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래된 기억의 정겨움

나무^^ 2024. 3. 26. 12:28

 

* 며칠전 가곡반에 새로 온 회원 중 중학교 때 동창을 만났다.

서로 몰라본 채 한참 시간이 지난 뒤 회식자리에서 그녀의 이름을 듣고 까마득하게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함께 다니는 친한 친구가 '중학교때 선진이 같아.' 라는 말에 한 테이블 건너 앉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어린 시절 모습이 약간 보이는 듯 했다. 나는 식사를 다 마치기도 전에 그녀에게 가서 물었다. 그녀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시절의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오래 전에 지나간 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인연은 소중하고 정겹다.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문학소녀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연소 여류작가가 되겠다던 그녀의 희망을 잊지 않고 있었기에 인상적이었던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이 많이 반가웠다. 안경 너머 초롱초롱하던 그녀의 눈빛이 기억난다. 시험 기간에도 두꺼운 소설책을 가방에 넣어 가지고 와 짬짬이 읽었던 친구였다. 

 

일주일 지난 어제, 우리 셋은 점심식사 자리에서 어린 시절 장면을 줄줄이 알사탕처럼 끄집어내며 즐거워했다.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간략하게나마 서로 이야기 하였다. 그녀는 은퇴후 지금도 주 3일 현역 의사로 일하고 있단다. 유명 작가 대신 의사로 살아온 그녀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전직 간호사였던 친구에 또 가정의 친구까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ㅎ

지금 그녀의 인상은 곱게 나이든 단아함을 느끼게 한다. 이렇듯 다시 이어진 인연이라니...

 

오늘 아침 컴퓨터를 커니 사색의 향기 메일에 시 한편이 날아와 있다.

 

조용한 섬  (한영희 지음)

 

땅끝에서 올라온 고구마 한 개

빛도 없이 구석에서 떡잎을 키우고 있다

 

먹는다 먹는다 하면서 잊어버린 

조용한 섬은

 

얼마나 몸을 짜냈을까

물을 담아 터를 창가로 옮긴다

 

푸석한 얼굴이 햇살을 받아먹고 

붉은 힘줄이 돋아난다

 

투명한 물속에서

솜털 같은 뿌리가 파르르 떨리고

물관의 젖줄로 입술을 적시는 잎들.

 

 

 

며칠전 아파트 담장에 드리워진 벚꽃 나무 줄기를 많이도 쳐냈다.

사월이면 꽃비가 내리는 듯 휘날리는 벚꽃이 아름다운 담장이었다.

꽃망울이 맺히기 전에 베든지, 화사한 꽃 다 진 후 베든지 할 일이지...

베어낸 가지를 잘라와 항아리에 소복하게 꽂았더니 오늘 에쁜 꽃이 피기 시작한다.

잘라내도 멈추지 않는 생명력이 신기하고 어여쁜 아침, 살아있음으로 기쁜 날이다.  

'안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뒷 것 김민기를 애도하며  (0) 2024.07.25
법구경을 다시 읽다  (0) 2024.07.12
'권진규의 영원한 집' 전시  (0) 2023.08.02
불가리 세르펜티 75주년 전시  (0) 2023.08.01
김윤신 : 더하고 나누며, 하나  (0) 2023.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