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을 통해 본 임동창님의 104대 피아노, 1004섬을 노래하는 음악축제를 보고 싶어서 처음 들어 본 전남 신안군 자은면의 '자은도' 여행에 나섰다. (사실은 1,025개의 섬 중 유인도가 72개, 나머지는 무인도라고...) 캐나다에서 본 '천섬'이 생각났다.
한 달 전쯤 팬션을 예약하고 일주일 전에 목포행 KTX 고속열차표를 예매했는데, 가을철이라 관광객이 많은지 음악축제 때문인지 나란히 두 좌석이 없어 친구와 따로 앉아야 했다. 친구가 사정이 있어서 오전에 가지 못하고 용산역에서 2023. 10.20.(금) 1:29 열차를 타고 가느라 좋은 공연을 놓쳐서 아쉬웠다.
10.11. 방송된 TV프로 '벌거벗은 한국사'에서 '홍어장수 문순득'의 파란만장 3년 2개월에 걸친 동남아여행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았는데, 마침 그 내용을 연극으로 했기 때문이다.
내용인즉 홍어 특산지 소흑산도(현 우이도)에서 태어난 문순득이 1801년 12월 겨울, 24살 나이로 숙부와 선원 4명과 함께 홍어를 팔려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류큐 왕국(현 일본 오키나와)에 닿았다. 재능있고 총명했던(이강회 作 운곡선설) 그는 그곳에 적응하면서 언어를 익히고 친화력을 발휘하여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애쓰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더 먼 나라 필리핀 루손 섬에 도착하게 된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그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문물을 접하게 된다. 일인과 청인들에게 속아 버려진 그는 고국에 돌아가기 위해서 연줄, 목재 등 장사꾼의 재능을 발휘하여 돈을 벌어 1년여 만에 청나라 가는 배를 타고 오문(현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수도 베이징에 도착하여 무사히 조선 사신단을 따라 귀국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기록한 이가 유배생활하던 정약전이었다.(영화 '자산어보' 참고) 그는 조선에 없는 새로운 세상을 둘러보고 온 최초의 사람이라는 의미로 그를 '天初'라 부르고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자세히 글로 남겼다. (동생 정약용 作 경세유표) 훗날 필리핀사람들이 우리나라 섬에 표류해 왔을 때는 통역을 하여 '조선 최초의 필립핀어 통역관'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참으로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내용이 재미있었을 연극이었다.
목표에 도착하여 음악축제가 열리는 뮤지엄 파크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데, 안내판에 명시된 시간이 지나도록 차가 오지 않았다. 관광안내소에 문의하니 모르겠다면서 버스 타는 곳을 알려준다.
버스 기사님 왈 "바람이 너무 심해서 오늘 행사가 중단되었다고 방금 연락을 받았어요."
헐! 이 무슨 낭패람! 이런 경우를 대비한 대책도 없이 행사를 진행하나?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버스를 탔으니 자은도 숙소까지 가야했다. 중간에 내려서 자은도 버스를 갈아타야 한단다. 이 버스는 자은도까지 가는 게 아니었다. 해가 떨어져 날이 어두워지는데 지체할 시간이 없어 기사가 알려준대로 버스를 갈아타고 한참을 가서 뮤지엄 파크 앞에 내렸다. 이미 캄캄해진데다 주위에 식당도 없었다. 만약을 몰라 버스 갈아탈 때 라면을 한 묶음(5개) 샀는데, (낱개로는 팔지도 않았다) 오늘 저녁식사는 이걸로 때워야 할 판이었다.
귀찮아서 자세히 찾아보지 않고 처음 본 블러그에 좋게 쓰였기에 예약했던 팬션은 픽업도 해주지 않고 택시를 불러 타고 오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한 마디로 불친절하다. 자기들도 음악축제에 가야해서란다. 취소되었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택시비 만원 내고 도착하여 이층 산토리니 객실에 들어가니 엄청 깨끗하고 안락했다. (1박에 12만원)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텐을 걷으니 바다가 쫙 펼쳐져 전망이 좋고 바로 백사장으로 나갈 수 있어 좋았다. 날씨가 괜찮아 오늘은 음악회를 할 것 같았다. 백사장을 삥 둘러 나무로 만든 산책길을 걸으며 심호흡을 하였다. 그네가 있어 굴러보았다. 어릴 때 이후 첨이라 긴장해서 그네줄을 꽉 잡아 손바닥이 좀 아팠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목포에 사는 지인을 초대하여 그의 차를 타고 뮤지엄 파크 주위를 두루 구경하였다. 그는 중남미, 아프리카 여행을 함께 한 영어선생님이었다. 작년에 정년퇴직하고 대안학교에서 진로상담교사를 한다고 했다. 많이 반가웠다.
* '파인 크라우드'. 일명 정원 까페에서 커피 등 차를 마시면 입장이 되는 곳이었다. 개인이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가꾼 정원이라는데 그 규모가 크고 구경할 만했다. 정원에서 일하시는 사장님 인상이 선하였다. 온실도 있어 겨울에도 손님이 오신단다. 엄청 부지런히 가꾸신 흔적이 역력했다. 가족인지 커피를 내려주는 청년이 친절하고 커피맛도 좋았다.
* 함께 간 친구 '바람'은 자기 사진 찍는 것을 마다하고, 자신의 핸드폰으로만 몇 장 찍고 나처럼 풍경을 즐겨 담았다. 근데 어느새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오늘도 또 못하는 게 아닌가 심란했다.
* 자은도 해사랑길과 오래된 고목 '여인송'이 있는 곳을 돌아 보았다. 풍광이 아주 좋은 곳이었다.
염선생님이 데려간 식당 '숙자매'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굴비, 고등어구이 백반을 시켰는데 음식이 모두 맛있었다. 평범한 작은 음식점인데 입소문이 난 곳이었다. 음악 축제가 열리는 뮤지엄 파크를 구경하러 갔다. 배불러서 그곳에서 파는 김밥, 피자 등은 사먹지 못하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 작은 것을 사먹었는데 맛있었다.
* 뮤지엄 파크 안에 있는 조개박물관. 엄청 자세하고 볼 게 많아 흥미로웠다. 조개와 고둥의 종류가 그렇게나 많은지 놀라웠다. '세계조개 박물관' 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잘 만들어 놓았다. 그 중 몇 장만 담았다. 친구는 햇빛과 강한 바람을 막으려고 완전무장했다.
* 이 포스터는 오래전 보았던 영화 '피아노'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얼마나 멋있던지 잊혀지지 않는다.
예전에 TV에서 임동창의 피아노 실력을 본 적 있는지라, 1004대의 피아노 연주라니! 호기심 충만하여 가보고 싶었다. 뮤지엄 파크내 자연휴양림 숙소는 아예 예약을 받지 않았다. 아마 주최측에서 모두 필요로 한 것 같았다. 오늘도 바람이 많이 불어 추수가 끝난 논에서 볼 수 있는 하얀 비닐에 쌓인 커다란 둥근 짚더미를 행사장 둘레에 담처럼 빙 둘러쳐놓았다. 주최측에서는 무릎담요와 핫팩을 나누어주었다. 얼마나 요긴했는지 없었으면 감기들 뻔 했다. 구스잠바를 가져왔는데 숙소에 두고, 불필요한 돗자리는 가지고 갔다. 바닥에 앉아서 보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챙모자는 집에서 떠날때 빠뜨리고... 여행을 그리 많이 다녔는데도 늘 무언가를 빠뜨린다. 똑똑치 못한 자신에게 거듭 실망하지만 뭐, 사는데 큰 지장은 없다. ㅎ
밤이 되자 몸이 덜덜 떨렸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체온유지를 하느라 애썼다. 에그! 추워!
연주가 시작되기 전 대형화면에 신안군을 소개하고 음악제를 설명하는 내용이 몇 번 반복 상영되었다.
화면처럼 말을 타고 드넓은 해변을 달리면 얼마나 신날까, 오래전 제주도 해변을 달려보았던 경험이 생각 화면을 찍었다.
* 야외에서인지 음향이 썩 좋지 않고 둔탁하고 강한 느낌이었다. 104인이 함께 호흡을 맞춰 연주한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대형콘서트에 어울리지 않는 임동창의 실용적인 복장은 좀 실망스러웠다. 그는 추웠는지 나중에 털모자를 썼다. 한복 두루마리를 입고 축하사를 한 유인촌 장관은 보기 좋았다. 30여분 유명인사들의 허접한 순례가 끝나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날 못한 부분을 보충하느라 두 시간에서 한 시간 더 연장한 9시까지 공연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다.
클래식 연주로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리스트, 쇼팽 등 유명작곡가들의 곡들을 연주하였다. 재즈와 가요도 연주하였는데 '바람이 불어오는 곳', '사랑으로', '만남'을 모두 함께 노래 불렀다.
줄타기 공연을 잠깐 하고 국악연주로 흥을 돋아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예로부터 청춘 남녀가 함께 음식을 나눠먹으며 노래부르는 판을 '산다이' 라고 부르는데 원래는'산대희(山臺戱)'라는 전남지역 말이다. 가곡을 연주하는 성악가는 없어서 아쉬웠는데, 대신 산다이 청춘들과 어린이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인상적인 연주는 92세 이생강의 대금연주였다. 곧곧한 자세로 연주하는 노장의 대금소리는 심금을 울렸다. 대단하다.
80대 국악인 신영희를 비롯한 4명의 판소리 명인들의 창도 흥겨웠고 그 반주를 임동창이 함께 하였다. 밤하늘을 울리는 두 사람의 법고소리도 장엄하고 수려하였다. 마지막을 장식한 임동창의 피아노 연주는 현란하고 파격적이었다. 피아노에 껑충 뛰어오르는 모습이 과연 괴짜스럽다. 사물놀이패와 아리랑 연주에 맞추어 함께 춤을 추면서 연주를 마쳤다. 흥겨운 시간이었다.
* 뮤지엄 파크 안에 있는 수석 미술관 구경을 하였다. 조성을 잘 해놓아 구경할만 했다. 희귀한 돌들이 참 많았다.
* 음악제는 어제 본 것으로 만족하고 일찍 서울로 올라가려고 목표역으로 나가 막차로 구매한 표를 바꾸어보려고 했지만 빈자리가 없었다. 새마을호 입석표는 8시경에 있었는데, 두어시간이 더 걸리니 소용없었다. 그냥 막차를 타기로 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박물관 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염선생님은 광주 사시는 어머니께서 기다리셔서 점심을 먹고는 우리를 갓바위에 내려놓고 헤어졌다. 갓바위 구경을 하고 국립해양 문화재 연구소를 들려 자연사 박물관까지 가는데 도로가 고르지 않아 작은 트렁크 인데도 끄는 소리가 요란했다. 눈 앞에 보이는 건물들이라 택시 탈 거리가 아니었지만 박물관 등에서 많이 걸어 나중에는 피곤했다. 기사가 백반식당의 원조라며 데려다 주는 식당에 주저앉았다. '돌집'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게 양이 많고 반찬 종류가 많았지만 먹갈치조림 일인당 25,000원이 아까울 만큼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
* 연구소안에서 내다본 한산한 바다풍경이 아름답다. 어린이들 체험관도 잘해놓아 학생들이 견학하기 좋은 곳이었다.
*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 나전칠기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 거북을 부조한 나무 장식장의 고풍스러움이 눈길을 끌었다. 서랍인지 장식효과뿐인지 내부가 궁금했다.
* 바닥에 비치는 스크린이 물고기들이 헤엄쳐다니는 듯 해서 어린이들이 쫒아다니며 즐거워했다. 일종의 가상 연못이었다.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수족관 복도도 있었다. 엄청나게 큰 가오리가 있어 깜짝 놀랬다.
* 앉아 쉴 수 있는 계단식 의자에 식물채집 표본 서랍이 있어 꺼내볼 수 있었다. 학생들이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어려서 여름방학에 식물채집을 했던 기억이 나서 여러 개를 열어보았다. 말린 식물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즐거웠다.
* 유리판 안에 든 식물들이 조명을 받아 정말 아름다웠다. 하나하나 모두 찍고 싶은 맘이었지만 몇 개만 확대해 찍었다.
*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공룡 모형과 화석 등 자료들이 풍부했다. 대형 화면에서 보여주는 영화까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알속에 있는 아기공룡은 귀엽기까지 했다.
* 앞으로는 동물원에 동물들을 가두어두지 말고 사진처럼 모형을 만들어서 교육용으로 사용해야할 것 같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숲 속에 있어야 할 동물들을 우리에 가두어놓는 것은 생명 경시와 학대이다. 멸종을 막기 위한 자연 보호가 필요하다.
* 정말 많은 자연사 자료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다리가 많이 아팠다. 이웃에 있는 문예역사관은 시간도 되지 않아 구경하지 못하고 저녁 식사를 하러갔다. 식사후 시간이 남아 거리를 좀 돌아다녀 보았지만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고 요란하게 장식한 네온사인만 반짝거렸다.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었다가 9시 52분 고속열차를 타고 용산역에 12시 넘어 도착하였다. 한밤중이라 친구는 우리집에서 하루 묵고 가기로 했다. 할증요금이 붙은 택시를 타고 팁까지 2만원 주고 잘 왔다. 친구와 함께 해서 즐거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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