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9 (화) 아침 9시 30분에 강남역에서 친구를 만나 강원도 마랑재 친구에게 갔다. 지난 주가 단풍이 절정이였다는데 사정이 생겨 한 주를 늦추어서 떠났다. 그래도 아직 알록달록한 산을 보면서 맑은 날씨가 고마웠다. 지난 주 화요일은 비가 많이 내려서 오히려 이번 주 가길 잘했다. 친구 사위가 브라질로 2년간 해외근무를 가게 되어서 또 한 친구의 딸이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하였다. 어려서부터 보았던 친구의 딸들이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두 친구는 고교 동창인데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어린 딸을 양육하며 친해진 사이였다. 남편들도 한때 같은 회사에 다녔으니 보통 인연이 아니었다. 엄마들에 이어 나이가 같은 딸들의 우정도 오래도록 유지되고 있었다. 딸이 없는 나로서는 그들 모녀들이 부러웠다.
친구의 큰 딸이 낳은 둘째 딸이 어느새 예쁜 소녀가 되어 내 눈길을 끌었다. 브라질 가는 친구 딸은 늦게 결혼해서 아직 아이가 없었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시험관 시술이라도 해서 아이를 낳으렴. 자식 낳아 키우는 일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얼마나 있겠니?"
쯔쯧, 제 자식 걱정이나 하지 뭔 남의 자식 걱정이람! 진부한 노인네가 되고 말았다. 그들이 좀 잘 알아서 할까!
제일 자주 만나는 친구는 딸이 제약회사에 다니는 똑똑한 전문직 여성이다. 게다가 큰 딸 노릇도 잘하는 효성스런 자식이다.
좋은 남편 만나서 딸 둘에 아들 하나를 키우며 잘 살아온 친구는 자식 셋이 모두 결혼하여 손주가 네 명이나 된다. 그야말로 성공한 어머니이다. 물론 손주들을 돌보아주어야 하는 분주함이 따르지만 보람있고 존재감이 큰 삶이다. 내가 원했던 바람직한 삶을 사는 친구이다.
마랑재 사는 친구는 보통이 아니다. 체격이 크지도 않은데 엄청 건강하여 마랑재 팬션을 운영하고 그 넓은 주변에 나무를 심고 꽃을 피운다.
은퇴한 남편이 많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살아온 과정이 다른 나이든 남편을 어찌 바꾸겠는가! 받아들이는 편이 쉬울 것이다.
개가 네 마리(딸이 데려온 한 마리까지)에 고양이가 열 마리가 넘는다. 새끼를 많이 낳았는데, 분양해 줄 사람이 없어 그냥 키우고 있었다.
진돗개는 손님들이 무서워 할 수 있어서 우리에 가두어 놓아 답답한 개들이 많이 짖었다.
저녁에 바베큐 구이를 해먹고 남은 고기를 잘게 썰어 고양이들에게 주었는데, 날쌘 놈들이 달려들어 작은 냥이를 먹이는 게 쉽지 않았다.
잎이 다 진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들이 꾀죄죄했는데, 몇 개 따서 수세미로 잘 씻으니 깨끗해지고 단단한 과육이 맛있었다. 강원도에 사과나무가 될 만큼 온난화가 되었다. 집 안팎 구석구석 친구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네팔 에레베스트산 트레킹 갔을 때 손주 생기면 주려고 샀던 털모자를 친구 손녀에게 선물로 주었더니 잘 어울리고 좋아했다.
오랫동안 서랍 속에 있던 모자가 이제야 주인을 만났다. 친구 손녀딸이 내 눈에는 정말 예뻤다.
"넌 절대 성형 같은 거는 하지 말고 그대로 크면 좋겠다. 한국적인 미를 잘 간직하여 외국 남자와 결혼하면 좋을거야."
너무 쉽게 얼굴을 뜯어고치고 서양화되는 얼굴들로 개성이 없는 시대에 그 아이의 작고 귀여운 달걀형 얼굴은 그대로 미인형이었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도 깊어지면 더할 나위없을 것 같았다. 교육적인 엄마와 할머니가 돌보아서인지 성격도 공손하고 좋아보였다.
어른들과 함께 하는 일박이일이 지루할 수도 있는데 게임도 하면서 잘 어울렸다.
첫날 차가 살짝 밀렸지만 평일이여서인지 생각보다 양호했다. 봉평 '허생원' 음식점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음식이 맛있는데다 푸짐하기까지, 가격도 착해서 만족스러웠다. 저녁에는 마당 가건물에서 바베큐구이를 해 먹었다. 친구는 손주 담근 명이잎을 내놓아 느끼한 고기맛을 싹 잡아주었다. 친구 남편은 식사할 때만 방에서 나왔다. 친구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들은 무리였다. 그는 인천공항 설계를 맡아 잘 나가던 때의 명예를 내려놓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고 싶어한다고 친구는 전했다.
새하연 목면 침구에 따스한 방에서 잘 자고 아침부터 거나한 찌개로 식사를 하였다. 친구딸이 끓이기만 하면 되는 찌개거리 밀키즈와 스테이크할 쇠고기를 사왔다. 마라재 친구는 두툼한 오겹살을 준비해 숯불에 구워주었다. 고기를 잘 먹지 않는 나도 여러점을 맛있게 먹었다.
어젯밤 고기를 먹은 나는 밥과 찌개 대신 우유에 내가 사간 쌀시리얼, 견과를 넣고 과일과 함께 먹었다.
마당을 거닐며 사진도 찍고 친구가 주는 고추잎나물 삶은 것, 볶아먹을 어린 고추, 명잇잎도 담아 챙겼다. 친정에라도 왔다 가는 기분이었다.
느즈막히 오대산 상원사로 가서 오랜만에 절을 구경했다. 새빨간 단풍나무들이 강원도 가을 나들이를 실감나게 해주었다.
불교신자들이 많이 오는지 증축하는 절이 늘어나고 있었다. 늘어진 왜식 단풍나무를 처음 보았는데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마당에 세워놓은 금빛 봉황새도 생뚱맞아 보였다. 조각물에 박아놓은 동전들도 비루해보였다.
상원사는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 적멸보궁, 가장 오래된 동종으로 유명한 곳이다. 몇십년 전 왔던 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을 보며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한때는 매년 가을 강원도 설악산 단풍를 보러 드나들었던 기억과 함께...
차가 밀릴 것 같아 묵호항에 가려던 것을 취소하고 오대산 입구에 있는 음식점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친구 모녀와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한 시간 정도 밀리긴 했지만 친구의 딸은 저녁 약속에 늦지 않고 갈 수 있었다. 나는 강남역에서 혼잡한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운전하느라 수고한 친구 딸에게 감사하고, 돌아와 쉴 수 있는 내 집이 새삼 편안하고 좋았다.
'안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상시국 선언을 보면서... (2) | 2024.12.04 |
---|---|
뒷 것 김민기를 애도하며 (0) | 2024.07.25 |
법구경을 다시 읽다 (0) | 2024.07.12 |
오래된 기억의 정겨움 (1) | 2024.03.26 |
'권진규의 영원한 집' 전시 (0) | 2023.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