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SBS TV에서 특집 추모 앙코르 '학전 그리고 뒷 것 김민기'를 보면서 그라는 인간에 새삼 다시 감동했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인이었지만 그는 늘 앞 것들을 빛나게 하기 위한 '뒷 것'이길 자처하며 시종일관 겸손하고 순진한 인간으로 살았다. 수많은 후배들과 펜들이 그를 애도하며 슬퍼했다. 그는 고단했던 삶에서 벗어나 빛나는 별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숭고한 향기는 언제까지나 남아 그의 덕을 입은 수많은 예술인들과 노동자들의 가슴에 살아 숨쉴 것이다.
나는 그의 '아침 이슬'을 양희은의 목소리로 처음 들었다. 정말 멋진 명곡이었다. 수많은 노동자들과 시위하는 민주세력을 하나의 꽃으로 피워올린 노래였다.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건만 그의 마음을 대중들이 알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 덕에 그의 노래들은 금지금이 되고 감옥까지 간 적 있었다.
젊은 시절 잠시 선배의 까페겸 식당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이른 아침 들어온 대학생들에게 이 음반을 골라 오디오 바늘을 올려놓자 그들은 엄지를 세우며 함께 환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새해 첫날 산 정상에 올라 장엄한 해돋이를 보며 남편과 함께 불렀던 '아침이슬'... 그의 노래에 얽힌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려간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나는 사실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가끔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갔지만 '학전'이 그가 대표로 있는 연극 단체인 줄도 알지 못했다. '지하철 1호선' 연극이 유명하길래 뒤늦게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나역시 사는 일이 너무 바쁘고 고단했었다.
그가 젊은 시절 관악구 달동네에 부모가 일나가서 돌볼 사람이 없는 유아들을 위하여 최초로 유치원을 세운 일, 손수 농사를 지어 유치원에 쌀을 보내 후원하고, 공장에 취업하여 일할 때는 어린 노동자들에게 야학을 가르쳐 꿈을 지닐 수 있게 한 일, 그때 공부하여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까지 졸업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인간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또 그 당시 비참했던 노동자들을 위안하기 위해 만든 노래들. 그들은 그 노래들이 실린 카세트를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들었다고 술회하였다. 고달프고 지친 노동자들의 손을 통해 들불처럼 번져간 노래들은 그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을 것이다.
경기 중고교, 서울대 회화과를 다닌 걸 보면 그의 재능이 특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출세를 염두에 둔 적이 없이 힘없는 약자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돈이 되지 않는(표값이 저렴해서), 어린이 뮤지컬을 그렇게 많이 한 줄도 처음 알았다.
그의 사생활도 알려지지 않아 몰랐는데, 부인과 아들이 둘 있다고 한다. 가족은 장례식에서 조의금조차 받지 않았다. 그의 유지를 잘 받든 가족다웠다.
유명 배우인 설경구, 이윤석, 황정민 등 수많은 연기인을 배출한 학전이 그의 건강 악화로 올해 3월 문을 닫고, 그는 73세의 아쉬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05년 파라다이스 상, 2007년 독일 문화원에서 괴테 메달 수여, 2008년 서울시 연극부문 상 등, 수상을 많이 했지만 무지한 군부 독재로 인한 탄압으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하였다. 의식있는 예술인과 그의 펜들만이 그의 노래를 사랑하였다. 음유시인처럼 편안하게 노래하는 그는 광속의 스피드 세상을 아랑곳 하지 않고 아나로그 방식으로 인간 심연의 슬픔을 위안하는 듯 노래 부르며 살았다.
'상록수' 또한 인권운동의 대표적 노래이다. 그 외에 '친구', '바람과 나', '아름다운 사람', '가을 편지', '백구', '작은 연못', '꽃피우는 아이' 등 그의 맑고 순수한 노래들을 좋아한다. 행여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면 다시 그곳에서 향기롭게 존재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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