동능적(共同能的) 사명과 공동체적 운명을 가진 천직이다. 인간으로서 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을 하는 것과 같이, 인류를 위하여 학문하는 마음, 과학하는 마음의 특별한 천직으로 정해지는 행복한 운명을 개척하며 진리탐구에 진심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자는 성직자이다. 학자의 직분은 현대 및 다음 세대의 문화창조를 위하여 진심갈력(盡心竭力)한다. 학자는 진리에 대한 열렬한 감정과 학문의 의욕이 충만하며,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라야 하며, 분석과 종합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비판력과 창조력이 뛰어나야만 그 자질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학자라고 하는 직업은, 가장 괴로운 직업이면서 숭고한 직분을 담당한 진리의 수호자이며, 인류의 교육자이다. ' 참으로 귀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훌륭한 학자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절로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인류 최고의 학자들 중 무엇보다 정신세계의 깨달음을 설법한 부처님이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수필가·독문학자 김진섭님의 글 '생활의 향락' 에 '사람이 타고난 활력을 위축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세상의 풍파에 마찰을 당해야 됨은 물론이요, 또 우리는 생활의 목적이 생활하는 것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운동하고 성장하고 전투하는 것이 곧 생활의 목적이 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우리가 가진 정력의 신선한 갱생을 꾀할 수 있을 때 그곳에야말로 지장없는 생활향락은 추구되는 것이지 안이(安易)와 일락(逸樂) 속에 생활향락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생활의 향락은 현실생활의 쾌활한 조종과 정신력과 육체력의 조화 있는 균형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생활술(生活術)이란...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한 모든 체험 속에서 우리가 한 개의 심각한 지혜를 도출하는 동시에 그 오묘한 감즙(甘汁)을 섭취할 줄 아는 독특한 기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 또한 자연과의 접촉을 들었다. 보통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나이가 들면서 좀 더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수필의 문학적 영역' 글에서는 파브르의 <곤충의 생활>, 토마스 브라운의 <의가(醫家)의 종교>, 소로우의 <삼림(森林)생활>, 러스킨의 <진애(塵埃)의 윤리>, 메테를링크의 <꿀벌의 생활>, 루소의 <참회록>등은 문학 작품은 아니지만 정통적 수필의 명감(名鑑)으로서 천고에 빛나는 문학적 생명을 가지고 있다 하였다. 예를 들어 과학자 파브르가 곤충의 생활상을 연구적으로만 관찰한 결과를 기록함에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시인으로 관찰하여 시화(詩化)하고 인간화하는데 성공하였다고 말한다. 또 '수필을 쓰는 사람에게 최대한으로 해박한 지식을 요구하는 것만은 사실이나, 모든 종류의 전문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그 지식을 토대로 삼고 흉금을 열어 감춤이 없이 자기의 심경을 하소연하고 총망(悤忙)한 주위의 생활동태를 고요히 방관한 결과를 말할 때 그곳에 좋은 수필은 탄생하고야 만다' 고 하였다. 예전에 아들에게 사준 <파브르 곤충기> 전집을 내가 흥미롭게 읽고 쇠똥구리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동했었다. 소로우의 삼림생활은 <월든>, <리버>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 책들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지인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수필의 매력은 자기를 말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수필은 소설과는 달라서 그 속에 필자의 심경이 약여(躍如)히 나타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그래서 그 필자의 심경이 독자에게 인간적 친화를 전달하는 부드러운 세력은 무시하기 어려울이만큼 강인한 것이 있으니... 작가 자신도 허구와 가작의 세계에서 뇌장(腦漿)을 짜는 거짓된 슬픔보다는 자기 신변과 심경을 아울러 고백하는 참된 기쁨에 취하고 싶은 경향이 농후해진 것은 아닐까.' 수필에는 일정한 형식이나 재료가 딱히 없으므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좋은 수필을 쓰기는 쉬운 일이 아닌 게 쓴 사람의 진정한 마음이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 흔함으로 문학의 권위를 저속하게도 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부족한 능력임에도 제 마음을 담아 수필을 쓸 수 있음은 문학의 대중화에 좋은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인 우승규님의 글 '그리운 현모양처상'에는 예전에 식모라고 불리던 이들을 두고 살던 때의 말썽이 된 이야기가 나온다. 가족이 여럿인 경우, 이간질을 해 불화를 일으킨다거나 손버릇이 안 좋아 손해를 입히는 일, 미모인 경우 주인장이나 아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일, 안주인의 부덕함으로 인한 학대까지 많은 불상사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시골의 가난한 가정에서는 입을 덜기 위해 서울로 자녀를 보내어 썩 잘 살지 않아도 식모를 두는 일이 있었다. 식구가 많았던 우리집도 몇 번 그녀들을 둔 적이 있었다. 내 어머니께서는 야간 학교를 보내기도 하고, 시집밑천을 저축해주었다가 시집을 보낸 적도 있지만 불미스러운 일도 두어 번 겪은 일이 있었다.
또한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좋은 학교에 넣어 공부를 잘 시킨다 해도 어머니 된 이가 자녀들에게 본뜰만한 언어와 행동이 없다면 학교교육은 건전치 못한 가정교육으로 인해 빛을 잃게 된다 하였다. 요즈음 문제 청소년이 많은 이유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점이 유아기를 어머니가 돌보지 못하는 데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어머니로서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 물론 남의 돌봄을 받고도 반듯하게 잘 성장하는 청소년이 많지만 모두 그렇게 우수한 자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회활동으로 경제에 도움은 되지만 중요한 시기 자녀성장에 결손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시조시인·사학가·문학박사인 이은상님의 글 중 '三願'에는 '원(願)이란 범어로 「프라니다아나(Pranidhana)」라 하고, 그것을 음역하여 尼底(이저)라고 쓴다. 이 말의 진정한 뜻은 마음 속에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해보려고 서약을 짓는다는 뜻과 또 그대로 정진해 간다는 뜻을 가졌기 때문에, 「원」이라는 문자 속에는 誓(서)와 行(행)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誓로써 작심하고 출발하고 行으로써 동작하고 힘써 닦는 것이다... 내가 여기 소원하는 것은... 국토산수를 두루 밟아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해 보고 싶은 것이 첫째 원이요, 거기에 실려있는 우리 민족의 오랜 문화를 두루 뒤져 역사와 전통을 發揚(발양)해 보고 싶은 것이 둘째 원이요, 또다시 이 민족과 이 문화를 이끌어 나간 모든 어진 이들을 숭모함과 아울러 오늘 이 현실에 있어서도 고상한 지조를 지켜 救國行(구국행)을 짓고 있는 모든 동지들 앞에 경례해보고 싶은 것이 세째원이다... 내가 나고 자라고 뼈가 굵어진 내 은혜의 국토는 진실로 願土(원토)다. 願域(원역)이다... 아름다우면 아름답기 때문에 찬미해야겠고 깨어졌으면 깨어졌기 때문에 어루만지며 도로 세워야겠다. 내가 알아야 하고 지켜야 하고 자랑해야할 내 민족의 문화는 진실로 願學(원학)이다. 願問(원문)이다... 제 문화와 등질 수 없는 줄을 알아야 한다. 또렷하면 또렷하기 때문에 수호해야겠고, 희미하면 희미하기 때문에 다듬어 바로 잡아야겠다...' 고 말한대로 평생을 원을 세워 실천하다 가신 학자의 귀한 가르침이다. 지식인들과 언론, 정치인이 앞장 서서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가야 하건만, 사리사욕에 치우쳐 본분을 잊고 사는 오늘의 사회현실이다.
'賞菊三到(상국삼도)' 글에는 백국화 한 분을 사가지고 와 그 꽃의 여러 명칭, 유래,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菊」의 古字는 본시 草頭 아래 鞠(국)자를 썼으니, 鞠은 곧 다하여 없어진다는 뜻이라, 이꽃이 피고 나면 다시 더 필 꽃이 없다는 최후의 꽃임을 표시하였던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주의가 이 꽃에 더욱 집중될 수 밖에 없었고, 더우기 온갖 화초가 봄철에 다 피고 서리 찬 落木寒天(낙목한천)에는 오직 이 꽃만이 따로 피므로 和霜獨立(화상독립)이니 傲霜孤節(오상고절)이니 하면서 연명의 문화생 노릇을 톡톡히 해온 것이니, 중국의 한시는 그만두고 우리 옛시조만 가지고도 이를 증거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국화를 장수의 약재처럼 알아 더욱 그것을 사랑했지만은 나는 이제 이 백국화 한 분을 앞에 놓고 은일과 절조를 예찬하는 동양문화의 전통을 도습하려는 것도 아니요, 延年長壽(연년장수)의 신선가설에 혹취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시대 이 민족의 겹겹이 싸인 고민을 풀기 위하여 그 차가운 향기를 폐부 속까지 기껏 들이마시고 그 맑은 빛깔을 눈이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 속에 亭亭落落(정정락락)한 芳心(방심)을 터지라고 부등켜안은 채 묵상과 서원 속에 잠기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비로소 「賞菊三到」라 하는 것이니 鼻到(비도) · 眼到(안도) · 心到(심도)를 뜻함이다. 코로써 그 냉향을 맡고, 눈으로 그 형상을 바라보고, 마음으로 그 방심을 사랑하는 것이다. 「到」라는 것은 곧 임한다는 뜻이다... 주자의 <訓學齊規>에 글을 읽을 때 입으로 읽고,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으라 하여 독서삼도라는 말을 쓴 바로 그 三到다. 沖澹(충담) · 淸遠(청원) · 貞高(정고)의 세 가지 요소가 국화의 생명인 것이다. 충담은 곧 그 냉향을 말함이요, 청원은 그 형정한 빛깔을 말함이다... 정고는 곧 그 방심을 말하는 것이다. 거리마다 저속한 악취에 휩싸인 우리 사회에 하맑은 국화 향기를 뿌리고 싶다. 얼굴마다에 살기를 띠어 평화를 잃어버린 이 민족 앞에 흰국화, 깨끗한 빛깔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서푼어치 權慾(권욕)과 利慾(이욕)천금의 양심을 팔아버리는 이 시대를 위하여 국화의 높은 기백을 전하고 싶다.'
예전에는 늦가을 곳곳에서 국화전시를 많이 하였던 것이 생각난다. 수북이 꽃을 피웠던 흰 국화가 줄지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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