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연을 보고

러시아 고전연극 '형제자매들'

나무^^ 2006. 5. 22. 16:19

                         

                       

 

 

                        

 화창한 봄날이 무르익어 여름과 어울리는 듯 좋은 날씨였다.

 모처럼 아들과 특별한 연극을 보러갔다. 장장 6시간을 공연하는 프로였다.

 

  러시아 고전 연극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극은 진지하고 길었다.

  마치 학창시절 러시아 장편 문학을 읽을때의 인내심을 요하는 느낌이였다.

  중간에 맛있는 저녁을 먹고 들어온 나는 잠깐이지만 그만 깜박 졸기까지 했다.

  공연을 보다 졸기는 난생 처음인 것 같다. 허긴 언젠가는 너무 피곤해서, 그 웃기고 재미있는

  채플린 영화를 보면서도 잠을 이기지 못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그 전날도 늦게 자긴 했지...

 

  간소한 무대장치는 고도의 세련미를 나타냈는데, 연극 내용의 배경을 압축한 이미지로 그만이었다.

  마치 뗏목처럼 나무를 엮은 세트에 필름이 돌아가는데 그 색다른 느낌은 퍽 미적이었다.

  또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는 독특한 장면도 몹시 아름다웠다.

  하늘로 솟은 장대들과 그 뗏목을 이용하여 6시간의 공연을 무리없이 해내는 고도의 연출은 

 '레프 도진'의 뛰어난 역량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연출가이며 교육자였다.

  말리 극장은 그와 그의 제자들이 23년간을 운영해온 관록있는 극장이자 교육장이었다. 따라서 그는 러시아인의 자랑이 되기에 충분하다.

 

  마치 바르비죵 작가들의 그림을 감상하듯 장면 장면은 소박한 고풍스러움과 단순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나무랄 데없이 훌륭했다. 몹시 자연스럽고 열정적이었다.

  화장하지 않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무대와 관객석을 넘나들면서 연기를 했다.

 

  그러나 어찌 그 당시 러시아 생활을 그대로 맛볼 수 있겠는가?

  그 지역의 사투리를 현대 표준말로 번역하여 읽어야했으니...

  전라도 지방의 구수하고 속된 사투리를 몽땅 표준말로 바꾸어 듣는다면,

  아마도 그 맛은 반으로 줄어들고 말게 아닌가?   

  그리고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풍족하게 사는 현대인에게, 그토록 절실한 빵이 현실감있게 다가올 수는 없었다.

  연극을 보러간 사람 중에 굶주림을 겪어본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결말 부분에서 '양심을 버리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대사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 모두가 겪는 갈등이며 슬픔이다.

   그리고 그 양심의 범위가 사람마다 다른데서 갈등이 벌어진다.

   신념이 강할수록 삶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나름대로의 양심을 지니고, 

   힘겹지만 그 양심을 저버리지 않음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삶의 실체가 무(無)이며 공(空)인 것을 알아가지만 그래도 여전히 희망을 지니고 싶어한다. 

   살아있음 자체가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일상에서 벗어나 과거의 시간 속을 편안히 여행하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전달은 그 만큼 집중력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복잡한 생활 속에 지쳤기 때문일까?  아님 같은 연극인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극이 끝나고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오랫동안 연출가와 배우들에게 환호했다.

   나는 연극처럼 소박하고 순수한 그 모두를 바라보면서 미소지을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늘 불안정한 인간의 마음을 심난하게 할 만큼 날씨가 어둡다.

   끝나가는 봄을 예고하는 비가 내리고 곧 무성한 여름을 맞아야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이러한 변화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적어도 나는 먹을 빵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으니 감사하다. 

   또한 내 안의 세상만물을 향한 측은지심이 아름다움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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