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울한 시국 계속되는 시위로 내란성 감기에 시달리던 중 웃음이 필요했다. 오래 전 TV 올레에서 소장용으로 구입했던 채플린의 영화를 다시 꺼내보았다. 지리멸렬한 사태를 위안하며 답답한 시간을 보냈더니 마침내 오늘 아침 비열한 내란 수괴의 체포소식이 들려왔다. 휴~ 한숨 돌렸지만 그 잔재들의 세력을 물리치며 나가야 할 일이 쉽지 않는 상황이다.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지키며 거리에서 밤을 세운 민주시민들, 민주당 의원들, 진실을 알리는 평론가들 등, 나라의 장래를 밝히는 등불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 엄청난 수고에 감사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래 전에 모던타임즈를 영화관에서 보고 그의 생애가 궁금하던 차에 우연히 중고서점 알라딘에서 자서전을 발견했다. 런던 빈밈굴에서 태어나 불우한 유년시절을 지낸 그였지만,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예술적 자질과 함께 그의 독창성은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웃음을 주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그는 다재다능하여 배우, 코메디언, 영화감독, 음악가 등 그가 만든 영화에 직접 출연하고 음악도 작곡했다. 말년에는 스위스로 정치적 망명을 하였다. 그는 4번의 결혼으로 11자녀를 남기고 88세에 세상을 떠난 다복한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렸지만 여전히 해학적인 표현이 재미있고 스토리는 따뜻하다. 현란하고 어지러운 화면들 속에서 드물게 보는 흑백 영화의 단순함과 무성영화의 몰입도 좋다. 이 영화들을 한 편씩 다시 보면서 한동안 즐거울 것이다.
1. 모던 타임즈
감독 찰리 채플린
제작 미국 (1929년. 재개봉 2015년. 87분)
출연 찰리 채플린, 폴렛 가더드 외 다수
* '공업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1930년대 대공황과 산업 혁명 아래 소시민의 삶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표현한다. 공장에서 나사못 조이는 단순 작업을 종일 하는 빈센트의 강박감이 가는 곳마다 웃음을 자아낸다. 기계와 인간을 대치시키는 톱니 바퀴 장면은 인상적이다. 정신병원에 실려갔던 그가 다시 시위군중에 휩쓸려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지만 그는 고아가 된 파울라를 도와주는 따스한 감성을 지닌 인간이다. 우글우글 떼지어 몰려가는 양떼들 처럼 지하철 안으로 몰려드는 군중들, 예전에 나도 느껴보았던 감정이다. 빈센트와 파울라가 햇빛을 받으며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아름답다. 인간성을 잃어가는 기계문명의 폐해를 해학적으로 꼬집은 작품으로 다시 보아도 재미있다. 간디와 대화했던 그가 만든 마지막 무성영화이다. 음악 'Smile'은 지금도 리메이크되고 있다.
2. 키드
감독 찰리 채플린
제작 미국 (1921년. 53분)
출연 찰리 채플린, 재키 쿠건 외 다수
* 채플린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반영된 영화이다. 한 미혼모가 자선병원에서 낳은 아이를 키울 수 없어 부유한 집 앞 자동차에 아이를 놓고 가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책임지게 된 채플린의 하루살이 삶이 고단하기만 하다. 경찰에서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지만 정이 든 그들은 헤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옛말에 선한 끝은 있다고 하던가! 부유해진 생모가 아이를 찾게 되고 그들은 행복한 상봉을 한다. 채플린이 찾아낸 귀여운 아역의 연기가 돋보인다. 'His Morning Promenade' 선율이 유명하다.
3. 서커스
감독 찰리 채플린
제작 미국 (1928년. 71분)
출연 찰리 채플린, 에드나 펄비안스 외 다수
* 떠돌이 주인공이 서커스단에 들어가면서 단장의 딸이 학대 받는 것을 보고 도와주는 이야기이다. 사자우리 장면, 외줄타기 장면, 다면 거울방에서 경찰과 술래잡기 하는 장면들이 많이 웃긴다. 그러나 소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것을 알고 그 둘을 맺어주고 물러선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은 작품으로 'Swing high little girl' 선율이 유명하다.
4. 살인광 시대
감독 찰리 채플린
제작 미국 (1947 년. 129분)
출연 찰리 채플린, 에드나 펄비안스 외 다수
*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 베르두는 은행에서 퇴직 당하자 주식, 채권에 손을 대고 불구 아내와 귀여운 딸을 부양하기 위해 부유한 여인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재판대에 선 그가 말한다.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시작한다. 전쟁과 투쟁도 일종의 사업이다. 한 둘을 죽이면 악한이고, 대량학살을 하면 영웅이다.' 라고 일리있는 말을 하여 지금까지도 그 말이 회자된다. 그러자 참전용사들이 들고 일어나 이 영화는 많은 주에서 상영이 금지되어 흥행에 실패한다. 결국 그는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정부에 감시 당한다.
5. 황금광 시대
감독 찰리 채플린
제작 미국 (1925년. 72분)
출연 찰리 채플린, 맥스 웨인, 톰 머레이 외 다수
* 알래스카 북극으로 금광을 찾아 떠나는 무리를 따라 온 주인공은 폭설 속에서 한 오두막에 휘쓸려 들어간다. 흉악한 살인범과 무도한 또 한 사람과 함께 기거하면서 벌어지는 장면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근처 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는 치근덕 대는 남자에게 보란 듯이 남루한 그와 춤을 추고 친구들과 함께 그의 처소로 간다. 그의 공들인 하룻밤 약속을 그녀는 잊어버리고, 그는 우여곡절 끝에 금광을 찾아 부자가 된다. 오두막이 폭설에 밀려 절벽에 걸쳐져 시이소처럼 흔들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6. 시티라이트
감독 찰리 채플린
제작 미국 (19년. 86분)
출연 찰리 채플린, 버지니아 체릴 외 다수
* 떠돌이는 꽃 파는 눈 먼 소녀를 도와주기 위해 목숨을 끊으려는 부호를 구해주고 그처럼 행세한다. 부호는 술이 취하면 그를 친구로 자기 집에 들이지만 술이 깨면 그를 내쫒는다. 우여곡절 끝에 돈을 마련해 소녀에게 전하고 그는 오해를 받아 감옥으로 향한다. 그 사이 밀린 집세를 갚고 꽃 집을 차린 그녀는 눈 수술을 받아 세상을 보게 되었지만 정작 자신을 구해준 떠돌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를 알아보고 충격에 빠진다. '자선은 어떤 이에게는 의무요,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기쁨이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7. 파리의 여인
감독 찰리 채플린
제작 미국 (1923년. 81분)
출연 에드나 펄비안스, 외 다수
* 계부 아버지의 결혼 반대로 집에서 쫓겨난 마리는 애인 장의 집으로 가지만 그곳에서도 반대해 머물지 못하고 파리로 가는 역 대합실에서 그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는 나가지 못한다. 그녀는 혼자 파리로 떠나 부자의 애인이 되지만 다시 만나게 된 화가 장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한다. 그는 예전의 그녀를 그림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상기시킨다. 그녀는 사랑이냐, 사치스러운 생활이냐 중 선택해야 하는 갈등에 빠진다. 절망한 장의 자살을 계기로 그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채플린이 주인공으로 출연하지 않고 만든 단 한 편의 심각한 영화라는데 흥행에 실패한다. 웃음이 없는 그의 영화는 좀 그렇다. 그녀의 배우 인생 또한 유명무실해졌다고...
8. 뉴욕의 왕
감독 찰리 채플린
제작 미국 (1957년. 108분)
출연 찰리 채플린, 외 다수
* 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트로비아에서 민중봉기로 퇴위당한 샤도프왕은 보물과 재산을 빼돌리고 뉴욕으로 갔다. 그러나 그 재산은 총리가 차지하고 무일푼이 된 왕은 메스컴에 걸려들어 광고에 나가게 된다. 마다하는 그를 이용하는 기업들과 그의 우스꽝스러운 연기는 흥행에 성공한다.
채플린은 스위스에서 만든 이 영화를 통해 매카시즘의 대표격인 미하원 비미(非美)활동 조사 위원회를 조롱하였다. 비판적인 부모의 영향으로 공산주의 책을 읽으며 그를 비판하는 소년을 포용하는 인간적인 면모는 체제의 근본 취지가 무엇인지 돌아보게한다. 웃음으로 철학적 사고를 끌어내는 그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다.
9. 위대한 독재자
감독 찰리 채플린
제작 미국 (1940년. 재개봉 2015년. 126분)
출연 찰리 채플린, 폴레트 고다르, 헨리 다니엘 외 다수
* 1918년 세계 1차대전 말엽의 상황을 고발·풍자한 내용이다. 토매니아의 독재자 힌켈과 비슷한 모습을 한 이발사 찰리를 대치시켰다. 예전 우리나라 코메디언들이 흉내낸 그의 몸 게그가 웃음을 자아낸다. 마지막 그의 연설은 평화로운 세계의 비젼을 제시하는 강력한 순간이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할수록 독재자는 발 붙일 수 없는 민주주의 사회가 형성되는 이치를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르던 지도자는 처벌받는 것을 오늘날의 역사도 보여준다. 무성영화를 고수하던 그가 처음으로 만든 유성영화로 히틀러 사망 5년 전에 만들어진 저항 영화이다.
10. 라임 라이트
감독 찰리 채플린
제작 미국 (1950년. 분)
출연 찰리 채플린, 폴레트 고다르 외 다수
* 영화 시작부터 나오는 서정적 멜로디 'Terry's Theme' 가 아름답다. 유명했던 코메디언 칼베르와 순수한 심성을 지닌 발레리나 테리의 지구한 사랑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는 유도전망한 젊은 테리를 위해 그는 그녀 곁을 떠나지만, 실제 채플린은 몇 번이나 아주 어린 여성들과 결혼했다. 어쩌면 그의 순수한 감성으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인생이 욕망의 발현이지 무슨 의미를 그리 부여하는가 묻는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착하게 살아가는 인생을 코믹하게 그려 감동을 이끌어 낸다.
16~20. 찰리 채플린 단편영화 콜렉션 1~5
* 찰리 채플린은 1889년 런던 빈민가에서 태어나 부모가 이혼하여 어머니 손에서 형과 함께 자랐다. 병이 난 어머니를 대신해 5세 때 런던 뮤직홀 무대에 오른 그는 환호를 받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에게 가서 아동극단에 들어갔지만 알코올 중독자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12세 때 극단을 나와야 했다. 허드렛일을 하며 고생하다가 영화에 출연하게 되어 18세에 영국 최대 극단 카노에 들어가고 각광받기 시작했다. 24세에 허리우드로 진출하여 최고의 희극 배우로 자리 잡는다. 1914년에만 34편의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그는 <어깨총>이라는 반전 메세지를 담은 영화를 연출했다. 그리고 장편영화 <키드>를 연출하여 피폐해진 군중들에게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게 하였다.
유성영화가 등장했지만 그 작위성을 싫어했던 그는 무성옇화를 10년간이나 더 고집했다. 세계 공황이 닥치자 영화사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그는 마침내 최초의 유성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만들고 미국의 메카시즘 광풍에 휩쓸려 스위스로 망명했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다만 약자의 편에 선 휴머니스트였다. 그는 자신이 표현한 배우를 이렇게 말했다. '내가 스크린 위에 내보이는 가엾은 존재, 그 겁 많고 허약한 친구는 결코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다. 희망, 꿈, 갈망이 덧없이 사그라들고 나면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보이고 발길을 돌릴 뿐이다. 이토록 비극적인 인물이 다른 어떤 인물보다 많은 웃음을 자아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떠돌이이자 자유로운 영혼의 주인공은 곧 그의 내면을 상징했다.
그는 추방당했다가 20년이 지난 1972년 미국으로 돌아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기립박수가 12분이나 계속되었다니 그의 인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는 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국적을 바꿀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자신은 세계 시민이라고 답했다. (출처: 벌거벗은 세게사 98회 '미국은 왜 블랙 코미디의 거장 찰리 채플린을 버렸나.')
작고 왜소한 그가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며 낙천적인 성격으로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천재성과 함께 순수한 영혼을 지닌 재미있는 배우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54세에 한 4번째 결혼에서야 안주할 수 있었다. 그의 친구인 작가 유진 오닐의 외동딸(18세)과 8명의 자녀를 낳고 88세까지 장수했다. 그리고 훌륭한 영화 예술인으로 역사에 남았다. 녹음시설이 지금 같지 않아 음악 편곡자들이 항상 대기해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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