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우리나라)

친구따라 전라도 가기

나무^^ 2005. 9. 4. 16:25

  * 지방에 볼일이 있는 친구를 따라 처음 고속철 KTX를 타 보았다. 

천둥산 도룡뇽 살리기' 단식투쟁을 하던 여스님 생각이 나 고속철 이용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한 번쯤 경험은 해보려고 함께 가자는 말에 응했다. 지하철을 늘 타고 다녀서인지 생각보다 그렇게 빠르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좌석은 새마을호보다 훨씬 비좁고 식당칸이 없어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로 그 냄새가 진동했다. 그것은 시정되어야 할 점 같았다. 빠른 시간내에 이동을 해야하는 사람들에게 시간단축을 시켜주는 이점 뿐이었다.

 익산시내에 '태백 칼국수'집 음식이 맛있다는 친구를 따라 가, 더운데 뜨거운 음식이 부담스러운데다 음식을 빨리 먹지도 못하는 터라  난 칼국수 대신 콩국수를 시켰다. 그 국물이 진하고 순수하여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친구가 원광대에서 볼일을 보는 동안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을 몇 장 찍고 분수가 오르는 연못앞 벤취에 앉아 봉황각을 스케치하며 시간을 보냈다. 백일홍꽃이 많이 핀 학교는 녹음이 우거지고 넓어서 산책을 하며 쉬기에 좋았다.

 

        
      


 

 

 

 

 

 

 

 

 

 

 

 

 

 

 

  

    

 

 

 


 


 

 친구와 친한 이가 멀리서 온 손님을 대접한다며 학교 근처 '소나무 집'이라는 음식점에 가 꼬리곰탕을 시켰는데  담백한 그 맛이 일품이라 점심 먹은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지만 맛있게 배불리 먹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아뿔싸! 채식을 주로 하던 위장이 그만 연이어 들어온 영양가 높은 음식에 거부반응을 보인 건,  그 행복감이 한참 지나 전주를 향하면서부터였다. 그 위기감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도 할 수 없는 끔찍함으로 장을 온통 뒤틀면서  급기야는 스타일 구기는 지경까지 갔으니 더 이상은 민망해서 말할 수조차 없다. 입맛에 정신 팔려 과식한 댓가를 밤새 아래위로 톡톡히 치루었다.

 

 다음날 점심때 쯤에야 기운을 차려 나와 맛있는 콩나물 국밥을 시켰지만 나는 국물만 좀 먹고 우리는 버스 터미널로 갔다.  토스트를 반쪽만 먹을 생각으로 옆에 하릴없이 앉은 할머니께 치즈야채 토스트 한쪽을 드리니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이란다.

눈 어두운 이 할머니 날 아가씨라 부르며 덕담을 하신다. 이쯤되면 토스트 값으로는 좀 과하다. 후후... 그리고 나니 한 할머니께서 손수 만든 떡이라며 좀 사라고 친밀하게  옆에 와 앉으신다.  인정상 안 팔아드릴 수가 없어 좀 살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금방 눈 앞에 있던 차를 놓치고(분명 기사도 손님도 없었는데...)  다음 차를 기다리느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놀랍게도 이 할머니는, 현대를 사는 조선시대 여인이 아닌가? 슬쩍 슬쩍 남의 얘기하듯 하는데 8 남매를 떡장사하여 모두 대학까지 보내고 내노라하는 직장인들이 되었다는  흐믓한 이야기는 그렇다치고, 한량인 서방님 사랑에는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다방 레지를 집에까지 데리고 와 잘때 음식을 한 상 차려준 건 물론 잠자리까지 보아주었다며 미소를 지으신다.  한 두번도 아닌 여러 번이나... 그런데도 그 서방님이 곱기만 했다나?  남자가 얼마나 잘나면 이런 지경까지 가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질투심을 사랑으로 녹여버린 그 할머니, 살아있는 부처님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73살의 나이에도 35년 변함없이 나오신 일터의 기사들에게 웃으며 공짜떡을 권하는 할머니는 진정 흐르는 세월과  무관한 보살의 삶을 살아가고 계셨다.

 그런데 장한 어머니상을 받고 TV에도 나오셨다는 그 할머니에게 무서운 적이 나타났다.  바로 버스앞에다 밤을 늘어놓고 파는 사나운 할머니, 여기는 내가 장사를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가  할머니에게 대뜸 주먹질을 하여 팔뚝에 시퍼런 멍을 들게 하였다나?  바로 어제 일이라며 팔뚝을 보여주는데, 세상에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그렇게 심한 멍이 들었는지  보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이다.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했던가?   

남자처럼 스포츠 머리를 깎은 그 할머니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리 독종( 할머니 표현에 의하면)이 되었을까?   나는 무서워서 말 걸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손님이 오기로 해서 그만 집에 가야겠다며 떡함지를 들고 함께 버스에 오른 할머니,  내리셔서도 또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얼굴에 순진한 미소가 번지고 나는 가슴이 뭉클함을 느껴야했다. 

 벼이삭이 익고 있는 기막히게 예쁜 연둣빛 논과 스카이 퐁퐁이라는 신종 나무가 보기좋은 가로수길 등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느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 데다 탈이 나 빌빌거려 친구의 일정에 맞춰,  마음 속에만 담고 돌아와야한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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